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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승부차기 영광 재현한 거미손 이운재

스카이뷰2 2007. 7. 23. 00:49
 

 

승부차기 승리의 주역 이운재 골키퍼. 

       

         ‘어게인 승부차기 영광’ 재현한 거미손 이운재


조금 전 끝난 우리 국대팀 경기를 응원하느라 손바닥이 벌겋게 되도록 박수를 쳐댔습니다. 오랜만에 신나게 쳐본 박수였습니다. 박수치기가 몸에 그렇게 좋다지요? 그러니 오늘밤 손바닥 아프게 박수치신 분들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셨네요. 박수 덕에 몸도 좋고, 기분 좋아 정신도 맑아지고... 


대한민국 집집마다에서 힘껏 친 박수소리의 ‘나비효과’가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 국립축구 경기장에 무사히 도착했나 봅니다.

이겼습니다.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이 ‘호각지세’라는 이란 팀을 승부차기 끝에 4대2로 시원하게 이겼습니다.


사실 축구승부 묘미의 극대치는 아마도 이 ‘승부차기’가 아닐는지요?

양팀 모두 120분에 걸친 힘겨운 육탄전 끝에 육신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고도의 정신적 집중력을 통한 두뇌 플레이의 결실이 바로 승부차기거든요.


‘러시안 룰렛’에도 비견되기도 하지요. 육연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서로 돌아가며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아찔한 전율!

러시안 귀족들이 즐기던 호사의 극치를 달리는 게임이었죠.


아주 오래전 본 영화 ‘디어 헌터’에서 이 러시안 룰렛 장면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미국의 젊은이들이 그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스토리의 영화였지요. 세세한 스토리는 거의 잊었지만 유독 이 러시안 룰렛 장면만은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충격적인 영상이었나 봅니다.


오늘 축구팬이 아닌 분을 제외한 수많은 국민들이 주먹을 꼭 쥔 채,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 ‘승부차기’의 승전보는 오랜만에 우리 국민들에게 활력을 선사했다고 봅니다. 월요일 전국 각 직장에선 활기가 넘칠 것 같군요.


엊그제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봉사 떠났던 ‘철부지 젊은이’들이 아직 풀려나지 않은 상태에서 온 국민의 마음이 착잡해 있는 상태였기에 태극전사들의 승부차기 승리는 더욱 빛났습니다.

특히 거미손 이운재가 두 번째로 ‘선방’한 뒤 씨익 웃어 보이던 그 매력적인 미소는 ‘한일 월드컵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두 배의 기쁨을 선사했지요.


이운재 선수는 오늘의 ‘수훈 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8월 부상 이후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던 설움을 ‘한 방’에 날려버렸지요.^^

요새 이 ‘한 방’은 정치권에서 ‘네거티브 용어’로 쓰는 바람에 쿨한 느낌을 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럴 땐 그 ‘한 방’이란 말이 가장 쓰임새가 높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아시안컵 대회에서 우리 국대팀은 첫 상대로 한번도 이겨본 일이 없어 ‘무패 징크스의 호적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비기는 바람에 영 시원찮은 출발을 했습니다. 그날도 우리가 선취점을 넣고 한참 기세등등하다가 동점 골을 어이없게 허용하는 바람에 김이 새버렸었지요.


게다가 엎친 데 덮친다고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바레인이라는 ‘복병’에게 1대2로 역전패 당하는 수모마저 겪은 터여서 우리 선수들이나 저의 감정이나 그리 쾌청한 컨디션은 아니었지요.


바레인같은 ‘도시국가’분위기의 조그만 나라에 세계 경제규모 11위권인 우리 대한민국이 진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역전패라니요...

그날 전 어찌나 화가 났는지 당분간 우리 국대팀 경기는 안 보기로 다짐을 해버렸습니다.


그래도 하루 지나니까 그 미운 맘이 슬그머니 사라지더군요. 아마 국대팀에 대한 중독이 중증인가 봅니다.^6^

얼마 전에도 우리 블로그에서 고백한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 저의 ‘인생 최대의 낙’이고 보니 아무리 미워하려해도 그 미움이 오래가질 않네요...


