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복차림의 일본 공주내외.
15평 아파트에서 신접살림 차린 일본 공주
꽤 오래 전 쓴 글들을 정리하다보니 일본 왕실의 외동딸인 노리노미야 공주의 결혼식을 텔레비전 중계
방송으로 지켜보고 나서 쓴 글이 눈에 띄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공주가 작은 오빠 친구로 도쿄도청에 근무하는 평민과 결혼하는 바람에 황족으로 누리던 특혜를 모두 버려야 했고, 15평짜리 ‘서민’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2005년 결혼 당시 신부 나이 37세, 신랑 41세인 만혼의 신혼부부였다.
우리나라에선 중산층 정도만 되어도 신접살림용 아파트로는 웬만해선 스무평은 넘어야 ‘부모의 얼굴’이
선다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인들은 워낙 ‘작은 집’에 사는 게 보편적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공주의 신혼 아파트 크기가 방 한개짜리 15평 아파트라는 건 일본 황실의 ‘정신자세’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공주내외는 신축한 집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지만 그 맨션도 건평 32평의 방3개짜리로 시가 10억 원 정도라니까 ‘공주님 저택’치곤 초라한 규모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이렇게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는 일본황실의 소박한 일상생활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큰 요인일 지도 모르겠다.
일본인들의 ‘황실 사랑’은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전 국민적으로 그들만의 어떤 ‘성역’을 모셔놓고 그에 대해 최대한의 경의와 예우를 표하는 그들의 정신자세에서 ‘일본의 저력’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평민 출신으로 황실에 시집간 뒤 황실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이러저러한 뒷소리가 들려오는 황태자빈의
우울한 소식도 종종 들려오고 있지만 일본인들에게서 ‘황실’은 정신적인 지주 구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썼던 ‘공주님의 결혼식’을 다시 소개한다.
‘공주님의 결혼식’을 보고나서
어제 아주 재미있는 드라마를 한 편 봤다. 아니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현실을 NHK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면서 이상하게도 순화(純化)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NHK는 11월 15일에 있은 아키히토 일왕의 장녀 노리노미야 공주의 결혼식을 ‘생중계’했다. ‘공주’의 이미지와 ‘결혼식’이 주는 이미지가 겹쳐져 꽤 볼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켜봤다 .
황궁 앞에서 결혼식장인 데이코쿠(帝國) 호텔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길가에 나와 있던 수 천 명의
환영인파의 표정을 보면서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상도 하지. 왜 남의 나라 공주 결혼식 중계를 보면서, 아무 상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백성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런 감상이 들었을까?
그건 아마도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오전 10시에 공주님의 차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새벽 6시 반부터 나와 있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나고야에서 왔다, 오사카에서 왔다 하는 걸 보니 공주님 행차를 지켜보려는 ‘순정’에서 불원천리하고 달려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 것 같았다.
50,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쁩니다’하며 정말로 눈물을 글썽였고, ‘우리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아요’라는 한 아주머니는 진실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감동적입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저씨나 할아버지로 보이는 남성들도 위의 아주머니들과 거의 같은 표정 같은 표현이었다. 남성인 그들은 ‘공주님이 너무 청초하다, 아름답다’를 연발하면서 황송해 하는 모습이었다. 무언가 너무 소중해 말조차 아끼고 싶어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젊은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뭐가 그리 기쁜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도 ‘너무 너무 기쁩니다’라고 합창했는데 전혀 가식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늘 바빠 동동 거리는 한국사람 정서, 특히 ‘개명 천지에 웬 공주야 재수 없게’ 뭐 이런 ‘평등정서’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는다면 공주님의 결혼식에 저리도 열광하는 걸 보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이라고 백안시 하겠지만 일본인 그들은 달랐다. 무언가 ‘아주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어 자랑스러운 듯한
그런 표정에 아주 조심스럽게 기뻐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랑하는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뭐랄까. 우리가 그동안 너무 거친 사회변동에 잃어버리고 있었던 자기 마음의 고귀함,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황족’이라는 ‘성역’을 통해 확인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 ‘황족’은 나와는 상관없는 머나먼 족속들이 아니고 바로 내가 가장 고귀하게 여기는 그리고 아끼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자기애’와도 맥이 통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학문적인 깊이가 없는 나로서는 그런 감정들을 굳이 전문적으로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직관적’인 나의 느낌은 그러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이라고 전부 그런 감정을 공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인 가운데는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들었고,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천황일가’에 대해서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 매스컴이나 대다수의 기성세대들이 ‘천황가’를 거론할 때는 예의 그 ‘조심스러움’으로 접근한다고 한다.
아무튼 뜻밖에 감상적인 기분이 되면서 ‘일본적인 것’ ‘일본인의 정서’ 같은 것에서 일본의 저력마저 느꼈다. 너무 거창한가?
저렇게 일반국민들이 ‘자기 것’인 양 아끼는 어떤 공통의 ‘구심점’,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저 일본인들의 정신이 일본국을 오늘날 미국 다음의 강대국으로 떠오르게 한 원동력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의 나라 그것도 우리와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일본의 ‘공주님의 결혼식’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가졌다면 적잖은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같다.
어쩌면 ‘골수 친일파로군’, ‘재수 없다’ 혹은 ‘유치하다’고 힐난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한국과 일본은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적대적 감정’을 갖고 지내온 ‘가깝고도 먼 나라’이기에.
