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찍다 차에 친 에릭과 드라마작가들 수준
가수 겸 탤런트 에릭이 어제(22일) 새벽 1시 반쯤 드라마 촬영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어이가 없다.
에릭은 MBC 월화 드라마 ‘늑대’의 주인공으로 여주인공인 한지민이 무단횡단하는 것을 보호하는 장면을 찍다, 달려오던 스턴트 차량이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는 바람에 한지민을 감싸안은 채 차에 받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땅에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에릭을 친 차량의 앞 유리가 깨질 정도였다니 그 부상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 에릭은 한지민을 경호하는 수행비서 역을 맡고 있었는데 드라마 상황이 실제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운수 사납게.
후속보도에 따르면 에릭은 전치 4주의 진단과 함께 발목골절로 기브스를 한 상태여서 당분간 드라마촬영이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여주인공 역시 목을 다쳐 식사도 못할 정도로 중상이라는 것이다.
그 또래의 남자 탤런트 중에는 보기 드물게 서늘한 미남형인 에릭은 지난 1월 16일부터 시작한 이 드라마에 상당한 의욕을 갖고 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회 때 잠깐 이 드라마를 봤지만 쓸데없이 주인공을 위험상황에 몰아넣는 듯한 장면이 꽤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에릭이 한지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기 친구를 시켜 오토바이를 탄 채 한지민의 백을 들치기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에릭이 몸을 던져 아슬아슬하게 여주인공을 막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게다가 함께 쇼핑센터에 들어가서는 화재가 난 것처럼 위장해 에릭이 목숨걸고 구출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장면도 나왔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어제 새벽처럼 ‘실제 교통사고’를 내버리고 만 것이다.
촬영을 하다가 소소한 사고가 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처럼 드라마 초반부터 ‘사고’로 얼렁뚱땅 남녀 주인공을 연결시키려 한다는 ‘설정’은 정말이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구태의연한 수법이라고 본다.
왜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데 이렇게 꼭 극단적이고 어설픈 ‘돌발사고’를 계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지 아무래도 이 드라마를 쓰고 있는 작가의 ‘능력’을 일차적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를 총괄하는 감독인 PD가 이런 엉성한 상황 설정에 대해 작가에게 조언을 해 방향을 잡아주지 않는지도 의아할 뿐이다.
아무리 작가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존중해야 한다지만 ‘능력이나 필력, 작가적 소양’이 부족한 작가에게만 매달려 이런 ‘수준 낮은 사고’를 일으켜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이 사고 장면은 여주인공이 ‘평생의 소원인 무단횡단’을 감행하기위해 도심 한복판의 도로를 무단 횡단한다는 설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상황설정인지 그 작가와 감독에게 엄중이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평범하면서 소소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굳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연출해내야 하는지.
더구나 재벌 그룹의 따님들 중에는 그런 희한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없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필이면 ‘평생소원’이 도로를 무단횡단해보는 것이라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작가는 무슨 창조적인 스토리라고 들이밀었는지 그것도 한심하지만 그걸 수용해서 새벽 1시에 촬영이랍시고 했다는 방송국 제작진들의 판단력에 그저 놀랄 뿐이다.
어차피 드라마가 성립되려면 ‘사건’은 기본이긴 하지만 그렇게 ‘교통사고’ 어쩌구로 엮어대려는 것은 ‘하수중의 하수 수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또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고질적으로 등장하는 게 이런 ‘현실성 없는 인물설정’이 아닌가 싶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남주인공 에릭은 ‘미천한 출신’인데 여주인공은 백화점 재벌 딸이다. 거기에 에릭의 ‘연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남주인공은 현직 국회의원 아들이자 그 백화점 ‘홍보이사’인데 웬 이사 주제에 그리도 떵떵 거리는지 그저 우습기만 하다. 인물을 그리려면 좀 현실성 있게 그려야지 그렇게 ‘저능아’처럼 나대는 ‘이사’는 현실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울 듯싶다.
4000만 시청자 중에 재벌을 그렇게 간단히 접할 수 있는 인구는 과연 몇 명이나 된다고 한국 드라마에서는 걸핏하면 재벌이나 그 2, 3세들이 등장해 자신보다 ‘신분’낮은 상대방과 ‘비련’의 사랑 놀음에 빠지곤 하는지. 그렇게 해야 시청률을 올린다는 것이 ‘그 쪽 사람들’ 주장인 것 같지만 이거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한 신문에는 ‘드라마 작가’들에 대한 특집을 대대적으로 했는데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는 ‘지름길’이 바로 드라마 작가가 되는 길이라는 요지의 기사를 두 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다.
