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맨발의 청춘 변천사

스카이뷰2 2006. 7. 19. 14:20
 

               브라보 ! 맨발의 청춘



며칠 전 텔레비전 가요프로그램을 우연히 보다가 아주 재미있는 노래를 들었다. 제목은 ‘맨발의 청춘’, ‘캔’이라는 2인조 남성 가수 팀이 ‘조폭 분위기’가 도는 듯한 하얀 양복을 갖춰 입고 나와서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후렴구인 ‘간다! 와 다다다다다’ 라는 부분에서 그야말로 뜨거운 ‘청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TV화면 위로 뜨는 가사를 보니 슬며시 웃음마저 나올 정도다.

‘맨발의 청춘’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를 유행가다운 감각으로 잽싸게 담아내놓은 센스가 돋보였다.


‘이렇다 할 빽도 비젼도 지금 당장은 없고/ 젊은 것 빼면 시체지만 난 꿈이 있어/ 먼 훗날 내 덕에 호강할 너의 모습 그려봐/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 니 인생 걸어보렴’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이미 10년 전에 한 차례 가요계를 평정한 전력이 있다고 한다. 박력 있는 창법이 돋보이는 ‘캔’이라는 남성 듀엣이 리메이크해서 요새 한창 뜨고 있는 노래다.


오리지날 ‘맨발의 청춘’은 30여년 전 최희준이 동명의 영화주제곡으로 불러서 엄청나게 히트시킨 것으로 그 이후 오늘날까지 ‘뒷골목 오빠들’이나 ‘해병대’ 등등 이른바 ‘군기가 센 사나이 집단’의 ‘영원한 주제가’로 명맥을 이어왔다. 


‘캔’의 ‘맨발’이나 최희준의 ‘맨발’이나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가진 것 없는 맨발의 청춘’들이지만 ‘그녀’를 향한 ‘불타는 사랑’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필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60년대 ‘맨발의 청춘’은 ‘눈물도 한숨도 나홀로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로 첨부터 ‘목숨’을 담보로 하는 비장미를 내걸고 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마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 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이렇게 60년대 맨발들은 그녀들의 ‘가슴’에 호소하면서 ‘그녀’를 태양으로 숭배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21세기 맨발’들은 저돌적인 자세로 ‘가진 것 없는 맨발’을 오히려 ‘무기’로 흔들며 덤빈다. 가진 게 없지만 ‘내겐 꿈이 있어’라고 목에 힘을 준다. 꿈! 대단한 것이지. 청춘의 최고의 담보물이 아니겠는가!


21세기 맨발은 이렇게 외친다. ‘니가 보는 지금의 나의 모습 그게 전부는 아니야./ 멀지 않아 열릴 거야 나의 전성시대.../ 갈길이 멀기에 서글픈 나는 지금 맨발의 청춘/ 나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나 언젠가 너의 앞에 이 세상을 전부 가져다 줄꺼야/ 기죽지는 않아 지금은 남들보다 못해도 급할 건 없어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 먼 훗날 성공한 내 모습 그려보니 흐뭇해/그 날까지 참는 거야 나의 꿈을 위해’


어떻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주제’를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지. 하나도 꿀릴 게 없는 그 청춘에 눈이 부시다.

지금은 ‘갈 길이 먼 서글픈 맨발의 청춘’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녀’ 앞에 ‘이 세상을 전부 가져다 줄꺼야’라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유행가에 툭하면 등장하는 ‘사랑하는 너’에게 ‘밤하늘의 해도 달도 다 따다 주겠다’는 상투적이고 추상적인 암시를 21세기 맨발들은 ‘이 담에 꼭 성공해서 널 호강시켜주고 세상을 전부 갖다 바치겠다’고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제시하며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60년대 맨발들은 ‘그녀’를 ‘태양’처럼 받들며, 어려워하며 접근했지만 21세기 맨발들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기백 있는 사나이’의 모습으로  들이댄다.


노래 부르는 가수들도 30여 년의 세월만큼 달라졌다. 예전 최희준은 부동자세로 얌전하게 불렀지만 21세기 캔은 현란한 댄스와 함께 중간 중간에 래퍼까지 동원해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까만 선글라스를 낀 래퍼가 쏟아내는 랩도 변심하기 쉬운 ‘그녀’의 가슴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용하다는 도사 그렇게 열나게 찾아다닐 것 없어/ 두고 봐 이제부터 모든 게 원대로 뜻대로 맘대로 잘 풀릴 걸/ 속는 셈치고 날 믿고 따라 줘/뚜껑을 열어봐야 알지 벌써 포긴 왜 해/ 그렇다면 이건 사랑도 아냐’     


무대 위를 축구선수들처럼 뛰어다니면서 그들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녀의 의중을 꿰뚫어보는 협박성(?) 멘트까지 날리며 온갖 언어의 곡예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요새처럼 20대의 90%가 백수라는 ‘이구백 시대’에 그래도 21세기 맨발들은 ‘기’ 하나는 죽지 않고, 가진 건 배짱뿐이고 폼만 잰다는 ‘그녀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그래도 ‘나 젖 먹던 힘 다해 내 꿈을 이룰 거야’라고 호기를 부린다. ‘맨발에 땀나도록 뛰는 거야 내 청춘을 위하여!’ 자세 좋고!


사실 ‘청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불안한 영혼의 소유자들’로 일컬어진다. ‘가진 것 없어도 부러운 게 없는 끓는 피’들의 열정을 누가 당해내겠는가. ‘질풍노도의 시대’인 그 청춘들에게는 권력의 독재도 통하지 않고 부패한 금력도 두렵지 않다.


그들에겐 오로지 순백한 정신의 힘으로 ‘사랑’을 쟁취해내기 위한 무모한 열정을 발산한다. 그 사랑은 꼭 ‘그녀’나 ‘그’가 아니어도 좋다. 무엇이든 ‘목숨’걸고 돌진할 수 있는 순수한 용기가 바로 ‘청춘의 특혜’인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다. ‘청춘은 소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하지만 ‘청춘은 때때로 지나치게 자존심을 강하게 하지만 젊은 자존심이란 모두 연약한 것’이어서 청춘은 상처받기 쉬운 계절이다.


‘청춘!’이라고 발음해 보시라. 그 음향부터가 왠지 강렬하고 용감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니 세상 전부를 가질 수 있다는 ‘호기’도 부릴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청춘’인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대기자’에 불과한 자신들의 한계를 알기에 ‘꿈’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존재들인 것이다.


예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그 유명한 민태원의 ‘청춘예찬’이 실려있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은 힘이 있다. .....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페이터의 산문’과 함께 이 ‘청춘예찬’은 그 시절 고교생들이 필수적으로 암기해야하는 좋은 문장이었다.


요즘 애들은 ‘낭만’이 없다고 구세대들은 말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청춘의 낭만’은 영원한 것이다. 


요즘 ‘맨발의 청춘’들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첨단 의상’을 차려입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꿈꿀 것이다.

‘풍요로운 세대’라 ‘낭만도 뭣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구세대의 착각!


‘21세기 맨발’들은 칙칙하지 않고 쿨 하면서도 따스한 감성으로 청춘을 노래한다. 브라보 21세기 맨발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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