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다

스카이뷰2 2006. 9. 30. 22:54
 

 

 

<안성기 박중훈의 존재감이 잘 드러난 영화 라디오스타>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다



안성기· 박중훈 이라는 두 남자배우가 나온다는 소리만 듣고   무작정 한국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러 갔습니다.


물론 올해 초 대박을 터뜨렸던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도 알았지만 솔직히 ‘감독’의 유인요소보다는 주연남자배우들을 믿고 갔다는 게 더 정확한 이유일 겁니다. 두 남자는 한국 영화계의 ‘장남 ·차남’으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요. 


안성기는 52년생이니까 우리나이로 꼭 55세죠. 얼마 전  ‘영화 인생 50년’을 맞았다고 해서 대종상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했었지요. 그러니까 다섯 살 때 아역배우로 영화계에 데뷔해 아직도 ‘정정한’ 현역으로 뛰고 있는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의 배우입니다. 50년이라.... 굉장한 세월이죠.


2006년 현재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안성기’라는 배우의 존재만큼 그 존재감이 강렬한 배우도 드물 겁니다. 흔히들 ‘국민배우’라는 칭호를 그에게 붙여주지만 그런 ‘북한스러운’ 칭호보다는 그냥 ‘배우 안성기’로 불려도 충분히 자기 위상을 확고히 보여주는, 그 나이로는 몇  안 되는 아니 유일한 남자배우입니다.


올 입춘날인가요, 스크린 쿼터 반대 시위의 첫 테이프를 끊었던 그를 만나기 위해 광화문 교보빌딩 앞으로 갔던 일이 떠오릅니다. 절기상으론 봄이었지만  ‘꽃샘추위’로 코끝이 맵싸하게 여겨지는 그런 추운 날씨에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안성기는 피켓을 든 채 혼자 서 있었습니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요샌 영화 안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조금 전까지 힘없어 보이던 그가 금세 생기를 되찾은 눈빛으로 “왜요,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라고.”하면서 ‘현역배우’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맏형’으로서의 듬직한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는 듯한 안성기에 대해서는 수 많은 찬사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믿을 수 있는 배우’라는 평이 아마도 그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말일 것 같습니다.


‘누가 나오면 볼만은 할 거야’라는 기본적 신뢰를 획득하고 있다는 건 보통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말은 비단 배우에만 국한되는 얘긴 아니겠지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누가 하니까 괜찮을 거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근사한’ 사람인 거죠.

제가 오늘 이 영화를 보기로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으니까요.


10 여 년 전인가요, ‘투캅스 1’에서 안성기 박중훈이 공동 주연을 맡아 당시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었지요. 거기서 늘 제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제가 ‘라디오 스타’를 보려 한 건 바로 그 장면이 떠올라서였습니다.


노점상에게서까지 ‘삥땅’을 서슴지 않는 치사한 ‘부패 경찰’로 나오는 안성기가 주일날 교회에 가서 “주님”을 찾으며 기도를 하던 그 얼굴표정은 한국영화배우들의 수많은 영화중 최고의 표정연기로 꼽고 싶습니다.

아무튼 가끔가다 뜬금없이 그 장면이 떠오를 땐 혼자 길을 가다가도 웃곤 했으니까요.


박중훈에겐 좀 미안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보다는 언젠가 그가 ‘랄랄라’하면서 몸을 흔들어대던 어느 맥주회사의 광고장면이 두고두고 저를 웃게 했습니다.

한 사람을 사심 없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게 한다는 건 그 장르가 무엇이든지간에 일단은 대단한 일이라고 봅니다. 불과 몇 초의 짧은 CF를 보면서 박장대소를 하게 만들고,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 장면을 기억해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 광고는 ‘박중훈’이 아니면 그렇게 웃기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코믹한 연기에 ‘발군’의 실력을 갖고 있는 배우입니다. 사람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일이 더 어려우니까요. 


그 이후 박중훈은 동아일보엔가 몇 달 동안 영화계에 관련한 짧은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아주 뛰어난 글 솜씨를 보여줘 그를 다시 보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른 사람들도 ‘글 잘 쓰는 박중훈’이라는 걸 알았는지 어떤 사람은 그에게 “당신이 직접 쓰는 거냐 누가 써주는 거냐”라는 실례의 질문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두 남자는 제게 ‘좋은 이미지’를 준 배우들이자 우리 영화계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그런 배우들이어서 ‘거금’을 들여 동네 영화관엘 갔던 것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디오 스타’는 역시 ‘그들’이 나와서 빛난 영화였습니다. 물론 감독의 솜씨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온 만큼 성공을 거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안성기’를 위한 영화였습니다. 물론 ‘왕년의 록 스타’ 가수 최곤 역을 맡은 박중훈과 공동 주연의 배역이었지만 안성기의 이미지와 영화 속 배역이미지가 꼭 맞아 떨어져 빛을 본 영화였습니다.