거기에는 현재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작가군들을 자세히 취재해 그들이 말하는 ‘대박 드라마 공식’도 크게 다루고 있다.
이름깨나 쓰고 있는 현역 작가들의 ‘비결’은 오십보백보인 듯싶다. 그들은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구도· 콩쥐팥쥐 식 · 신분상승· 해피엔딩 권선징악·일의 성공’ 등을 대박 드라마의 키 워드로 꼽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하나마나한 얘기인 것 같다. 결국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본다.
결국은 ‘시대의 흐름’과 맞아 떨어지는 ‘운’을 타야 성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흥행 요소’라는 얘기 아니겠는가.
기사에 보면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들’의 ‘권력화’현상도 나온다. 현존하는 작가 중에 최고로 꼽히는 아무개는 ‘출연자 선정권한’도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PD들도 그 앞에서는 작아진다고 한다.
중년의 유명 여성탤런트는 가끔 방송 작가와 목욕을 간다고 한다. “가서 등을 밀며 기분을 풀어드려야 선생님이 다음 드라마에서도 나를 잊지 않고 써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여성 탤런트 뿐 아니라 내가 듣기로 또 다른 여성 탤런트는 ‘작가 선생님과 매일 밤’ 전화로 ‘수다’를 떨어준다고 한다. 물론 그동안 같이 활동한 ‘정’도 있지만 그래야 ‘꾸준히’ 배역이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동성’의 작가와 탤런트일 경우는 그래도 괜찮지만 이성간에는 결국 이상한 ‘상납’ 어쩌구 하는 얘기가 돌게 마련이다.
무명의 한 여성 작가는 대선배 여성작가 집에서 거의 ‘식모’처럼 살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야 어차피 인간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있을 수 있는 것들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제발 ‘작가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러면 좀 좋겠는가.
겨우 판 벌인다는 게 ‘교통사고’로 주인공 남녀를 실제로 다 죽게 만들어 놓는 어이없는 설정이라면 그런 드라마의 수준이야 뭐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기사에는 또 ‘지존(至尊)’ 30여년이라는 엄청난 수식어까지 사용하면서 작가 김수현씨를 전화 인터뷰한 내용도 나오는데 가관이었다.
그녀가 87년에 썼던 ‘사랑과 야망’이라는 연속극을 리메이크해 다시 방영한다는 내용과 함께 그녀의 ‘드라마 철학’을 소개했다.
다 알다시피 김수현씨는 한때 ‘대사를 재미있게 쓰는 시청률의 여왕’으로 꼽혔던 60대 중반 작가로 방송작가협회인지의 이사장까지 지낸 ‘방송계의 파워 우먼’이다.
그녀는 이번 인터뷰에서 “정말 정말 나를 능가하는 훌륭한 후배가 자꾸 나오기 바란다”다고 말했다.
이 여성 작가의 인터뷰 기사 때마다 느낀 점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중후한 나이에도 왜 그렇게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말만 골라 하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뿐 아니라 언젠가 신문 인터뷰에서도 이와 비슷한 그러니까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걸 드러내놓고 표현한 적이 수 차례 있다.
글쎄 과연 그녀의 드라마가 그렇게 ‘최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화자찬’으로서는 ‘최고 경지’에 오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어쨌든 내가보기엔 우리나라 방송작가들이 이렇게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듣자하니 그나마 미리미리 대본을 써서 보내는 게 아니라 ‘쪽 대본’이니 ‘폰 대본’이니 해서 촬영 현장에 쪽지형식으로 급조한 대본을 들이민다든지 심지어는 핸드폰으로 불러주는 ‘대단한 작가’도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그런 ‘능력 없는 작가’들이 판치니 이렇게 에릭 같은 전도양양한 청년이 촬영하다가 ‘죽을 뻔’한 일도 터져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방송사들은 그 엄청난 재력으로 제발 ‘능력되는’ 신인작가들을 많이 발굴해내 시청자들이 ‘드라마 보는 재미’로 살 수 있게끔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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