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박원순변호사의 경우

스카이뷰2 2006. 8. 14. 17:28
 

        박원순 변호사의 경우


지난 토요일(12일) 심야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요즘 갑자기 그 이름이 주목받고 있는 박원순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봤다.


아침 주부시간 MC로 활약 중인 여자아나운서가 아침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고 싶었는지 그녀에게는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헤어스타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로 언젠가 한번 프로야구 선수 이종범이 등장해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 거의 끝나갈 무렵에 보게 되었다.


56년생이라는 박씨는 나이에 비해서는 좀 늙어 보이는 ‘촌로스타일’이었다. 비교적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래도 눈매만은 다소 ‘성격 있어’ 보였다.


화면에는 그의 지난 이력이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었다. 서울대학에 입학한 지  한달만에 데모하다가 제적당했고, 잠시 투옥당한 경험이 있다는 소개멘트가 나왔다.


박씨는 감옥이야말로 ‘독서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제적 후 5년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생활을 한 1년 하다가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무슨 ‘공적인 조직’에 몸담은 경력은 아주 일천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 그가 왜 출연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요새 그를 둘러싼 희한한 ‘설’ 탓에 나온 것 같았다.

그는 요새 ‘노무현의 히든카드’라는 소문이 한 차례 돌고 난 뒤 부쩍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중이다. 그 ‘히든카드’는 다름 아닌 여권의 차기 대통령후보라는 얘기다.


이렇다 하게 내세울 대선후보가 없는 여당으로서는 지난해 이후 선거마다 완패· 참패당하는 입장이고 보니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별 별 사람의 이름이 무슨 유성처럼 등장하고 있는데 이 박원순이라는 사람도 그 ‘유성’중에 하나라고 한다. 

 

더구나 ‘오세훈 효과’를 벤치마킹이라도 하려는 듯, 지금 여당에서는 비록 당의 지지율도 낮고 ‘소소한’선거에 연달아 참패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본선’인 대선에만 이기면 볼 장 다보는 것이라는 자신감인지 환상인지가 팽배해 있어, 그런 ‘반짝 스타’들을 넌지시 ‘여론조사 중’이라는 소문마저 돌고 있는 형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운찬씨가 0.4%, 박씨가 1%였고, 고건씨가 58%로 1위, 강금실씨가 9.4%인가로 2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선에 임박해서 여지껏 별로 알려지지 않은 ‘참신한 시민운동가’이자 노대통령처럼 ‘율사출신’인 박원순씨를 내세워 또한번 ‘토네이도 급’ 바람으로 정권을 재창출해내겠다는 대통령의 복안이 지금 상황으론 영 맥을 못 출 것 같다.


진행자도 이런 ‘시류’를 의식해선지 ‘대권 도전’에 관한 질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가 출연한 것은 바로 이 ‘대권설’때문이었을 텐데...


박씨는 이 질문에 대해 “한국에 그렇게 사람이 없나, 곳곳에 찾아보면 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는 말로 일단 부인했다. 그는 요 며칠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내가 향하고자 하는 목적지와 항로가 (정치와는) 다른 길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정계진출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할 일도 많고 굉장히 바쁜데 사람들이 자꾸 엉뚱한 연상을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까지 썼더라”는 말도 했다.

그러고 보니 박씨는 그가 원하든 않든 ‘뉴스의 인물’로 라디오나 TV는 물론이고 인터넷 뉴스에도 요 근래 부쩍 오르내리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창을 뒤져 보니까 그의 ‘대권주자설’은 이미 지난 6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변인인 중앙대 제성호라는 교수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도하면서 친북 용공사상의 유포, 확산을 주장해 온 박원순 변호사가 최근 탈이념적 행보를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제 교수는 “참여연대를 이끌던 박 변호사가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 등을 만든 것도 친북좌파적 이미지를 줄이고 국민적 인기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어쩌면 그는 오래 전부터 대권을 꿈꾸고 이같은 행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또 열린우리당이 5·31 지방선거에 참패했는데도 노대통령이 ‘선거 한 두 번 진다고 역사가 바뀌는 게 아니다’고 말한 것엔 대선승리에 대한 장담이 내재돼 있으며, 그 중심에 바로 박원순 변호사라는 ‘필승의 히든카드’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가, 시중에는 박변호사가 1순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2순위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도 덧붙였다.


