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4천만원짜리 황금수의와 접시꽃 당신

스카이뷰2 2006. 8. 23. 14:51
 

     4천만 원짜리 황금수의와 접시꽃당신


언젠가 한 시인이 젊은 아내를 호강 한번 못시켜주고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뒤 단장(斷腸)의 마음으로 시를 써서 세상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일 겁니다. 구체적인 시 구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살아생전 옷 한 벌 못해 주다가 베옷 한 벌 입혀서 떠나보내는 아내의 모습’을 절절히 그려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었지요.


세상이 온통 ‘바다이야기’로 엄청나게 시끄럽습니다. 정부가 전을 펴준 ‘바다이야기’에 빠져 패가망신하고 끝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가난한 서민들이야기가 오늘도 신문지면을 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곧 대박이 터져요’라는 장내 알바생들의 외침에 솔깃해져 행여나 하다 끝내 돌이킬 수없는 파국을 맞은 그들도 아마 ‘베옷 한 벌’ 입고 이 세상을 떠났을 겁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주머니도 없는’ 베옷 한 벌을 입고 떠나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부모님이 가시는 길을 지켜본 불효자로서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섭니다. 저의 부모님들도 ‘베옷 한 벌 ’ 입으시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가시는 마지막 표정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신듯해서 살아생전에 두 분의 ‘근심거리’였던 불효자의 마음이 그나마 작은 위안을 받았었습니다.


아마 부모님은 가시는 길에서마저도 ‘철부지 자식’의 마음이 너무 상할 까봐 그렇게 평화로운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시는 ‘배려’를 해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황금수의 한 벌 4천만원’이라는 기사를 보니 문득 저렴한 ‘베옷 한 벌’ 입으시고 먼 길 떠나신 부모님이 그리워집니다.


‘황금수의’는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잠깐 나왔습니다. 기자의 멘트는 이랬습니다.

“촘촘한 삼베 결 사이사이에 순금이 번쩍입니다. 이른바 황제수의입니다.

최고급 삼베 원단에 일일이 순금 도료를 입혔다는 설명입니다. 한 벌 가격이 무려 4천만 원. 웬만한 자동차 2대 값입니다.”


이 황금수의는 조선시대 왕들도 못 입었고, 중국의 황제들만 입었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지금 시판하고 있는 ‘황금수의’는 한국사람 10명에게만 한정판매 한다지만 지금까지 무려 100여벌! 40여억 원 어치가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시중백화점에서도 이 ‘황금수의 판매’에 뛰어들어서 1800만원대에서 500만원대까지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답니다.


매장 직원은 “좋은 수의를 쓰면 본인이 좋은 게 아니라 후손한데 좋대요. 잘 삭아주면, 깨끗하게 환골이 되면 후손들한테 좋은 거래요.”라고 말하는데 저는 이 소리를 듣자마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 지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오죽하면 ‘인간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생명의 탄생이 더없이 소중하듯 생명의 소멸 또한 장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 권력자도 최고 재벌총수도 때가 되면 누구나 세상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이 인간사의 철칙이기에 인간으로서 우리는 그 죽음이라는 현상을 엄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육친의 죽음은 너무도 큰 슬픔과 함께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 ‘잘 모시고 싶다’는 자식된 도리를  각성하게 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마당이니 ‘좋은 수의에 좋은 관’을 구입하고 싶은 건 ‘고애자(孤哀子)’로서는 당연히 갖게 되는 생각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4천만원짜리 황제· 황금수의’가 등장하고 그걸 산 사람들이 100명도 더 된다는 건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나라 살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점심을 굶는 어린 학생들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점심때 종로 파고다 공원에 가면 끼니를 거르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뭐, 자본주의 사회니까 ‘능력껏’ 쓰고 산다 해서 누가 대놓고 욕하진 않겠지요. 하지만 ‘1억원짜리 관에 4천만원짜리 수의’가 심심찮게 팔려나간다는 것은 일종의 ‘범죄현상’ 아닐까요?


언젠가 월세 35만원을 낼 능력이 없어서 거리에 나앉게 된 40대의 지체장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생각납니다. 이것뿐이 아니죠.

소녀가장 누이와 함께 어렵게 살았지만 미술에 재능 많았던 한 소년이 계속 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불가능해지자 역시 자살을 택했다는 슬픈 사연도 떠오릅니다.


이런저런 ‘슬픈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 ‘바다이야기’처럼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쪽에선 저렇게 ‘후손에게 더 좋다는’ 얄팍한 상술까지 동원해 한 벌 4천만원짜리 수의가 심심찮게 팔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정말이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네요. 4천만원짜리 수의를 입은 망자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요?


안톤 슈낙의 그 유명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이 ‘황금수의 이야기’와 ‘바다이야기’도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새 초가을이 다가왔습니다. 하루아침 사이에 서늘한 바람결을 만나니까 문득 ‘인생무상’이 느껴집니다. ‘살아있는 자의 슬픔’같은 것이 슬며시 가슴을 파고듭니다. 원초적인 슬픔이라고나 할까요. 그렇잖아도 정서적으로 서글퍼지는 시절에 ‘황금 바른 4천만원짜리 수의’같은 싸구려 이야기를 들으니 더 허무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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