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연재 48>프라하대학 교수가 된 아인슈타인

스카이뷰2 2009. 7. 8. 19:04

  

                 1348년 세워진 프라하대학교는 중부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깊은 대학교다.(프라하대학홈피에서.)

    

   프라하대학 교수가 된 아인슈타인

 

그 무렵, 프라하의 독일 대학에서 취리히 대학보다 두 배의 연봉을 주겠다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아인슈타인이 프라하 대학으로 떠난다는 소문이 돌자 학생들은 스위스 교육부에 탄원서를 보냈다.‘아인슈타인 교수는 복잡한 물리이론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탁월한 교수입니다.’학생들은 아인슈타인의 격의 없고 자유로운 강의 방식을 좋아했다.

 

왜 아니겠는가. 강단에서의 열강이 모자라 카페에까지 학생들을 몰고 돌아다니는 멋진 교수는 당시 학생들로선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교수 스타일이었다.

학생들의 이런 열화와 같은 성원에 취리히대학측은 그에게 1천 프랑을 더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결국 프라하 대학으로 떠나기로 했다. 1911년 3월의 일이었다.

 

1348년 세워진 프라하 대학교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대단한 전통과 훌륭한 도서관 시설로 유명했다.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휩싸인 밀레바는 애정결핍증 환자가 되어갔다.

 

더구나 프라하라는 낯선 땅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것은 ‘이삿짐센터’도 없는 그 시대에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밀레바로선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제 아무리 월급을 두 배로 받는다 해도 그리 달갑지 않은 심정이었다.

 

왠지 이번 이사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아무래도 여자의 직감이란 좋지 않은 경우엔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 밀레바의 가슴 속엔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가 점점 더 뭉쳐져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은 알지 못했다. 그는 아내의 사소한 감정변화를 알아차릴 만큼 사려 깊은 남편은 아니었다.

 

밀레바의 직감대로 프라하는 어린아기를 키우는 가정에겐 환경적으로 적절치 못한 도시였다. 예술가의 도시이자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라고 하지만 평범한 생활인들에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들이 정착한 아파트는 프라하 성이 있는 동네로 근처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비록 전기가 들어온 최초의 아파트 생활이었지만 수도꼭지에선 시커먼 물이 흘러나와 도저히 식수로 이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요리할 물은 아인슈타인이 길가의 분수대에서 길어와 끓여서 사용했다. 온 집안은 벼룩과 빈대천지였다. 밀레바는 아이들이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에 걸릴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공기는 매염으로 오염되어 숨쉬기도 어려워. 수돗물은 마시면 죽을 것 같고. 사람들은 천박하고 무정하고 얄팍하고 퉁명해. 그래도 건축물들은 아름답군.” 요즘에야 프라하가 인기 높은 관광지가 되었지만 100년 전 프라하는 아인슈타인 내외에겐 그저 살기 불편한 도시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