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누라 죽이기>-청와대 행정관 살인사건을 보며

스카이뷰2 2006. 3. 21. 15:34
 

           마누라 죽이기-청와대 행정관 살인사건을 보며


10여 년 전 쯤 <마누라 죽이기>라는 한국영화가 히트한 적이 있다. 강우석감독이 제작까지 맡고 그때 한창 인기 좋았던 최진실과 박중훈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다. 그런 코미디류의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극장에 가서 보진 않고 나중에 텔레비전을 통해 본 기억이 난다.


한때는 눈에 콩깍지가 씌워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까지 했지만  ‘결혼이란 아름다운 오해로 시작해 참담한 이해로 끝난다’는 말처럼 그들도 사사건건 부닥치게 된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데 부인이 남편의 상사로 설정된 것부터가 코믹하다.


정석대로 남편은 외간여자와 바람나 ‘마누라와 이혼’을 꿈꾸지만 아내 입장에선 ‘천만의 말씀’인 것이다. 결국 조금 모자라 보이는 남편은 ‘마누라 죽이기’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의 연속이다. 심지어는 킬러까지 동원하는데 아마도 뜻대로 안 된다는 그런 줄거리다.


하도 오래전 본 영화라서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에 없지만 가만있어도 코믹해 보이는 박중훈이 ‘지겹고 무서운 마누라’인 최진실을 죽이려고 애쓰는 표정들이 억지로라도 웃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라서 그렇게 웃고 넘어갔지 만약 그것이 현실이라면 너무도 끔찍한 일이어서 상상 조차 하기 싫은 스토리다.

그런 ‘끔찍한 스토리’가 화면에서 튀어나와 며칠 전 현실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영화와 비슷하게 ‘주인공 부부’는 같은 대학 운동권 선후배 사이로 ‘같은 직종’에 종사했다.


영화에서 남편은 자신이 일하는 영화사 소속 여배우와 바람났듯이 현실에서도 남편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과 교제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여배우는 남편에게 이혼하고 함께 살자고 조르는데 현실에서도 ‘남편의 여자’는 ‘새벽’에 애인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가정 분란’을 일으키고 결국 남편은 ‘마누라 죽이기’에 나선다.


너무 끔찍할 정도로 영화와 현실이 닮은꼴이다.

더구나 현실의 ‘남편과 아내’는 현 정권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에서 근무했다. 일찍이 청와대와 집권여당에서 일하는 부부가 ‘치정’에 얽힌 부부싸움으로 한쪽이 한쪽을 무참하게 살해한 일은 없었다.


남편은 39세 나이로 3급 행정관이라는 고위공직 자리로 벼락출세했고, 아내 역시 35세에 열린우리당의 고위 당직자였으니 외관상으로 이들처럼 ‘잘나가는 파워 부부’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3월 17일 자정에 ‘문제의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부부 전쟁’을 시작했고, 그 길로 아파트를 함께 나선 부부는 불과 1시간쯤 후 결국 남편이 아내를 교살함으로써 파란만장한 부부생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만다.


텔레비전 뉴스에도 나왔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부부는 얼마 후 남편만 ‘맨발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간다. CCTV가 작동중이라는 걸 아마도 남편은 몰랐었나보다.


20일치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18일 부인의 빈소의 영정 앞에는 ‘노 대통령’ 명의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봉투가 놓여있었고, 전· 현직 여당 중진 의원들의 조화 10여개가 빈소를 채웠다고 한다. 대통령이 부의금을 전달했다는 것은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부인의 유해는 19일 화장을 거쳐 고향인 강원 태백시에 ‘뿌려졌다’고 한다. 얼마전 일어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추행사건’에는 벌떼들처럼 일어났던 여성의원들과 여성단체들은 ‘가정폭력’의 극단적 사례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다못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성명서 한 장 발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특히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은 이런 일에 엄중한 항의성명을 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열린당 여성의원들이야 ‘제 얼굴에 침 뱉기’이니까 침묵한다고 해도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은 이럴 때 ‘분연히’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전 인터넷 뉴스에 보니 ‘남편의 애인’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함께 7급으로 근무했던 여성으로 어제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청와대에 두 자리의 TO가 생긴 셈이다.^^


이 기사가 뜨자 올라온 수 백 개의 ‘댓글’이 사람을 웃게 만든다. ‘언제부터 청와대가 밀애의 장소로 변했나’는 그래도 점잖은 축이고, 더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의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만큼 국민은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경찰은 어제 남편이 ‘우발적으로 부인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는데, 기사에 따르면 경찰이 ‘범인’을 감싸주는데 급급해 기자들은 취재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코트에 넥타이’를 집어넣고 나간 정황으로 보면 누가 봐도 ‘준비된 살인’인데 경찰은 ‘범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넥타이를 코트에 넣었다나.


청와대 생긴 이래 이렇게 ‘쇼킹한 사건’은 없었다. 기껏해야 ‘돈’을 먹었다는 뉴스들이 주종이었는데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실의 고위공무원이 ‘부인 살인’을 했다는 뉴스는 아마도 ‘전무후무’한 얘기로 남을 것 같다. 청와대에 혈기방장한 ‘운동권 출신’들이 많아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상한 것은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청와대 관계자, 이를테면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은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 하다못해 ‘범인’이 근무했다는 홍보기획비서관실의 책임자라도 ‘놀란 국민 가슴’을 진정시켜줘야 하는 게 ‘상식’인데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이 범인을 감싸고도는 것도 다 어떤 ‘지시’가 있었기에 그러는 것이 아닌가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범인’이 울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발표’이니 그저 코웃음만 나올 뿐이다. 자꾸 ‘우발적’임을 강조하는 것도 상투적 수법인 것 같다.


결국 이렇게 되면 ‘죽은 사람’만 불쌍해지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영화에서의 <마누라 죽이기>는 마누라가 절대 죽지 않지만, 현실의 힘없는 ‘마누라’는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현실의 <마누라 죽이기>는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