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드니 성호, 제인 정의 사미인곡

스카이뷰2 2008. 6. 13. 09:51
 

 

 

   드니 성호· 제인 정의 사미인곡


돌이 되기 전 머나먼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금의환향한 드니 성호라는 서른 셋 젊은 남자. 벨기에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유럽은 물론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등에서도 공연하며 명성을 떨쳐왔다.

준수하게 생긴 얼굴에 수준 있는 예술가의 풍모가 서려있지만 버림받았다는 근원적인 고독으로 그의 눈은 우수에 젖어있다.


그의 약혼녀 제인 정 역시 입양아 출신.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그녀 역시 작가가 되어 금의환향, 서울의 유수의 통신사에 근무하고 있다.

고운 얼굴에 낙천적인 삶의 태도로 드니 성호 곁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의 영혼’을 지켜주고 있다.  


처음에 그 두 남녀는 입양아 출신이라는 동병상련의 상처를 피하고 싶어 서로를 멀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안아주면서   모국이지만 낯선 서울살이에 서로를 의지해가며 젊은 날을 보내고 있다.


제인 정은 어렵사리 생모를 만나 ‘화해’했지만 생모는 금세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드니 성호는 여전히 친부모를 찾지 못했다. 오늘도 이곳저곳으로 연주활동을 다니면서 친부모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장 스크린에 내보내도 주연배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핸섬한 용모의 드니 성호는 75년 1월 25일 태어난 지 사흘만에 부산 남포동 시청 앞에 버려졌다. 그는 버림받았다는 상처 탓인지 분노와 고독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 추운 날 베이비를 차가운 땅에 버렸다는 걸 용서하기 어려워요”라고 말한다.


“엄마 왜 날 버렸어요!” 원망이 가득하면서도 생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젊은 사내의 눈은 어느새 젖어들었다. 생후 9개월 만에 유럽의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체육교사인 양부와 꽃가게를 운영하던 양모는 머나먼 아시아로부터 찾아온 아기를 ‘천사’로 여기며

친자식처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화면에 나온 노년의 양부모의 표정은 한국의 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의 진정성이 그들의 외모마저 한국사람 비슷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머리 검은 동양아기를 키우고 있었지만 내 배 아파 나은 아이처럼 온 정성을 기울여 키웠노라고 회상한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온화한 한국의 어머니 모습이다. 그녀가 입양아를 키운다는 사실을 친구들은 때때로 잊고서 아기 낳을 때 얼마나 고생했냐는 우문마저 할 정도로 그녀의 자식 사랑은 열정적이었다.


선량한 표정의 양부모 이야기를 들으니 드니 성호의 성장기가 순탄했을 것 같지만 다른 입양아들처럼 그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과 ‘친부모’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탓에 잠시 방황하기도 했다. 정신과 치료마저 잠시 받을 정도로 마음의 병은 심했다. 


여덟 살에 양모로부터 선물 받은 ‘기타’가 그런 그의 방황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외로울 땐 늘 기타를 쳤다. 재능도 있었다.

14세 때, 전 벨기에 청소년 콩쿠르 1위에 입상하면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브뤼셀의 왕립음악원에 진학했고 그 후 그는 음악적으로 성취감을 맛봤다.


2005년에는 유럽콘서트홀 협회가 선정하는 ‘라이징 스타’에 뽑혀 명성을 떨쳤다. 기타가 없었다면 오늘의 드니 성호는 그 존재감을 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해 본 영화 어거스트 러시가 떠오른다. 친부모를 찾으려고 음악에 매달리는 어거스트 러시에 드니 성호가 겹쳐진다.


그는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였다는 사실로 늘 괴로웠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상실감이 이 젊은 예술가를 키워낸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은 아무래도 친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친부모를 그리워하는 최고의 표현같다.


벨기에의 고향마을에선 드니가 방문한다는 소식에 친척이 다 모였다. 우리네 시골마을의 옛 정취와 비슷하다. 유명해진 입양아출신 조카를 보면서 친척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그 흐뭇해하는 표정이 꼭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정한 이웃 같았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의 꼬마 후배들은 ‘선배의 기타연주’를 들으며 한껏 자랑스러워한다.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드니가 어릴 때 공부를 참 잘 했었다”고 회상한다. 그 표정 역시 우리네 선생님들과 다를 바 없다.  역시 사람 사는 건 여기나 거기나 어디서나 비슷한가 보다.


드니 주변 벨기에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사함과 안도감이 든다.

그렇지만 드니의 ‘근원적인 고독’은 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엿한 기타리스트로 명함을 내놓을 수 있는 드니는 이제 자신의 그 고독을 승화시켜야만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드니의 그런 고독을 곁에서 지켜보며 동반자로서 그의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을 편하게 해주고 있는 약혼녀 제인 정은 세 살 연상의 여인이라선지 드니를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힘을 가졌다. 그런 제인이 고마워서 드니는 장미꽃다발을 선사한다. 


제인과 드니가 저녁 식사후 함께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그들은 이제 지난 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타국에서 길러진 아이들이라는 씻어내기 힘든 상처를 ‘진주’로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렇게 잘 키워준 양부모들에 대한 감사함과 아울러 오죽하면 핏덩이 어린 것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친부모들을 ‘용서하는’ 그런 관대함을 가져야만 그들의 상처는 다독여질 수 있을 것 같다.


제인이 드니와 함께 생모가 잠들어 있는 묘지에 가서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어머니에게 자신의 약혼남을 소개하는 장면은 눈물없이 그냥 보기 어려웠다.

큰 절을 하고 소주잔을 따라 생모의 봉분위로 따르면서 제인은 드니를 자랑한다. “착한 남자에요. 나한테 너무 잘해요”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하는 걸 한없이 서러워하는 제인은 그래도 대견하게 성장한 모습이다. 그녀의 생모도 그런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흐뭇해했을 것 같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치유시켜가면서 자신들 같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드니 성호와 제인 정은 말한다.

“다시는 입양아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어젯밤 이런 사연을 다룬 KBS의 ‘휴먼 다큐 사미인곡’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웬만한 한국 영화보다 훨씬 진한 감동과 진정성의 메시지가 담긴 아주 볼만한 프로그램이었다.

‘다시보기’로 한번 꼭 보실 것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