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울뮤직페스티벌에서 본 크라잉넛과 신인꽃미남그룹4COS

스카이뷰2 2006. 10. 13. 18:48
 

  서울뮤직페스티벌에서 본 크라잉 넛과 신인 꽃미남 그룹 4COS



공연 대기실에서의 크라잉 넛




크라잉넛이 열창하는 무대, 노란 티셔츠 입은 보컬

박윤식. 


여섯 살바기 아들이  아빠와 장단 맞추며 크라잉넛

노래를 따라하고 있습니다.




공연장 의자에 앉아 곤히 잠든 세 살 바기 딸

일본인 가수 아베 히로 군.

핸드폰으로 찍어선지 사진

상태가 영 별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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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펑크록밴드의 공연장에 구경 갔습니다.

거의 역사적인 사건이죠. 원체 공연장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동안 연극이나 몇 편 손에 꼽을 정도로 구경 갔었지 가수들의 공연장은 한 번도 찾은 일이 없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실컷 보는데 뭐 또 구경까지 가나라는 생각도 갖고 있었죠.


연극도 공짜표가 생기고, 제 취향에 얼추 맞는 공연만 몇 차례 갔을 정도로 ‘비문화인’의 인생이었습니다. 말로는 ‘문화 활동’을 엄청 선호했지만 저의 문화 취향은 고작해야 책방이나 영화관, 미술전시회가 고작이었거든요.  


그런 제가 어제(11일) 밤, 얼마 전 우리 스카이뷰 블로그에 올려 방문객여러분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크라잉 넛 공연을 구경 간 겁니다.

며칠 전 크라잉 넛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한경록 군이 제게 전화로 자신들의 공연에 올 수 있냐고 묻더군요. 


지금까지 록밴드 공연장은 가본 일이 한 번도 없었지만 크라잉 넛의 ‘명동 콜링’을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인연으로 그들을 인터뷰했기에 기꺼이 가겠노라고 응답했습니다.

약속을 하고 보니 마침 11일은 우리 국가대표축구팀이 상암 경기장에서 시리아와 아시안컵 본선 진출 경기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들의 공연도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동네에서 열리는 걸 알고 무척 아쉬웠습니다. 좀 날짜를 분산해서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두 가지 큰 즐거움을 고스란히 누리도록 배려해야지. 원 이게 뭐야, 하면서 혼자 아쉬워했지만 별 뾰족한 도리는 없었죠.  


축구 광팬인 저로선 우리 대표 팀 경기 순간을 놓친다는 게 못내 아까웠습니다. 더구나 며칠 전 가나 전에서 우리가 하도 죽을 쒔던 터라 이번에 우리 선수들의 분발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축구대표팀은 저에게 경기를 보러오라는 전화를 주지 않았지만 크라잉 넛은 정중하게 초청전화를 했으니 그 쪽으로 가기로 했던 겁니다.^^


오후 6시 30분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쪽에 도착하니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월드컵 때처럼 응원 때 필요한 소도구를 파는 상인부터 김밥좌판 아주머니들 암표상들이 저마다 호객행위를 하느라 굉장히 소란스러웠습니다.


갑자기 크라잉 넛의 공연이 걱정되더군요. 아무래도 ‘손님’을 많이 빼앗길 것 아니겠습니까. 경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거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거든요. 그 젊은이들은 무슨 제복처럼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청년들 못지않게 젊은 아가씨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거의 록밴드 취향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주판알 굴리며 걱정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매니저는 아니지만)   


10월 9일부터 유명 가수들이 릴레이로 출연한다는 서울뮤직페스티벌은 서울시의 후원을 받아선지 공연장도 상암 월드컵경기장 서문 옆 야외공연장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출연 순서를 어떻게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크라잉 넛은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국가대표팀 경기와 겹치는 날 공연을 하는 바람에 타격을 좀 받을 것 같았습니다. 문득 백남준 선생이 ‘아트하는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으로 ‘재수가 좋아야해’를 꼽은 대목이 생각나더군요.^^


동행한 후배와도 내가 무슨 크라잉 넛의 매니저라도 되는 양 그런 걱정을 하면서 공연장 앞에 갔습니다. 우리를 에스코트해주기로 한 한경록군을 만나자 마자 그런 얘기로 걱정을 했더니 그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뭐랄까요, ‘올 사람은 다 오게 되어있습니다’ 라는 자신감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관객이 많던 적던 일단 개런티는 정해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저도 잠시 안도했습니다. 제가 속물근성이 좀 있어서 무슨 상황이 발생하면 돈과 결부시키는 버릇이 좀 있거든요^^        

