생활단상

된장녀 이야기

스카이뷰2 2006. 8. 4. 14:09
 

       된장女와 된장아줌마, 고추장男


얼마 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된장녀’라는 단어가 떠돌아 다녔다. 처음엔 그걸 보자마자 왠지 불쾌한 이미지가 떠올라 무슨 소린지 알고 싶지도 않아 클릭조차 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오늘 조간신문을 보니 나는 어느새 세태에 민감하지 못한 ‘오갈 데 없는’ 구세대 대열에 들어선 꼴이 된 것 같았다. 세태에 둔감하다는 건 ‘늙었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세태를 잘 모르는 ‘어리버리한 구세대’는 되고 싶지 않은데....^^


하기야 이 ‘된장녀’ 논쟁은 대학생들 사이에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것이라니 대학생이 아닌 내가 몰랐다 한들 대수로운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 워처’를 자임하고 있는 나로서는 ‘한 방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문에는 이 ‘된장녀’에 대해 한 면 전체를 도배해 놓았다. 제목은 ‘허영부리는 된장녀 VS 궁상떠는 고추장남’.


기사보다 우선 남녀 대학생의 모습을 캐리커처 식으로 그려 놓은 삽화가 눈에 들어왔다. 여대생은 고급샴푸로 손질한 긴 머리에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는 모습.


그녀는 명품 백을 들고 한 쪽 겨드랑이에는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펴본 적도 없는’ 두터운 전공서적을 끼고 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꼭 쥐고 있다. 이에 비해 남학생은 ‘취업 압박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각종 수험서’를 들고, 군대시절 버릇대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다. 츄리닝이나 우중충한 면 바지차림이다.


이것만 봐도 대강 ‘된장녀’와 ‘고추장남’의 정의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주제넘게 사치하는 여학생이 ‘된장녀’라면 온갖 궁상 다 떠는 남학생이 ‘고추장남’이라는 얘기다.


요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최고 인기검색어는 바로 이 ‘된장녀’라는 것이다.

한 석달 전 쯤 익명의 남성네티즌이 인터넷 게시판에 이 말을 사용한 이래로 불과 3개월 사이에 온라인을 점령하다 못해 드디어 오프라인에 입성한 된장녀!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니 검색 1위어답게 ‘된장녀’에 관한 것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다. ‘된장녀의 하루’를 클릭해보니 그녀의 하루가 꽤 길게 묘사돼 있다. 물론 아주 시니컬한 시선으로, 거의 인신공격 수준으로 그녀의 하루를 그렸다.


“된장녀는 아침 7시 30분 휴대폰 알람소리에 기상한다. 구세대처럼 자명종에 깨는 것이 아니라. 전지현같은 머릿결을 위해 싸구려 샴푸나 린스는 안쓴다. 엘라스틴이나 미장센 정도는 써줘야 한다. 난 소중한 존재이니까.

화장은 청순한 내추럴화장으로. 빈폴 원피스에 ‘알바 뛰어서 번 돈으로 질렀던’ 레스포삭 토드백을 한 손에 들고, 전공서적 한 권을 겨드랑이에 꼽고 집을 나선다. 큰 가방에 넣는 것보다 이렇게 해야 여대생스러운 거다.

일반버스는 사양하고(난 소중하니까) 좌석버스를 탄다.

화장하느라 아침식사를 못한 그녀는 던킨 도너츠에 들른다. 다이어트를 위해 설탕이 가미되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설탕과 잼이 범벅이 된 도너츠를 먹는다. 강의 시간 내내 졸거나 선배에게 문자 날린다. 점심시간엔 같은 된장녀끼리 모여 뭐 먹을까를 고민한다. 구내식당이나 학생회관은 절대 사양! 왜냐면 된장녀는 소중한 존재니까.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길에 복학생 선배가 눈에 띈다. 웬 호구! 선배님 밥 사주세요! 라고 조른다. 된장녀 셋이 달라붙으면 누구라도 이겨낼 자 없다. 복학생 1주일 밥값이 한끼 식사에 날라가 버리지만 된장녀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된장녀들의 샤넬 넘버 파이브 향수로 강의실이 진동한다. 수업 후 롯데백화점 명품관에서 아이쇼핑하는 것이 된장녀들의 가장 큰 즐거움!

‘3000cc이상의 그랜저 몰고 다니는 키크고 옷잘입고 유머있는 의사’정도면 신랑감으로 괜찮다고 된장녀들은 농담인척 진담을 나눈다.

저녁은 시내 나왔으니까 패밀리 레스토랑은 당연히 가야한다. 빕스의 코스요리는 그녀들의 입맛에 딱이다. 밥먹으면서 화제는 주로 어제 본 드라마나 남자 탤런트 이야기. 주지훈이나 강동원 배정남을 환장할 정도로 좋아한다.

뉴요커들의 일상을 살고 있는 착각 속에 된장녀들의 칼로리는 축적되고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아이팟 나노로 팝송을 듣는다. 팝송은 된장녀들에게 인격이고 교양이다.”     


좀 인용이 길었지만 요즘 최고인기라는 ‘된장녀’의 일상이 어떤 것인지를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된장녀’들이 결혼해 ‘된장아줌마’가 된 일상은 이렇다.


