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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감독의 협박 혹은 하소연

스카이뷰2 2006. 8. 8. 22:35
 

        김기덕 감독의 협박 혹은 하소연


조금 전 8시 뉴스에 김기덕 감독의 ‘폭탄선언’ 인터뷰가 잠깐 나왔다. 영화감독의 인터뷰가 뉴스시간에 나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언제나 저항적인‘청년 분위기’의 소유자인 김 감독은 텔레비전 화면에서도 역시 다소 투박한 말투로 자신의 심경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협박으로 들어도 할 수 없고, 불평· 하소연으로 들어도 할 수 없지만 이번 영화 ‘시간’이 한국에서 개봉하는 내 마지막 영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감독의 모습이 좀 안쓰러워보였다.

오죽하면 저런 하소연을 하겠나 싶어 그가 가여웠다. 그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 상품 안사시면요 저 다음부터는 장사 안 합니다”라는 뉘앙스처럼도 들렸다. 일찍이 대한민국 영화감독 중에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 을 향해 그야말로 다급하고 애타는 하소연 겸 귀여운(?) 협박을 하는 감독은 내 기억에는 없었다.  


그렇잖아도 오늘 조간신문에 ‘언론과 인터뷰 거절 1년 만에 입 연 김기덕 감독’이라는 제목아래  나온 기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특유의 운동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쓴 사진이 어른손바닥 만하게 실린 기사에서 그는 예의  비장한 ‘절품선언’을 한 것이다. 신문기사는 감독에게 조금은 우호적인 시각에서 쓴 것처럼 느껴졌다. 감독의 입장을 꽤 배려하는 내용이 여기저기 나왔다. 


김 감독은 평소 쓰지 않던 선글라스를 쓰고 인터뷰를 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다소 쑥스러웠던지 “지금까지 안경 쓰고 인터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아는 분들을 똑똑히 쳐다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경을 썼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 인터뷰에서 요즘 엽기적(?) 흥행기록을 보이고 있는 ‘괴물’과 관련해 아주 민감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기자들이 개봉 11일 만에 관객동원 6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운 ‘괴물’에 관한 질문을 하자, “어제 생각한 질문 중에 가장 무서운 질문이 바로 ‘괴물’에 대한 질문이었다”며 “여러 가지 대답을 준비했었는데 어쨌든 피 흘리는 감독으로서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국 관객의 수준’이라는 말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감독은 “한국영화계는 영화의 수준과 관객의 수준이 최고점에 도달했다. 이는 긍정적인 해석도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해석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 대목이 지금 온라인상에서 강호제현들 간에 갑론을박 대설전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다혈질 네티즌들 가운데는 김감독의 이런 말이 자신들을 무시한 것이라며 분개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 감독이 그런 마음에서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괴물’을 보지 않았기에 그 영화에 대한 평은 할 입장이 아니지만 김 감독이 말한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이 잘 만난 것’이라고 한 표현에 공감한다. 감독 본인도 부연해서 설명했듯이 긍정과 부정의 뜻이 모두 함유된 아주 함축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어쩌면 부정적인 측면에 더 무게중심을 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왜 김 감독의 그 심경을 모르겠는가. 이건 단순히 ‘흥행대박’의 위업을 이룩한 영화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괴물’은 개인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여서 앞으로도 볼지 안 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영화에 700만(오늘) 이상의 관객이 들었다는 건 정상적인 현상만은 아니라고 본다.


뭐랄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용어인 ‘양극화’가 영화판에도 적용되는 듯하다고나 할까. 행여 ‘냄비 현상’이나 ‘묻지만 관람’의 쏠림현상이 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보기에도 이 ‘괴물’이라는 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호의적’인 시각을 보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김 감독은 또 지난 부산 영화제때 “한국영화 1000만 관객시대가 슬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슬프다’는 감독의 표현에서 예술가의 감수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김 감독은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1천만 이상의 대흥행’한 것이 슬프다고 말했는데 그 짧은 표현 속에 이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기엔 독재가 있어요. 자본주의 시장원리의 이름으로 독재를 한 마케팅이죠. 9시 뉴스에 그 두 영화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였죠.

다른 영화들도 그렇게 마케팅하면 1000만 관객을 올걸요. 그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화씨 9·11’ 영화 한 편이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바꿀 수 있어요.

6·25 전쟁이나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사람들에게 영화 한 편이 생각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거고 그 영화를 보는 머릿수가 많을수록 그건 더 이상 오락이 아닌 정치가 되는 겁니다.