공연장은 예상했던 대로 좀 썰렁했습니다. 워낙 넓은데다가 의자를 엄청나게 많이 배치해놓아서 더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크라잉 넛의 본 공연은 8시부터라서 우린 우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간단한 요기를 하고 오기로 했습니다. 공연의 첫 순서로는 무슨 신인그룹이 노랠 한다기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던 겁니다. 나중에 말씀 드리겠지만 이게 우리의 판단 미스였습니다.(요 부분은 말미에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우리가 공연장에 다시 도착하니 ‘본 공연’은 이미 시작해서 크라잉 넛들의 열창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무슨 곡인지 저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였지만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펄쩍 펄쩍 뛰면서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젊은 관객들은 의자에 앉아있지 않고 모두 무대 앞 쪽으로 몰려가서 ‘스탠딩’ 자세로 열광하고 있더군요. 그들의 얼굴은 무슨 사이비 종교에 최면된 듯 거의 무아경지로 보였습니다.  우린 일단 맨 뒷줄에 가 있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일가족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와 아기들이 있었습니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기는 의자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여섯 살 바기 사내아이는 의자에 선채로 아빠와 함께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무슨 야광막대기 같은 것을 고사리 손에 쥔 채로.


짧은 머리에 안경을 낀 모습이 단정한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젊은 아빠는 놀랍게도 크라잉 넛의 노래가사를 모두 알고 있는 듯 아주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크라잉 넛의 노래는 명동 콜링과 말달리자·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등  불과 몇 곡이 안 됐는데 그 젊은 아빠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무대 위의 크라잉 넛 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신명나서 노래를 부르더군요.

부인인 듯 보이는 젊은 여성도 남편에 뒤질세라 역시 흥겹게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온 가족이 크라잉넛의 광팬인가 봅니다.


어린 아들애를 보니까 문득 저 아이가 크면 부모를 따라 공연구경 다녔던 오늘을 기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예닐곱살 때 아버지와 함께 처음 구경갔던 영화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거든요.  마음이 외로워질 때는 그 시절의 순간들을 기억해내 스스로 마음을 달래곤 하는 게 제 버릇이랍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왠지 가슴에 따스한 등불이 켜지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때 본 영화로는 아역배우 전영선이 나왔던 <이 생명 다하도록>이나 외화 <콰이강의 다리>등이 문득 떠오릅니다. 좀 커서도 부모님과 함께 갔던 영화들이 지금껏 생각나는 걸 보면 부모와 그런 문화공연을 본다는 건 아이의 정서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초등생이나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들도 꽤 많았습니다. 실제로 그 애들에게 물었더니 걔네들 말로 초딩, 중딩, 고딩이라고 하더군요.^^ ‘초딩 아가씨들’은 꽤 조숙해 보였습니다.


그 어린애들이 휴대폰들을 척척 꺼내 크라잉넛 ‘오빠들’의 공연모습을 촬영하는 품이 아주 의젓해 보였습니다.  우리때는 생각도 못했던 ‘문화적 체험’을 하면서 자라나는 저 어린세대들이 경이롭게까지 보였습니다. 


관객 중에는 물론 여대생들이 주로 많아 보였지만, 청년들도 적잖았습니다. 심지어는 제 연배의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있더군요. 그러니까 이 크라잉넛 청년들은 ‘팬층’이 꽤 광범위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잖아도 그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각 연령층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그들이 뜻하는 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이더군요.


록밴드 공연이라 정신 사나울 줄 알았는데 노래하는 크라잉넛이나 관객들이나 모두 정서적으로 그리 크게 저랑 다른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크라잉넛의 노래는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것 같더군요. 특히 가사들이 대중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 최첨단 록밴드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대중성이 강하고 호소력이 높은 듯했습니다.


관객 모두가 서서 크라잉넛과 함께 펄쩍펄쩍 뛰고 있는 터여서 우리도 함께 선 채로 한 팔은 무대 위의 그들을 향해 계속 흔들며 흥얼흥얼 리듬을 맞췄습니다.


그러다가 보컬을 맡고 있는 박윤식군이 객석 쪽으로 길게 만들어 놓은 무대위로 달려왔습니다. 열광하는 팬들은 그 쪽에 바싹 다가서서 그의 손을 잡으려고 아우성들이었습니다. 마침 ‘운 좋게’ 거기 서있던 저도 한 팔을 쭉 내밀었습니다. 노랠 부르면서 그는 무릎을 굽혀 뜻밖에도 저의 손을 잡더군요.