아마 젊은 연인들의 마음이 이러지 않을까요?^^ 다신 안 본다고 몇 번을 다짐하지만 그래도 또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면서 보게 되지요.

인도네시아팀과의 경기도 바로 그런 마음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날 경기도 뭐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아마 1대0으로 우리가 간신히 이겼었지요.


그날 인도네시아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모습을 보니까 조금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예전에 인도네시아에 여행갔을 때 가이드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자존심하나는 세계 최고다’라고 말한 게 떠올랐습니다.


거의 축구응원에 목숨 건 듯한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긴 게 좀 미안해 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 아닙니까!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게 바로 이 승부의 세계이니 어쩔 수 없죠, 어쨌거나 이긴 건 잘한 거지요.


솔직히 월드컵 4강 출신인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아시아에서마저 기신기신한다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닙니까!

그래도 현실을 직시해야 인생이 편해지듯 우리 국대팀의 현주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파 랭킹 51위로 주저앉아 있는 형편이고 보니 어쩝니까!


아시아에서부터라도 다시 패권을 다져나가야지요. 8강 진출도 솔직히 좀 구차스럽게 올라갔었지요. 우리가 인도네시아를 간신히 이기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레인을 이겨줘서 그 덕분에 8강행 티켓을 거머쥔 거니까 그리 잘난 척할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오늘 만난 이 이란 팀! 정말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할 팀이죠.

피차가 서로 안 보는 게 좋은 팀이었는데...

역대 전적이 ‘8승 4무 8패’랍니다. 희한하게 ‘승패의 사이클’이라는 징크스도 조성된, 좀 심하게 말하면 ‘악연의 적’이라고나 할까요.


이번 징크스에는 오히려 이란팀이 찜찜해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이란의 스포츠 기자들 사이에선 경기 전부터 ‘이번엔 한국에 패할 지도 모르는 몇 가지 징크스가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네요.

 

우선 그 기자들은 징검다리 승부 징크스를 꼽았답니다. 한국과는 아시안 컵에서 5차례 맞붙었는데 72년엔 한국이 1대 2로 패했고 그 이후 핑퐁식으로 승패를 나눠가졌답니다. 그렇게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는 ‘운명의 악순환’의 사이클에서 이번엔 이란팀이 ‘지는 차례’였답니다.

 

더구나 '강을 건널 땐 말을 갈아타지 않는 법'인데 이란 팀은 연장전 끝날 무렵에 골키퍼를 바꿨었죠.

아마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좀 뱃짱강한 키퍼로 바꾼답시고 바꿨나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떨지 모르지만 화면으로 볼 때 새 키퍼는 영 대가 약해 보이더군요. 우리 이운재에 비해 여리고  심약해 보이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를 보는 순간 우리가 이겼다는 필이 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론 ‘애국가 징크스’로 시합의 승패를 가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조영남이 애국가를 이상하게 부른 날도 우리가 간신히 이겼었죠, 그 이전엔 바리톤 김동규가 도입부를 동 동 하고 더듬는 바람에 결국 우리가 졌었지요.


물론 그때야 네덜란드라는 워낙 막강팀을 만났으니 불가항력이라고 치더라도, 아무튼 이 애국가를 ‘훌륭히 불러 모셔야’한다는 게 저의 개인적 징크스입니다.


오늘! 저 머나먼 말레시아 국립경기장에 우리 애국가가 솔로 없이 그냥 깨끗하게 오케스트라 연주로만 울려 퍼지는 순간 저는 콧날이 시큰해지면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예감’을 확신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표정도 한결같이 엄숙하고 결기어린 표정이었습니다.


특히 주장 이운재선수를 비롯해 그렇잖아도 강건한 인상인 이천수, 다부진 최성국, 미남 이동국, 조재진, 김상식, 김정우, 김진규, 오범석 등등 모두모두 다부지면서도 승리의 확신을 얼굴에 가득 가진 좋은 표정들이었습니다.

