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북송(北送) 소년의 편지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어느 북송 소년의 편지는 최루탄보다 더 강했습니다.
80년대를 지내오신 분들이라면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신 최루탄 가스로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광화문 네거리에서 ‘재수 없게’ 맞닥뜨린 최루탄 가스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참을성이 웬만큼 있는 저로서도 그 최루탄 가스로 인한 고통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것은 기본이고 눈을 비롯한 얼굴부위에 느껴지던 그야말로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의 기억은 20여 년이 흐른 오늘도 몸서리 쳐집니다.
게다가 그런 ‘횡액’을 당해야했던 당시의 ‘군정(軍政)체제’에 대한 분노로 심정적인 통증까지 수반되는 바람에 참 많이 괴로워했었지요.
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국군 포로의 손자가 ‘존경하는 한국 영사관 선생님께’ 보낸 편지를 보면서 저는 저 80년대 광화문에서 겪었던 ‘심신의 고통’을 오랜만에 또 느꼈습니다.
이젠 ‘세월’까지 가세해 저를 한층 약하게 만들었나봅니다. 아마도 편지를 세세히 보신 분들이라면 그 소년의 ‘따스한 남쪽나라, 할아버지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생존에의 처절한 소망에 가슴이 아프셨을 겁니다.
어제 신문에는 중국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한국행을 요청한 국군포로의 북한 거주 가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결국 강제로 북송되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기사가 1면 톱으로 나왔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오늘 저를 울게 만든 ‘북송소년의 편지’는 바로 그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의 손자가 간절하고 다급해진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눈물로 쓴 편지’였습니다.
그 소년의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태생으로 6·25 전쟁 때 스무살 나이에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국군포로는 그곳에서 결국 손자까지 본 ‘60대의 할아버지’로 세상을 떠나면서 유일한 혈육인 손자에게 “할아버지 고향에 꼭 가서 할아버지 형제를 찾아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소년은 14세 때 모친과 함께 중국 용정으로 탈출해 ‘밥도 빌어먹고, 쌀도 빌어서 집에 가져가는’ 소년가장 노릇을 했다고 하는군요.
소년은 또 중국의 인신 매매단에게 붙들려 온갖 고초를 겪다가 도망쳐 나와 어렵사리 연명해가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돼 감옥에서 많이 두들겨 맞았다고 합니다.
한번 ‘자유의 공기’를 마셨던 소년은 다시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또 건너갔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소년은 이렇게 애끓는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목욕탕에서 청소도 하고 때도 밀었습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받고 북조선에 있는 아버지한테 인편으로 돈을 부치고 어머니한테도 돈을 부쳤습니다. 어머니한테는 색시까지 얻어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행히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저의 특수 신분 때문에 헤어졌습니다. 저는 이번에 잡히면 7~15년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됩니다. 밤마다 악몽을 꾸면서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서 보냅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고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기서 가만히 한 소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지켜보면서 한숨을 내쉽니다. 목욕탕에서 청소하고 때 밀어 번 돈을 북에 있는 부모님에게 보낼 때 뿌듯해 했을 소년의 행복한 가슴을 함께 느껴봅니다.
사춘기의 소년은 ‘요행히 여자친구’를 사귀며 가슴 설레는 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특수신분’으로 그 소녀와 헤어져야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대한민국이 고향인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는 소년의 절규어린 편지 속에는 ‘인간 드라마’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듯했습니다.
이곳에서 그 나이또래의 평범한 소년들이라면 그저 대학입시 걱정이나 하면서 평온한 나날들을 보낼 텐데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들었던 ‘용감한 국군의 손자’는 생사를 넘나들며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하지요?
전 그 편지를 보면서 문득 제가 10대 때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떠올랐습니다.
아마 중학 1학년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일 겁니다. 그 어린나이에 뭘 안다고 그 시를 다 읽어 내려간 순간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로 시작하는 그 시는
요즘 안목으론 다소 유치할지 모르나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절절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내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이런 구절들은 지금 읽어봐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모윤숙 시인에 대해선 ‘친일행위’를 비롯해 이러저러한 세간의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런 모든 걸 떠나서 이 시는 한 중학생에게 ‘조국과 애국심’에 대해 눈뜨게 했습니다.
오늘 아침 강제 북송된 소년이 ‘눈물로 쓴 편지’를 보면서 스물다섯 젊음이 조국 산하에 ‘백골’로 드러누웠을 수밖에 없었던 ‘슬픈 시’ 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죽어 간 청년들은 이미 운명을 달리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저렇게 ‘국군 포로’가 되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북녘 땅에서 그저 간신히 연명해 나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청년들에 대해 조국인 대한민국은 과연 무엇을 해주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현주소’일수도 있는 ‘국군 포로의 손자들’의 슬픈 운명을 조국인 대한민국이 그렇게 방기해 버린 것에 대해 과연 정부는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가!
한창 재미있게 보내야할 ‘철없는 10대 시절’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토록 피 말리는 편지를 쓰며 자신의 생존을 도와달라고 ‘눈물의 편지’를 써야만했던 그 소년은 이제 다시 북의 감옥에서 15년이나 ‘썩어야 한다’는 군요.
누구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군대 가서 ‘썩는 것’을 걱정해주고 있지만,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운명이 뒤바뀐 ‘국군포로의 손자’가 그렇게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감옥에서 썩어야할 슬픈 현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할까요?
이건 정말이지 ‘인간 희극’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통일부 장관 이재정씨는 “북한의 빈곤을 구제해주어야 대한민국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협박성 발언’이나 하지 말고 저렇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가여운 탈북자들을 원천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나 만들어 보라고 ‘명령’하고 싶군요. 우리의 ‘납세’로 살아가는 장관이니까 ‘봉급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당연히 내릴 수 있는 명령이겠지요?
그리고 중국 각지에 있는 한국의 영사관 사람들은 ‘국민이 하늘’이라는 정신으로 일하라는 당부를 합니다. 그냥 ‘의자’에 앉아있는 대가(代價)로 국민의 혈세를 매달 꼬박꼬박 봉급으로 가져가는 ‘생활의 재미’에만 빠져있지 말고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과 그 자손들을 위해 진정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하는지를 공부하시라고 부탁합니다.
오늘 아침 국군포로의 손자가 눈물로 쓴 ‘슬픈 편지’는 지금 ‘개헌에만 올인’하고 있는 듯한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분도 한번 진지하게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그리고 실질적 임기가 1년도 채 안 남은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위해 진정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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