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쿠르 상 받고 하루아침에 佛 최고 문인으로 등장한 '신인 작가' 알렉시 제니의 화려한 데뷔

스카이뷰2 2011. 11. 4. 13:35

수상자 알렉시 제니. /AFP1

                                               

 

공쿠르 상 받고 하루아침에 佛 최고 문인으로 등장한 '신인 작가'

 알렉시 제니의 화려한 데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소리가 솔깃해지기 시작했지만 이 나이가 되어도 몇몇 가지 문화적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은 여전하다. 가령 오늘 아침 프랑스 최고권위 문학상으로 꼽히는 ‘공쿠르 문학상’을 ‘20여 년 간 작가지망생’으로 살아온 40대 후반의 평범한 고교 생물교사가 수상했다는 기사는 마치 내 일 인양 기쁜 마음마저 든다.

 

‘데뷔작’이 출세작이 된 이 생물 선생님은 리옹의 생 마르크 고교에 재직하면서 늘 ‘영원한 작가 지망생’처럼 주말에는 ‘습작’에 매달려 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이 ‘지구력(持久力)’좋은 선생님은 10년도 아닌 20년 세월을 ‘작가에의 길’을 갈망하다가 드디어 ‘성취’해낸 것이다.

 

상을 받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체로 문청(文靑)들에게 권위있는 ‘문학상 수상’은 ‘험난한 창작 생활’에 활력소로 힘을 북돋워주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세계적 현상이다.

이번 수상작 '프랑스식 전쟁 방식'은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 등 프랑스 현대사의 굵직한 전쟁들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 대해 공쿠르상 선정위원회는 "주제를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다룬 비범한 작품"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자고 나니 하루아침에 프랑스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된 제니는 수상 소감에서 "불과 1년 전만 해도 습작하던 처지였는데, 오늘 내가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위치에 왔다"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 영화 감상과 만화 읽기, 화초 가꾸기가 취미라는 그는 "교실로 돌아가면 학생들이 공쿠르상 수상에 대해 뭐라고들 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들어갔지만 첫 작품은 컴퓨터에 보관중이다. 두번째 작품은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퇴짜를 맞았다.

‘삼세판’이라는 말처럼 이번에 세 번째로 도전한 630쪽 분량의 소설이 바로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출판사 갈리마르의 눈에 띄면서 ‘영광의 출간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이 출판사는 앙드레 지드,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을 발굴해낸 명문 출판사다.

 

1902년 제정된 공쿠르 문학상은 마르셀 프루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 앙드레 말로 같은 수상자를 냈다. 상금은 상징적 금액인 10유로(1만500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수상으로 제니의 소설은 현재 5만6000부인 판매량이 40만부까지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카데미 공쿠르 회원은 매년 11월 파리의 드루앙(Drouant) 레스토랑에서 수상자를 발표 시상하고 있으며,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50프랑을 수여한다. 2002년부터는 유로화로 바뀌면서 10유로로 결정됐다. 상금은 상징적인 액수에 지나지 않지만 역대 수상작은 평균 60만부 이상 팔리고 3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우리나라 독자에게 친숙한 작가인 프루스트, 앙드레 말로, 시몬느 드 보롸르, 미셸 투르니에,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불문학의 거장들이 공쿠르상을 수상했거나 공쿠르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문학상 제도가 거의 ‘난립’수준으로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문학상의 백미는 많은 신문사에서 주고 있는 ‘신춘문예’가 아닐까 싶다. 신춘문예!‘하면 대한민국 문청들의 ’영원한 로망‘이듯 문학에 뜻을 품은 문학도들은 이맘때쯤이면 ’신춘문예 열병(熱病)‘에 자청해서 감염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요새야 ‘무명의 작가지망생’들이라도 그냥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서 바로 ‘작가’명함을 들고 다닌다지만 예전엔 신춘문예라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서는 ‘작가’대접받기가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한때는 이 신춘문예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신인 등용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은 일본 문청들에겐 여전히 매력적인 문학상이다.

 

일본 문학계에 대해 맨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숙하게도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그 무렵 아사히 신문사에서 주최한 장편소설 공모전에 ‘홋카이도의 구멍가게 여주인’이 수상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부친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바로 그 유명한 미우라 아야코, ‘빙점’으로 당시 일본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특히 홋카이도가 주는 ‘설국’의 이미지는 일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이미지가 연결되면서 ‘행복한 문학세계’로 나를 안내하기도 했다.

 

그 무렵 내가 알던 한국의 작가로는 이화여대 출신으로 동아일보 소설공모에 ‘속설이뜸의 댕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한 이규희씨가 기억난다. 겨우 열 두어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동아일보 연재소설을 읽는다든지 일본의 여류작가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경이로운 일’같다. 조금 자화자찬같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의 초등 5,6년 무렵 문학적 인지도 수준은 당시로는 ‘최고’였다고 자부한다. 물론 순전히 부모님 덕분이었다.

 

중학생시절 이미 아쿠타가와 상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던 나는 해마다 두 차례 이 상이 발표되는 무렵엔 ‘조숙한 문학 지망생’답게 수상자의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었다.

재일동포로 1972년 수상한 이회성의 ‘다듬이질 하는 여인’이나 그 후 몇몇 재일동포 작품들에선 ‘정체성 문제’가 예리한 문학적 더듬이를 가진 그들을 괴롭혀 왔다는 걸 매번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한한 이회성작가는 내가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그의 좋은 ‘이미지’가 현실적으론 조금 괴리가 있어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어쨌든 오늘 아침 ‘평범한 문학지망생’40대 후반 남자가 드디어 프랑스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소식은 마치 내 일처럼 나를 기운나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문학상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