언제 봐도 패기에 넘치는 ‘젊은 그들’의 늠름한 모습에서 승리의 여신도 점수를 준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이란 전에선 ‘호각지세’라는 말이 좀 안 좋은 쪽으로 맞은 듯했습니다. ‘서로 비슷비슷한 위세’라는 뜻의 이 단어가 한편으론 맞았고, 한편으론 안 맞았다고 봅니다. ‘호각 졸세’라는 말은 사전엔 없었지만 양 팀 모두 오늘의 경기는 그렇게 시원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거든요.


잔디밭 컨디션도 안 좋은데다가 장대비까지 쏟아지니 볼은 제멋대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꼴이었습니다.

저야 전문적 축구 전술전략은 잘 알지도 못하지만 수십 년 지켜봐온 축구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경기에서 우리 팀에겐 전술적으로 좀 아쉬운 듯한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고 봅니다.


중원에서의 싸움은 그런대로 ‘호각지세’였지만 축구의 하이라이트인 ‘골’장면에선 왜 그렇게 빈 공간이 많이 보이는지요. 저쯤에 한 선수정도는 있어줘야 하는데 라고 한탄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더구나 최성국을 비롯한 노련한 선수들을 왜 전반부에 배치하지 않았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우리에겐 ‘행운’이었지만 이란에겐 ‘불운’이었던 장면이 더 많아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은 적이 많았던 것도 오늘 경기의 아쉬운 점으로 꼽고 싶군요.


어쨌거나 전후반 90분과 연장전 30분 사이 한 점도 골이 안 나왔다는 건 양팀 모두에게 해피한 일은 아니었지요. 물론 축구팬들에겐  더할 나위없이 따분하고 재미없는 게임이었구요.

자! 결국은 그 몸서리치게 짜릿한 축구계의 러시안 룰렛! 승부차기와 마주섰으니 보는 사람은 차치하고 저 젊은 선수들은 오죽 긴장했겠습니까!


그래도 이럴 때 골키퍼 경력15년의 든든한 맏형 이운재 선수가 노란 주장 완장을 팔에 두른 채 예의 그 여유만만한 미소를 씨익 지어보이니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 오빠’가 오늘 일 내지 싶은 예감이 팍 들더군요.


올해 나이 서른다섯의 애기아빠 이운재 선수는 지난 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 우리와 스페인과의 격전 끝 승부차기에서도 우리에게 승리를 선사한 노련한 ‘아트 사커’를 보여주었지요.


이란과 승부차기에서의 하이라이트인 양측 주장끼리의 기세싸움에서 ‘운재형’이 상대 주장 마다비키아를 보기 좋게 꺾었죠. 그가 찬 강한 볼을 슬라이딩해 양 손으로 밀쳐 버리는 장면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물론 이란 팀 쪽에서야 ‘죽음’이었겠지만요.^^ 그야말로 ‘너의 불행은 나의 행운’이라는 속된 표현이 딱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김두현이 실축해 잠시 탄식을 자아냈지만 이란의 네 번째 키커 하타비가 정면으로 깔아 찬 볼을 이운재가 손이 아닌 발로 막아내는 멋진 모습에선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무한정 박수를 쳐댔습니다.

아하! 이렇게 해서 승리의 여신은 우리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5년 전 우리가 월드컵 8강전에서 승리하던 그날과 오늘이 교차 편집되면서 기쁨의 폭죽은 하늘 위로 마구마구 퍼져 올라갔습니다.

비록 아시안컵이지만 승부는 승부 아닙니까! 요즘같이 날씨 덥고, 시끄러운 일만 연거푸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형편을 잠시 잊게 해주는 아주 멋진 한판 ‘진검승부’였습니다.


베어백 감독은 좀 무겁겠지만 거미손 이운재 골키퍼를 업어줘야 할 것 같네요.^^ 베 감독은 이란 전에 지면 ‘물러나겠다’는 배수의 진을 쳐놓은 상태였거든요.


누가 봐도 오늘 수훈갑은 ‘어게인(Again) 승부차기 勝’을 만들어낸 거미손 이운재 선수였습니다.

이운재& 국대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