관객동원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의식세계의 변화에 있어서는 내 영화가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봐요. 내 영화는 돈 적게 쓰고 만드는 영화지만 결코 작은 영화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김기덕 감독이 꽤 주목할 만한 ‘천재성’이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 알려졌다시피 정규 졸업장이라고는 초등학교 것밖에는 없는 김 감독은 ‘맨몸’으로 영화를 배우고 만들어온 ‘자수성가형’이다.


무릇 예술가라는 존재는 ‘자수성가’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외국유학파’다 ‘국내파’다 편을 가르면서 영화감독의 출신성분을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김기덕은 완전히 ‘적수공권’으로 ‘감독’의 타이틀을 따낸 ‘멋쟁이’다.


9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 영화감독들은 ‘정규교육’을 받은 비교적 ‘엘리트 급’ 감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김기덕 감독이라는 ‘비주류 인생· 비주류 감독’이 나타났고, 국내보다는 베를린이나 베니스 영화제 등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존재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우리 영화계는 비로소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가 다루어온 인생들은 창녀· 깡패· 포주 범죄자 등 소위 ‘하류인생’들이었다. 감독 스스로도 자신의 ‘특이한 이력’이 영화판에선 별 도움이 안 되는 ‘비주류’에 속한다는 것에 꽤나 신경을 쓰는 품이었다.


‘재능 있는’ 영화감독들의 인터뷰들을 즐겨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김기덕감독의 ‘드라마 같은 인생’인터뷰는 다른 감독들 이야기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계를 돕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있다가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청소년 시절이나 편도 비행기 표만 들고 프랑스로 날아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는 그의 ‘과거사’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때 묻지 않은 청소년 분위기’가 여전히 느껴진다. 뭐랄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예술의 길에 발을 디딘 이후 홀로 어렵사리 영화작업을 해온 그의 저력은 어쩌면 저렇게 ‘순수한 목소리의 힘’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1996년 데뷔한 그는 올해로 ‘10년차 감독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저렇게 ‘볼멘소리’를 하면서 ‘메이드 인 김기덕’ 영화 좀 봐달라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오죽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그러겠는가. 그의 항의하는 듯한 어투에서 나는 한 예술가의 ‘정신적 망명선언’을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제발! 제 영화 좀 봐주세요.”라고 절규하는 감독의 하소연은 1천만 관객몰이에 성공한 소위 ‘흥행감독’들에겐 가소롭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김 감독의 저런 절규야말로 우리 한국영화계를 진정 발전시킬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 같다.


하지만 김 감독도 지나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한다면 ‘관객 흥행’에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는 ‘빈집’을 보면서 나는 그의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나 ‘순수성’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흥행’은 어렵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뭐랄까, 그야말로 ‘2% 부족한’ 어떤 아쉬움을 털어내기 어려웠다고나 할까. 저래선 흥행 어렵지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영화든 뭐든 ‘장사 좀 하려면’ 어떤 매력이 느껴져야 하는데 김기덕의 작품에선 그게 좀 부족했다. 감독이 워낙 사회와 단절된 가운데 ‘홀로 공부해온 처지’여선지 일상성에서 우려낼 수 있는, 피곤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맛’이 결여된 것 같았다.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데 그의 작품에선 이 ‘몰입’할 흡인력이 다소 부족한 듯싶었다.


비슷한 ‘독립영화감독’계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의 이누도 잇신 감독등 일본의 영화감독 작품이 ‘재미’도 있다는 것은 김기덕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누도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영화 역시 저예산에 ‘비주류 인생’들을 다루고 있지만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가!


‘빈집’ 뿐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일상적이고 가학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듯해 보기가 쉽지 않은 장면들이 많았다. 그의 영화는 ‘괴롭고 지겹다’는 평도 있다는 걸 김 감독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가 이번에 저런 ‘정신적 망명’선언을 한 것을 놓고 아마 영화판에선 그에게 조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의 심정을 백분 이해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김 감독은 이번에 개봉하는 ‘시간’이란 영화에 “제발 20만명만 들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심정도 내비쳤다. 요는 그도 관객의 외면만큼은 참아내기 어렵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가가 아무리 자신의 작품에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처럼 고독하고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김 감독에게 영화에는 문외한의 입장이지만 조언하나 해주고 싶다. “조금만 일반 관객들의 취향을 공부하세요.”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는 “나도 관객 드는 영화 만들 줄 알아요.”라고 말했다. “알면 실천하라! 일단 그대가 영화예술가로서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면 관객들을 일단 극장문안으로 끌어들여라!”

 

‘1000만 관객시대가 슬픈’ 김기덕 감독이 힘을 잃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요구되는 시절인 것 같다. 

김기덕 감독!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