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록도에 간 조용필과 나

스카이뷰2 2011. 4. 16. 11:20

 

                                  소록도에 위문공연간 조용필이 한센인들과 함께 노래하고있다.(조선일보 김영근기자사진)

             소록도에 간 조용필과 나

 

 

아침신문 1면에 ‘歌王이 손잡고 껴안자, 울며 웃으며 소록도가 춤을 췄다’라는 제목과 함께 조용필이 소록도를 방문 한센인들과 함께 춤을 추는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마운 마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스트레스가 훅 날아가는 듯했다. 그리고 ‘연민(憐愍)’이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그렇다고 ‘값싼 동정’은 아니다. ‘산다는 것’의 신산(辛酸)함을 누구보다 절절히 느껴왔을 그들 한센인들의 삶이 어쩌면 모든 인간의 고통을 대속(代贖)해준다는 마음이 들었다.

 

소록도(小鹿島), ‘작은 사슴의 섬’에 울려 퍼진 조용필의 슬픈 노래 ‘허공’을 들으며 한센인들은 ‘천형’의 삶을 살아온 자신들의 인생은 어쩌면 한바탕 ‘꿈’이었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노래를 따라 부르던 그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을 것이다.

 

20대 시절, 회사일로 소록도를 1박 2일로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무렵 지금은 작고한 작가 이청준선생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베스트셀러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제시절 생겼다는 소록도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의 내용은 지금 가물가물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큰 충격을 줬다.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저주받은 삶과 그런 고통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분투! 한창 ‘사회의식’이나 ‘정의감’ 이런 단어에 끌리던 나이여선지 ‘당신들의 천국’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작품이다.

 

서울에서 소록도까지는 멀고도 멀었다. 하도 오래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7~8시간 그리고 배를 갈아타고 소록도에 들어갔었다. 지금은 ‘새 길’ 들이 많이 만들어져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엄청나게 먼 거리였다.

 

당시 소록도의 국립병원 전풍자 원장은 소록도 사상 최초로 병원장을 맡은 여의사였다. 그 분의 안내로 병원과 한센인 마을 곳곳을 둘러봤다. 지금도 한센인들의 그 체념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퀭한 눈빛, 멍한 표정의 그들을 보며 무슨 질문을 한다는 건 죄스럽게 느껴졌다.

 

감히 정면으로 보기에 미안할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과 뭉퉁한 손들, 무엇보다도 ‘인생의 종착역’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한센인들의 ‘포기한 삶’에의 회한 같은 게 어린 나의 가슴을 저며 놓았다. 그날 밤 전풍자원장님의 관사에서 그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날 밤 소록도에는 장맛비가 엄청 내리고 있엇다. 

 

<전라남도 고흥군 국립 소록도 병원 우촌 복지관. 가왕(歌王) 조용필 이 300여명 한센인 앞에서 '친구여'를 부르다 갑자기 객석으로 뛰어들었다. "오빠" "조용필 선생"을 외치는 환호성이 폭발했다. 조용필은 병으로 인해 형체를 알 수 없게 돼버린 한센인들의 손과 일그러진 얼굴을 일일이 잡고 쓰다듬으며 포옹했다. 청중이 그런 조용필의 귓가에 대고 외쳤다. "지난해 한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내년에도 꼭 와주세요." 조용필은 객석을 두 바퀴 돌며 모든 관객과 스킨십을 나누고 나서야 무대에 다시 올라섰다. 그리고 노래를 이어갔다. "친구여~ 꿈속에서 만나자. 그리운 친구여.>

 

아침 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이제 환갑도 넘긴 조용필이 작년부터 조용히 ‘소록도 공연’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모처럼 듣는 ‘따스한 스토리’다. 조용필의 열혈 팬은 아니지만 그의 노래 중 몇몇 곡은 좋아한다. 내가 소록도를 방문하던 그 무렵을 전후해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정이란 무엇인가’등이 크게 히트했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조용필은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어제 소록도 공연에서 조용필은 첫 곡으로 '단발머리'를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는 조용필 노래치고는 발랄 경쾌한 곡조여서 아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선곡한 것 같다. 이어서 조용필이 "신청곡을 받아 노래하겠으니 마음껏 춤추면서 즐기라"고 하자 객석에서는 "창밖의 여자요" "돌아와요 부산항에요" "허공이요"라며 여기저기서 신청곡이 쏟아졌다.

