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바다이야기'와 마카오 라스베가스 원정기

스카이뷰2 2006. 8. 21. 09:06
 

   바다 이야기와  마카오, 라스베가스 원정기


두 달 전 쯤 우리 ‘스카이뷰 블로그’에 주옥같은 답글을 자주 올리는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바다이야기가 시끄럽습니다. 한집 건너 생긴 도박장인데 배후세력이 재밌어요. 노사모 회장하던 명계남이가 확 잡고 있답니다. 함 취재해 보세요. 조폭들하고도 연계돼 있는데 이권이 조 단위를 넘어섰대요. 엄청납니다.”


그때 마침 퇴근길 좌석버스 안이라서 자세한 건 물어보지 않았지만, ‘바다이야기’라는 제목에서 엉뚱하게도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프랑스 소설이 떠올랐다. 줄거리는 가물가물하지만 2차 대전을 배경으로 모녀가 등장하고 아무튼 그걸 읽었을 땐 꽤 감동이 컸는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냥 ‘기억의 한 끄트머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곧 이어 한 20년 전인가 여행 갔던 마카오에서 일행과 함께 들렀던 카지노클럽의 풍경이 떠올랐다.


태어나서 카지노라는 곳에 그날 처음 가봤는데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건 짙은 화장을 했지만 늙은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머리만 새카맣게 염색한 한 중국여인이 한 손에 담배를 쥔 채 머신에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듯 뚫어지게 바라보던 모습이다.


여인은 어쩌면 전 생애를 도박에라도 바쳐온 듯한 그런 품새였다. 순간 뭉클한 연민이 느껴졌다. 어느 한 인생이 저렇게 스러져가는 구나라는 감상도 일었다. 어쩌면 저 여인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절박한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대상이 어떤 것이든 한 인간의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볼 땐 언제나 뭉클해지곤 하는 버릇이 있는 내게 그때 그 도박장의 중국인 여인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도박이라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 건 몇 해 전 라스베가스에 여행 갔을 때였다. ‘도박의 천국’인 그곳에 간 기념으로(?) 우리는 카지노에 갔고, 칩을 바꿔서 머신에 ‘도전’했다. 결국 거금 1백 달러를 불과 몇 십 분만에 ‘가볍게 날리고’ 손을 털고 나왔다. ‘나의 도박 원정기’인 셈이다.


라스베가스에서도 마카오에서와 마찬가지로 뚱보 백인 여성이나 인생의 기력이 다 쇠한듯해 보이는 늙은 흑인이 초라한 행색으로 기계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도박에 몰두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마카오와 달리 라스베가스에서는 주로 서양인들이 도박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는 거의 대동소이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맥주나 콜라 같은 걸 수시로 공짜로 마시겠냐며 왔다갔다하는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라스베가스가 훨씬 좋았다.


요 한 며칠 새 대한민국에는 ‘바다이야기’라는 ‘쓰나미’가 덮치고 있다.

오늘 조간신문들엔 1면부터 한 3,4개 면을 완전도배하고 있다. 어떤 신문에선 ‘노인과 바다’가 아닌 ‘조카와 바다’의 비극이라며 대통령 조카의 연루설을 시니컬하게 비꼬고 있다.


사실 ‘바다이야기’라는 말을 그 지인으로부터 처음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범죄의 냄새’가 느껴졌었다. 돈· 조폭· 권력이 얽혀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이권의 규모가 지난 정권에서 터졌던 다른 어떤 게이트보다 엄청나다.


‘명계남이 관련됐다’던 그 지인의 말을 반증하듯 명계남씨는 자신이 ‘바다이야기’와 관련 있는 것처럼 보도한 매스컴과 온라인 매체들 그리고 네티즌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했다.


시중엔 이런 얘기도 떠돈다. “노무현을 대통령 만드는데 1등 공신이었다고 자부했던 명계남이 노 정권 출범 후 한 자리를 바랬는데 자리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실속을 챙기려했다”


그러나 명씨 자신은 ‘바다이야기’라는 곳엔 가본 적도 없다고 펄쩍 뛴다. 신문 보도에는 명씨가 ‘차기 대선자금을 끌어 모으려고 했다’는 시중의 설도 전하고 있다. ‘아무 죄가 없다는’ 명씨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해도 이런 ‘소박한 의문’이 든다.