하지만 화면 속에 나오는 ‘공손한 표정’의 일본인(심지어는 중계를 하는 기자나 아나운서들까지)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삼갈 줄 아는 정신’을 우리는 잊고 살아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노무현정권이 들어선 이래 ‘기존의 권위’는 청산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원로의 쓴 소리’마저
‘헛소리’라고 냉소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실세들이 보여주는 서슬퍼런 권세에 덩달아 부화내동 하는 거친 사회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우리에게도 저런 ‘구심점’이 하나 정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너무 감상적으로 흘렀는지도 모르지만 착해 보이는 ‘공주님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순한 백성들’의 표정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거칠어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이다. 어제 NHK는 ‘공주님의 결혼식’으로 대목을 맞은 듯 부산했다. ‘생중계’는 기본이고 매 시간 뉴스 때마다 톱기사로 다루는 한편 공주의 지인이나 친구 은사를 등장시켜 ‘평소의 공주’에 대한 덕담들을 아끼지 않았다.
NHK가 이 정도니 아마 일본의 민영 방송들은 한 술 더 떠 ‘생난리’를 폈을 것이다. 호들갑떨기로 유명한
일본 민영 텔레비전이야 ‘물 만난 고기’처럼 하루 종일 광분했을 것이다. 소재가 좀 좋아.
1969년생인 노리노미야 공주는 우리 나이로는 서른일곱 노처녀인데도, 워낙 고귀하게 자라선지 나이보다 훨씬 앳되고 깨끗한 얼굴이었다. 공주는 겸허함이 몸에 배어선지 목소리조차 조심스럽고 공손하다.
일본 왕족들이 다닌다는 ‘학습원 유치원’부터 ‘학습원 초중고’를 거쳐 ‘학습원 대학’인문학부를 졸업했다. 얼마 전까지 ‘조류연구소’의 비상근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일본 전통무용 솜씨도 뛰어나 국립극장에서 7차례나 공연하기도 했다.
키다리 노총각인 신랑 구로다 요시키 씨는 1965년생으로 평민이지만 역시 학습원대학 출신으로 공주의 ‘작은 오빠’와 소학교 시절부터 친구여서 아주 어릴 적부터 ‘황궁’을 드나들며 ‘황실가족’과 가족처럼 지내왔다고 한다. 척 보기에도 아주 성실하고 착해보이는 스타일이다.
그는 현재 도쿄도청 도시계획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취미는 자동차와 카메라라고 한다.
조용한 성품으로 보이는 신랑은 기자회견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한 발 한 발 나가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주님’도 ‘그동안 부모님과 가족들과 보낸 하루하루를 소중히 마음에 담고 구로다 집안의 한 사람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겠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재작년 1월 테니스 시합에서 재회한 뒤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데이트를 해왔다.
재미있는 것은 공주의 어머니인 미치코 왕비 역시 테니스 장에서 아키히토 일왕과 만나 ‘평민에서 왕비’로 신분 상승해, 일본 ‘황실’의 로맨스는 ‘테니스장’에서 이뤄지는 전통의 맥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결혼식은 ‘황실가족의 결혼’답지 않게 매우 검소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초대 손님의 규모도 본 결혼식엔 30여명, 피로연에는 130여명으로 제한했고, 피로연의 식사 메뉴도 3코스짜리 프랑스 요리로 조촐하면서도 깔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엔 한끼 20만원 넘는 호텔식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이 피로연에서 눈길을 끈 사람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신랑이 근무하는 직장의 ‘상사자격’으로 참석한 이시하라는 잘 알려졌듯이 일본의 ‘골수 우익’으로 평소 거칠 것 없는 언행으로 화제를 모아온 인물.
그런 그도 황실가족의 결혼 피로연에서는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축사’를 하고 ‘건배’를 제의했다. ‘천하의 이시하라’도 저럴 때가 있군 싶었다. 그동안 그는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해 ‘망언’을 많이 해 왔다. 일본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돈키호테적 인물이라고 한다.
‘공주님’은 일반 신부와 달리 웨딩 드레스는 입지 않았고, 그냥 순백의 세련된 백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피로연에서 입은 기모노는 모친인 미치코 왕비에게 빌려 입었다고 한다.
평민과 결혼해 궁을 떠남으로써 더 이상 ‘공주’가 아닌 그녀는 결혼지참금으로 1억 5천만엔(15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생각보다 좀 적은 것 같다.
일본 신문들은 공주가 이제 ‘전업주부’가 되었다면서 그녀가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보도했다. 요리메뉴는 일식 양식 중식으로 다채롭다고 한다. 물론 시장보기는 ‘도우미’가 도와줄 것이라는 내용까지 다루고 있다. 이제 일본국 공주에서 평범한 남성의 아내가 된 그녀는 '내조의 여왕'이 될 소질이 다분해 보인다.
‘공주 내외’는 신혼여행을 떠나지 않고 당일로 그들이 4개월간 살 예정인 방 한 개짜리 15평형 아파트로 직행했다고 한다.
넓디넓은 궁궐에서 단칸방으로 신접살림을 차린 공주에 대해 일본인들은 연신 ‘자랑스럽습니다, 아름답습니다’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우리 집에 이런 ‘보물’있다 라며 자랑하는 아이들처럼.
‘비록 사소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아낄 줄 알고 자랑할 줄 아는’ 그런 일본인들의 ‘순수한 마음’이 조금은
부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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