그 순간 저는 왜 소녀팬들이 그토록 그런 순간에 열광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그가 저의 온갖 고통을 위로해주는 듯한 착각을 느꼈거든요. 미소년 비슷한 그는 다정하고 따스한 얼굴이었습니다.


그와는 공연 시작 전 대기실에서 잠시 인사를 나눴었지만 그가 노랠 부르는 동안 주변은 너무 어두운 밤이어서 저를 알아보진 못한 듯 했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내면서 노래 부르는 그 청년이 참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무려 한 7,8초 동안이나 그는 제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경험도 난생 처음이지요. 다른 소녀팬들도 그와 서로 손을 잡으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제 옆에 있던 열혈 팬들 중에는 저를 부러운 눈길로 보기까지하는 아가씨들도 있었습니다.


‘10년차 중견 록밴드’라는 크라잉 넛은 여전히 애송이 록밴드 못지않게 무대위를 기운차게 날아다녔고, 열혈 팬들도 그들에게 열띤 호응을 보냈습니다.


두 시간 남짓 한 꽤 긴 공연시간이 불과 몇 십분 밖에 안 된 듯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크라잉넛의 노래 중  제가 특히 좋아하는 ‘밤이 깊었네’나 ‘명동 콜링’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를 때는 거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참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공연 마지막 곡은 그들의 ‘18번’이라는 ‘말달리자’였습니다. 전주로 드럼소리가 둥둥 울려 퍼지자 광팬들이 자지러지게 질러대는 소리가 가을 밤하늘로 높게높게 퍼져 올라갔습니다.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가끔 텔레비전에서 아이돌스타들이 나올 때 소녀팬들이 질러대는 괴성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겪어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저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무슨 응원가 같은 ‘말달리자’를 모두 함께 부르는데 아마도 그 열혈팬들 모두는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직 그런 걸 느낄 줄 아는 나이들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무너무 신나는 순간이 끝나는 게 모두 아쉬운 듯 노래가 거의 끝나가자 앙코르를 외쳐댔습니다. 아마 가수들은 그런 순간이야말로 ‘생의 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고 잔치는 끝났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나오는데 어떤 남자가 ‘포커스 사인 좀 받아가세요’라고 외쳐댔습니다. 무슨 소린가 싶어서 가봤더니 아까 크라잉넛의 공연 시작 전 노래를 불렀다는 신인 가수 그룹 '4 COS' 의 꽃미남 가수 4명이 주루룩 앉아서 소녀팬들에게 그들의 브로마이드에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동행한 젊은 후배가 그들의 사인을 받는 바람에 가까이 가서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굉장한 꽃미남들이더군요. 그 중에 한 명은 아베 히로라는 일본인 청년이었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일본의 아베 총리와는 어떻게 되셔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일본인 청년은 “아무 관계도 없고요, 그저 성만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조금 서툰 우리말로 일본사람답게 정중한 인사를 하더군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핸드폰으로 그의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그는 양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면서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왠지 좀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거기 앉은 네 명의 청년들은 한결같이 일일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면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잇따라 말했습니다. 다소곳한 그들 신인 꽃미남 그룹을 보니까, 뭐랄까요 가슴이 뭉클해져왔습니다.


그들은 지금 얼마나 ‘가수로서의 성공’을 간절히 꿈꾸겠습니까? 물론 그 ‘성공’은 보장돼 있는 게 아니지요. 그들이 겪어내야 할 온갖 시련들을 행여라도 예감하고 있는지 그들 꽃미남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살짝 드리워져 있는 듯 했습니다.

물론 이건 순전 저 혼자의 ‘느낌’이지만요.


아무튼 ‘즐거운 잔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만난 ‘새로 시작해야하는 젊은이들’을 보니까 ‘인생’이라는 게 참 애틋한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어쩌면 노파심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집에 돌아와서 그 꽃미남 그룹의 노래를 인터넷으로 들어봤습니다. ‘죽어서도 가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슬픈 제목으로 아주 애절한 발라드였습니다.

다시한번 그 청년들이 넘어가야 할 ‘험난한 인생 산맥’이 느껴져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저마저 애틋한 감상이 들더군요.


‘4COS' 가 볼 때 크라잉넛 선배들은 한없이 부러운 대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크라잉넛도 어차피 항상 긴장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운명이라는 점에서 볼 때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아가야하는 ‘연예계인생’은 선후배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니 어려운 게 어디 연예계 인생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인생은 그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지요. 너무 페시미즘같다구요? 인생이라는 게 원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밖에서 맛보는 깊어가는 가을밤 공기가 제법 상쾌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이래서 아마 인생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라는 말도 나왔나 봅니다.


록밴드공연을 난생처음 보러갔다가 새삼 인생 공부까지 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