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도전 1000곡과 바다와 유리상자

스카이뷰2 2007. 1. 21. 11:58
 

          도전 1000곡과 바다와 유리상자


일요일 아침 졸린 눈을 부비면서도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SBS에서 8시 반부터 1시간 동안 하는 ‘도전 1000곡’이다.

오늘 아침엔 여느 때보다 출연진들이 노래를 잘하는 멤버로 구성된 것 같았다.


거의 매주 한 팀씩은 꼭 끼는 개그맨 팀으로 오늘은 ‘형님 뉴스’팀이 나왔다.

이상하게도 개그맨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창력이 거의 가수 급이다.

 

언젠가부터 느끼게 되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우리의 젊은 개그맨들은 능청스럽게 노래를 잘 한다. 어쩌면 가수지망생들이 개그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연말엔가는 문세윤이라는 뚱뚱보 개그맨이 나와서 ‘가수왕’에 등극했는데 바로 레코드 취입해도 될 것 같은 실력이었다.

오늘 나온 ‘형님 뉴스’팀의 보컬 정재영도 ‘요래 요래 체머리’만 잘 하는지 알았는데 노래도 거의 가수였다.


이 프로를 안 보신 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요래 요래’는 정재영이 형님뉴스에 나와 펄쩍펄쩍 뛰며 체머리를 하면서 뿜어내는 독백이다. 그 현란한 체머리 솜씨가 보기에 어지러울 정도로 사람을 웃긴다.


젊은 그들을 보면서 문득 ‘개그맨’의 소중한 존재의미를 알 것 같다.

그야말로 ‘싱싱한 웃음’으로 이 웃음 잃은 시대를 지켜나가는 ‘젊은 전사’들처럼 보인다. 순발력과 기백들도 뛰어나 보다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역시 개그맨이라는 이름값들을 하는 것 같다.


6년 만에 컴백했다는 심신은 완전한 아저씨로 변모해, ‘오직 하나 뿐인 그대’를 부르던 그 얄상한 꽃미남은 어디로 갔는지 그야말로 세월무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도 멤버를 다시 구성해 새 봄엔 새 노래를 선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심신이라고 소개하기 전까진 ‘어 저 중년 아저씬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구더라’할 정도로 세월에 져가는 모습이 되었지만 그래도 ‘신곡’을 발표한다니 가상한 느낌이다.


늘 착한 대학생 오빠들 같은 ‘유리상자’도 나왔다. 그들도 벌써 데뷔 10년차란다. 세월이 참 무섭다. 그들 노래 중에 ‘사랑해도 될까요’는 히트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재벌가의 아들 박신양이 부르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늘 좋은 것만 당신에게 드리고 싶다’는 노랫말이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3년 전인가 박정희전대통령 아들 박지만씨의 결혼식장에 갔더니 바로 ‘박신양 판 사랑해도 될까요’가 식장에 흐르고 있었다. ‘어린 신부’를 맞이하는 박지만씨의 심경을 잘 대변해주는 듯한 노래라는 인상을 받았다.

왠지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런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여전히 뭉클해진다. 이러니 가족으로부터 ‘철없다’는 소리를 듣나보다.^^  


비운의 여배우 이은주가 자살했을 때 너무나 슬프게 울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여가수 ‘바다’도 나왔다. 그 가창력은 정상급인 것 같다. 보이시한 외모이면서도 바로 거기에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가수다. 아마도 요즘 여가수들 중엔 노래 실력이 첫째 둘째가는 ‘노래꾼’이다. 


이밖에도 중견으로 진미령이 나왔다. 이 여가수도 ‘소녀와 가로등’인가 하는 노래로 한때를 풍미한 것으로 기억한다. 요리솜씨가 뛰어난 그녀는 요새는 재혼한 개그맨출신 전유성과 거의 ‘잉꼬부부’소리를 들으며 잘 산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다.


오늘 아침 나온 멤버들은 다른 때보다 노래솜씨들이 한결 뛰어났다.

한때 이 프로그램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체정화’ 끝에 여하튼 출연가수들의 ‘비상한 암기력’과 돋보이는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요샌 출연자 자신이 원하는 노래 ‘50곡’을 적어내고 그 안에서 출제하는 방식도 채택했다는데 어쨌거나 우리처럼 노래 1곡도 제대로 가사를 외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그들의 암기력은 그저 가상할 따름이다.


게다가 시중의 웬만한 노래는 저절로 귀에 들어와 알고 있는 편인데도 이 프로에 나온 노래들 중엔 가사가 거의 ‘시’같고 고도의 ‘심리묘사’같은,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노래들이 나와 잃어버린 ‘감수성’에 불을 지펴준다.


오늘 막판 대결은 바다와 유리상자였다.

두 팀 모두 ‘한 노래’ 하는 ‘카수’들이라서 흥미를 더 했다.

바다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부르는데 신승훈 못지않은 감정이입 솜씨로 잠시 콧등이 시큰거릴 정도였다. 가사도 너무나 애잔해 소녀들에겐 안성맞춤 곡인 듯싶었다.


‘찬바람’이라는 노래를 부른 유리상자는 여전히 앞머리로 이마를 뒤덮은 순진하고 착한 대학생 오빠 같은 인상과 옷차림이었는데 자신들은 ‘여가수 노래’를 더 잘 부른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귀여웠다.


두 팀 모두 ‘왕’이 될 것 같은 실력이었지만 바다가 깜빡 가사를 실수하는 바람에 결국 오늘의 승자는 유리상자!!


즐겨 보는 ‘도전 1000곡’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예리한 감수성과, 수십 곡을 외워야하는 노고를 무릅쓰고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에서 덩달아 나까지 때 아닌 ‘자신감’과 ‘성취감’을 함께 느껴본다.


게다가 자막으로 나오는 절묘한 노랫말들을 보면서 ‘문장공부’와 ‘심리 기법’까지 배우니 원, 텔레비전 프로 하나 보면서 웬 ‘공부’를 그리 많이 하게 되는지....  

아무튼 오락프로그램이라지만 ‘도전 1000곡’은 나처럼 멍청한 시청자들에겐 ‘브레인 워시’까지 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프로그램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