그는 이런 주장들과 함께 박씨가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여서는 안 되는 4가지 이유도 함께 언급했다. (아주 쐐기를 박고 싶었던 모양이다.^^)


박 씨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친북용공 사상을 유포했다는 점, 희망제작소가 골수 주사파인 참여연대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 대권을 위한 이미지· 스케줄 관리를 이미 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항간에 들리는 바에 따르면 장관보다 박변호사를 만나기가 더 어렵고, 웬만한 자리엔 나타나지도 않는다고 한다”며 “그는 이미 장관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는 입장에 있다”고 했다.


제 교수는 “박 변호사가 대선에 나서면 노 대통령에 이은 또 하나의 이미지 정치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라며 “노대통령은 그나마 해양수산부 장관이라도 해봤지만 그는 시민 단체 활동과 몇 가지 정부 정책 자문 활동이 전부였다”며 ‘박원순 불가론’을 폈다.


이렇게 뉴라이트 진영에서 ‘쌍심지’를 돋고 있다는 것만 봐도 박원순씨는  이미 ‘정치적 존재’가 된 것 같다. 물론 그러니까 텔레비전이다 라디오다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사실 박원순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지명도가 높은 사람은 아니었다. 작년인가 ‘헌옷가지’를 모아서 싸게 팔아가지고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무슨 ‘아름다운 가게’인지가 매스컴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박씨의 이름은 거의 대중에겐 노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뷰에서 박씨는 이 ‘가게’가 잘 되고 ‘기부자’들이 늘어나 자신은 현재 2백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성공한 시민운동 단체’중의 하나로 꼽힐 만 할 것 같다.


박씨는 자신의 명함을 보여주면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언뜻 이 말을 들으면서 그가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를 디자인한다는 말은 곧 ‘정치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박 씨가 ‘정치는 내 본령이 아니다’고 하지만 그는 지난 2000년 총선 때 그 유명한 ‘낙선운동’을 펼친 장본인이고 보면 그렇게 ‘정치와 무관한’사람만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간 끝에 그는 이런 말을 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오늘 우리 블로그에 그를 올린 것도 바로 이 대목 탓이다.


박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해요. 책상 주루룩 붙여놓고 답답하지 않아요.”라고 말한 것이다. 하도 놀라서 그 다음 말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세상에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그 독특한 시각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사석(私席)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중파 방송에서 그래도 ‘노무현의 히든카드’로 ‘대권’을 바라본다는 ‘소셜 디자이너’가 어떻게 그런 말을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왜 ‘대기업의 샐러리맨들’을 불쌍하게 여기는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오늘 그는 전남 순천에 출장가서 전화연결이 어렵다고 한다. 역시 바쁜 사람인가보다.


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니까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말할 자유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명망가’가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불쌍하다’는 말을 버젓이 방송에 나와 말한다는 건 아무래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어보였다.


‘대기업 맨’이 불쌍하면 거기 들어가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거기에 끝내 못 들어간 수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중기업이나 소기업에 다니는 젊은이들이나 그나마도 취직이 안 돼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는 요즘 ‘젊은 백수 애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게다가 아무리 대기업이 ‘재벌들의 부산물’로 눈총받는 일이 많았다 손치더라도 그들이 있어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먹고 살게 된 것만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걸 다 떠나서라도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불쌍하다’는 그의 인식과 의식구조가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50세’라면  특정 직업군을 향해 ‘불쌍하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던진다는 것은 얼마나 실례라는 걸 알만한 나이가 아닌가.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경우엔 그 말도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그냥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짧은 소견으론 아무리 생각해도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인생자체가 불쌍한 거 아니겠는가. 박씨처럼 돈 잘 벌 수 있는 변호사 자격 있어도 그냥 200만원 월급 받으며 시민운동가로 살아가야 불쌍하지 않은 인생인지 묻고 싶다.


물론 그는 나쁜 의미에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변명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대기업 맨은 불쌍하다’는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소셜 디자이너’라는 그의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편협하고 왜곡된 인식과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보법 폐지를 앞장서서 주장해왔다’는 그의 전력과 시민사회운동가로서의 그의 경력이 어쩌면 그런 재벌그룹이 운영하는 대기업에 부정적 시각을 갖게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선후보 히든카드’로 급부상한 인물인데 그 격에 어울리지 않는 천박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대기업 회사원이 불쌍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호방한사람이어서 현 대통령의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원순씨의 이 발언은 그의 공식적인 ‘해명’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