“아침 7시 20분 탁상시계소리에 기상. 콘플레이크와 저지방우유로 아침식사를 대강 한다. 된장아줌마는 황신혜같은 몸매를 위해 일반우유는 안 마신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로 돌리고 본격적인 메이크 업. 미시족이므로 짙은 화장은 절대 사양. 그레이스하고 화사하게 마무리한다. 화장품은 랑콤 정도를 사용. 남편 카드로 장만한 루이뷔통 멀티 스피디 30으로 단장하고 시슬리 향수를 뿌린다. 지난 주 구입한 마놀로 블라닉 구두(최하 50만원 이상)를 신는다. 된장아줌마들과 백화점 명품관에서 우아하게 아이쇼핑한다. 된장아줌마 셋이 걸친 걸 합하면 웬만한 승용차 한 대 값! 음식도 최고급으로 먹고 성형외과 다녀와서는 단체사진 찍는다.”


이렇게 해서 ‘된장아줌마’들은 자신들이 한 클래스라는 동류의식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인터넷 포털 검색란에 나온  ‘된장녀’를 종합·정리해 보면 ‘개념 없는 행동으로 선량한 다수에게 불쾌감을 주는 몰상식한 여성들’쯤 되는 것 같다. 한 곳에선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가지고 있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 실체 없는 극단적 페미니즘을 신봉하여 남성을 혐오하면서도 남자들에 붙어 이득을 챙기려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여자들 혹은 그런 무리들.

‘X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속언에서 파생됐다는 ‘학설’도 있다. 


2천원짜리 라면을 사먹으면서 후식 커피는 4천원이 넘는 스타벅스 커피를 ‘보란 듯이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다니며 먹는 철부지 족속들이라는 얘기도 떠돈다. 아무튼 이 ‘된장녀’는 내가 처음 받았던 ‘좋지 않은 이미지’로, 여대생 혹은 미시족 아줌마들을 비아냥거리는 말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여대생들은 기가 막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극히 일부의 이야기를 마치 전체적인 트렌드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기야 요새 ‘결혼’대신 ‘취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의식있는 여대생들에게 ‘된장녀’는 ‘굴욕적인 언사’일지도 모르겠다.


여성학 전공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된장녀’ 부류가 캠퍼스에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 여학생이 그러는 것처럼 일반화 시켜 공격하는 건 문제라는 것이 ‘여성학자님’들의 고견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하나마나한 소리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 ‘된장녀’ 논쟁은 그 모습을 바꿔 오면서 유구하게 내려온 ‘여자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신데렐라 이야기도 그렇고. 기왕의 동서고금을 망라한 ‘여자의 속성’은 이렇게 ‘허영’ 혹은 ‘환상’ 혹은 ‘멋’에 죽고 사는 철부지 존재로 묘사되어 오지 않았던가.


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영국작가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비싼 음식만 골라먹으면서 남자를 ‘등쳐먹기 좋아하는’ 여성을 20년인가 후에 조우했더니 무지막지한 ‘뚱보아줌마’로 변해 ‘잘코사니’했다는 남성이야기다.


뭐 이런 이야기뿐 아니라 시대를 불문하고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약한 자 그대 이름은 여자니’ ‘여자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 ‘김중배의 다이아반지를 따라간 심순애’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조금씩 변형된 채 내려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50년, 여대생들은 6.25 전쟁 중 피란 시절에도 ‘멋’에 죽고 살았다고한다. 그 ‘멋’은 어쩌면 목숨 같은 ‘자존심’과도 같은 반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커튼을 찢어서 드레스를 해 입고 남자 앞에 뽐내듯 나타나는 모습도 떠오른다. 그 ‘커튼드레스’가 바로 그녀의 ‘자존심’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단 여자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남자들에게도 역시 그런 ‘허영’으로 치장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엄연히 있다고 본다.

그러고 보면 ‘허영덩어리 된장녀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인간의 이면을 희화화 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 들보는 보이지 않고 남의 눈에 ‘티’만 보인다는 말씀처럼 이 더운 날 ‘된장녀’ 논쟁은 어쩌면 ‘물신주의적 세태’를 풍자하고 싶은 할 일없는 사람들의 의식있는 저항이라고나 할까.


만약 위에서 인용한 ‘된장녀’들이 실존한다면 그 또한 지구상의 수많은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일 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녀들의 그런 몸짓은 바로 그녀들의 ‘자존심’의 한 변형인 것 같다. 물질만능시대에 오염된 ‘비틀린 자존심’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겠지만.


우루과의의 언론인 겸 작가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이런 세태를 예견한 듯 이런 말을 했었다. "네가 얼마나 소비하는 지 말해주면, 너의 값어치가 얼마인지 말해줄게". 그만큼 현대는 '물신'이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니 된장녀들의 '최고'를 지향하는 소비 행태는 나름대로 이해할 만한 측면이 없지 않다.  

 

2006년 제일 무더운 8월 현재, ‘된장녀로 살아가기’도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살인적 무더위에 걸맞는 '최고의 소비패턴'을 지향하려면 그것도 보통일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원체 인생은 어려운 것이다. Life is very difficul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