 

신청곡으로 맨 먼저 부른 노래는 바로 ‘허공’이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몇몇 관객이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 허공은 건강한 사람이 들어도 슬퍼지는 노래인데 스스로를 ‘천형의 삶’을 산다고 여기고 있을 한센인들이 들었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분위기가 가라앉을 듯하자 조용필은 "작년에 이 노래를 안 불러서 항의를 많이 받았다"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리고는 "나와서 춤추세요. 빨리요"라고 흥을 돋웠다고 한다.20여명이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춤을 추면서 분위기는 확 반전됐다.

 

이곳에 있는 환자 중에 82세 된 한 할머니는 무려 71년 동안이나 살아왔다고 한다.

손가락과 다리 일부가 없고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 할머니도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했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는 내가 소록도를 방문했던 무렵에도 환자로서 입원해 있었다는 얘기다. 참 세월이 무섭다.

 

조용필의 소록도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지난해 5월 5일 영국 필 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방문해 자신의 노래 2곡을 불렀다. "지난번 이분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에는 나만의 무대를 보여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이들의 친구, 동생, 형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의 심정에 공감한다. 인기연예인도 아무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인 나도 뭉클한 마음이 되어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1시간여에 걸쳐 10여곡의 노래를 부른 조용필은 지난해 만났던 한센인들을 또렷이 기억했다고 한다. "따봉이라고 소리치며 노래를 따라 하던 그분은 어디 갔느냐"고 묻자 한 관객이 "그분이 요즘 몸이 많이 아파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다"며 답했다. 조용필은 "부디, 부디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뒤 "또 우리 봐요"라며 인사하고 무대를 떠났다.

 

조용필은 앞서 소속사측에 "공연 사실을 절대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알 수 없는 경로로 14일 오후 인터넷을 통해 공연 소식이 알려지자 조용필씨는 아예 날짜를 바꾸는 것까지 심각하게 검토했었다"고 했다. 조용필은 공연 직후 기자와 만나 "꼭 생색내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 (공연소식이) 알려지는 게 싫었다"고 했다.

 

우리 시대 ‘가왕(歌王)’으로 불린다는 조용필다운 모습인 것 같다. 언젠가 TV에서 방영한 ‘조용필 스페셜’을 보면서 그의 노래보다는 목소리가 더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조용필이라는 유명가수라는 입장을 떠나 그냥 순수하게 ‘전화로 대화하고 싶은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치유의 힘’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센인들의 존재에 대해선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께서 ‘한하운의 시집’을 보여주시면서 “ 나병(癩病)이라는 무서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데도 이렇게 시집을 냈다”고 말씀해주셔서 알게 되었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어린 친구들 사이에 ‘문둥이가 어린애들 간을 빼먹는다“는 ‘괴담’이 퍼져서 몹시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요즘 어린이들은 어쩌면 ‘문둥병’이라는 말조차 모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록도 국립병원엔 한센인들이 많이 입원해 있다는 소식에 무거운 마음이 된다.

그래도 조용필 같은 유명가수가 ‘남몰래’찾아가 위문공연을 한다는 사실에 다소 위로받는 아침이다.

 

Daum 인명록에는 조용필에 대해 이렇게 기록돼 있다.

조용필 가수

출생 1950년 3월 21일 (만61세) | 호랑이띠, 양자리

출생지 경기 화성시

신체 키166cm, 체중56kg | O형

데뷔 1979년 1집 앨범 '창밖의 여자'

학력 경동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