왜 하고많은 ‘노무현의 사람’ 중에 명계남이 지목됐는가. 명씨는 이 점을  곰곰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도 있듯이. 무슨 ‘작은 빌미’라도 제공했기에 그런 얘기들이 그렇게도 시끄럽게 돌아다니고 있지 않겠는가.


또 하나. 이게 아마 이번 사태의 ‘결정적 키워드’가 될 것 같은데, ‘대통령의 조카’라는 존재다.


대통령은 발 빠르게도 이미 “우리 조카는 죄가 없다”는 말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이러저러한 보도를 종합해 보면 우리가 언제나 ‘게이트 성 범죄’에서 보아왔던 ‘구색’이 다 갖춰져 있는데 대통령이 ‘그 애는 죄가 없다’고 하니 수사에 나선 검찰은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에선 ‘대통령이 수사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 같은 평범한 국민이 보더라도 ‘대통령의 언사’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흔히 자식이 비행을 저질렀을 때 대부분의 부모의 반응은 “우리애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로 나온다. 대통령도 어쩌면 이런 경우에 속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 조카는 대통령이 ‘친자식처럼 각별히 여기는 사연이 있는 조카’라고 한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 자랐던 현 대통령이 크게 믿고 의지했던 맏형의 아들이 바로 지금 ‘조카와 바다’의 주인공이다. 그 맏형은 대통령의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으나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조카는 얼마전 청와대에 불려가서 ‘작은 아버지 대통령’에게 ‘해준 것도 없으면서 앞길을 막냐’며 울면서 대들었다고 한다. 자 이쯤 되면 대통령가의 소소한 집안사정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셈이다.


대통령은 아무리 ‘각별히 사랑하는 조카’라도 수사초등 단계에서 미리 ‘우리 조카애는 죄가 없다’라고 말한 것은 큰 실수였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의 불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어디 한두 번 당했는가. 늘 정권 말기에는 ‘게이트’가 터졌다. 가깝게는 김대중정권 말기에 대통령의 세 아들들이 연루됐던 ‘게이트’의 악몽이 떠오른다.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는 건 둘째아들이 ‘검은돈’을 맡겼던 한 인사의 아파트 베란다에선 수십억 원의 ‘현찰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는 기괴한 이야기다.

 

김대중씨도 처음엔 “우리 아들들은 무관하다”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누군가가 ‘직언’을 하면 ‘노인’이 화를 내는 바람에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결국 아들들이  둘씩이나 구속당하는 초유의 코믹사태를 맞았지만.


아무튼 궁금한 건 왜 이런 ‘돈’에 얽힌 ‘게이트’가 어김없이 정권 말기에 터지느냐이다. 아무리 인간사는 모습이 동서고금 비슷하다지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시간차를 두고 잊지 않고 벌어지는지가 정말 궁금하다. 이건 아무래도 근본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아침 신문에 또 섬뜩하게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이 ‘바다이야기’비슷한 부류의 게임을 허락하는 걸 반대한 영상물등급심사위원회의 한 여성심사 위원에게 조폭출신인지는 몰라도 이 업체 대표가 “창자를 꺼내 목 졸라 죽이겠다. 사시미를 떠주겠다. 네가 게임에 대해 뭘 아느냐”고 협박했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정신적 살인행위’다. 기사로 읽기만 했는데도 등골이 오싹해졌는데 당한 그 여성은 오죽했겠는가 싶다. 이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며칠 전에는 유진룡 전 문화부차관이 청와대 비서관들로부터 “배 째 드리죠” 라는 엄청난 폭언을 들었다더니 도대체 이 정권 들어서는 왜 이렇게 깡패들이나 쓰는 저질스럽고 상스러운 말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선량한 사람들을 겁주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무 말이나 마구 뱉어내 상대방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게 혹시 어디서 배운 ‘수법’같아서 무섭기만 하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바다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고 했다. 글쎄 그냥 이야기에 불과할까? 국민 대다수는 “드디어 터질 게 터졌군”하며 냉소를 보내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사태파악하나 못하는 위인들이 청와대에 앉아있으니 나라꼴이 뭐가 되겠는가.


신문에는 또 ‘바다이야기’피해자들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이야기처럼 나왔다.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다이야기’에 9천만 원을 바치고 동맥을 끊고 자살한 40대 주부나 1억 원 이상을 탕진하고 목매단 30대 회사원의 이야기들이 그들 가족들의 이야기와 함께 아침부터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사람들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돌아가는 꼴이 이 “바다 이야기 쓰나미”는 이 정권에서는 밝혀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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