알려진 대로 영화 ‘라디오 스타’는 왕년의 인기에 연연해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영락한 인기가수와 그를 헌신적으로 수발하는 매니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무슨 대단한 사건도 없고 ‘영락한 톱 가수’의 시지구레한 일상을 그린 영화지만 감독은 “따스한 시선”으로 그들을 그려냅니다.


1988년에 ‘가수왕’을 차지했던 철없는 록 가수 최곤은 2006년 현재 ‘불륜 카페’에서 라이브로 기타를 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날선 자존심’하나는 변치 않아 일상이 고달플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어느 인생이든 ‘자존심’이 세면 행복하기 어려운 게 세상이치 아니겠습니까.


그가 잘나가던 시절의 매니저였던 박민수는 지금도 최곤을 ‘애지중지’ 보살펴줍니다. 그는 매니저 없이는 일상을 꾸려나갈 수 없는 ‘생활 무능력자’입니다. ‘형 담배! 형 불!’ 형만 부르면 뭐든 무소불위로 해결해주는 ‘영원한 해결사’ 매니저 형에게 ‘어리광’을 부리면서 살아가는 인생인 겁니다.


속 깊은 매니저 박민수는 “최곤을 20년 데리고 다녔다”며 호기를 부리지만 그 역시 아마도 ‘오갈 데 없는 신세’ 인가 봅니다.

그 둘의 ‘인간적 의리’와 ‘변치 않는 우정’은 부러울 정도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저런 ‘인간관계’가 존재하기가 어렵다는 걸 잘 아는 올드 세대들은 어쩌면 ‘동화 같은’ 그 둘 사이의 ‘이야기’가 마냥 부럽게 여겨질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날라리 팬’에게 주먹을 날리는 버릇이 있는 최곤은 또 사고를 치고 ‘친형’ 같기도 하고 ‘아버지’같기도 한 매니저는 ‘합의금’마련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최곤이 지방 방송국 분소에 라디오 DJ로 가겠다는 조건으로 ‘사고’를 수습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 두 남자는 강원도 영월이라는 ‘머나먼 곳’에 내려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자세한 줄거리는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선셋 대로’라는 아주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왕년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가 세월과 함께 ‘뒷방 마님’신세로 전락하면서도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환상 속’에 헤매는 그런 영화이죠.


그녀의 충직한 ‘몸종’은 알고 보니 잘나가던 시절 그의 매니저이자 남편이었죠.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그 여배우는 자살로 인생을 마감할 겁니다.

자신을 여왕처럼 떠받들어 주던 ‘인기’라는 마약이 사라지자 그걸 못 견뎌하는 여배우! 마치 이 ‘라디오 스타’의 최곤과 흡사합니다. ‘충직한 몸종’ 매니저 박민수의 존재도 비슷하지요.


아무튼 ‘라디오 스타’에선 의외로 ‘누선’을 자극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인데도 눈물이 납니다.


자신의 ‘몰락한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수왕’이 매니저에게 “우리 이쯤에서 헤어지죠”라고 맘에도 없는 소릴 하자 속 깊은 매니저는 비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라구요. 그 때 안성기의 ‘결기어린’ 표정이라니.... 아마 인생을 좀 아시는 분들이라면 그 표정에 ‘눈물 난다’라는 감정을 속이기 어려울 겁니다.


‘라디오 스타’는 지금 갈 곳 없어 방황하는 ‘7080 세대’를 위로해주는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요새 세상에 그런 식의 ‘재기(再起)’는 거의 일어나기 어렵거든요.


게다가 그렇게 ‘한없이 다정하고 따스하고 자애로운’ 매니저 또한 쉽지 않을 걸요. 툭하면 지상을 장식하는 인기 연예인과 매니저와의 ‘소송’ 기사만을 봐 온 우리들에게 이런 ‘천사 표’ 매니저 스토리는 거의 ‘환상’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어쨌거나 이 영화는 오랜만에 우리들의 마음에 따스한 등불을 켜 줍니다. 여기서 나오는 스토리는 비단 ‘매니저와 가수’만의 스토리는 아닐 테니까요. 우리는 늘 이런 ‘관계’에 목말라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돈’땜에 이합집산 하는 그런 인간관계가 하도 많다 보니,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지는 거지요. 거기에 ‘인생’이라는 한없이 싸늘한 생물에게 우리는 또 얼마나 매정하게 당하면서 살아갑니까.


인생 한고비를 살아온 분들이라면 아마도 이 영화를 보시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에 다소 겸연쩍어 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흔치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런 영화라서 추천해드리고 싶군요.


팍팍한 우리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변치 않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준다는 건 누구에게나 커다란 ‘축복’인 것 같습니다.    


아참 ! 잠깐 잊을 뻔했네요.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 것 같은 최정윤이라는 여배우의 연기도 깜찍한 게 볼만했습니다. 라디오 pd역을 맡은 그녀는 앞으로 지켜볼만한 젊은 여배우인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