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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원의 ‘버저 비터’와 운명의 힘

스카이뷰2 2012. 1. 3. 13:09

 

 

 

              

                    지동원에게 키스하려는 축구광팬. 선덜랜드 공식홈페이지       

 

    

       지동원의 ‘버저 비터’와 운명의 힘

 

 

지동원의 ‘버저 비터’가 신년 벽두부터 환희의 순간을 선사했다. 상서로운 조짐 같다.

아침 신문 사진 캡션을 보면서 절로 웃음이 터졌다. 지동원의 ‘절묘 골’에 감격한 한 영국인 광팬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지동원의 양 볼을 감싼 채 키스하려는 사진이다. 지동원은 “당황했지만 다행히 입술은 피했다”고 말했다는 캡션이 나를 웃게 만든 것이다. 오홋! ‘입술’을 빼앗길 뻔했지만 운 좋게 카버했다는 지동원의 유머감각도 꽤 괜찮다.

 

‘낮은 단계’의 축구광팬인 나로선 골 망을 출렁 가르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한 1주일은 抗스트레스 성 호르몬효과를 톡톡히 본다. 그 어떤 순간이 축구경기의 ‘결승골’, 그것도 ‘버저 비터(Buzzer Beater-경기종료와 동시에 성공한 득점)’ 같은 절묘한 종료 골만큼 순수한 기쁨을 줄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농구용어인 버저 비터를 축구에 쓰는 건 ‘농구’에게 아니 축구에게 좀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의 진을 빼는 ‘저득점 경기’축구. 특히나 팽팽한 무승부의 시점 인저리 타임에 힘차게 골망을 갈라버리는 직전 결승골은 누가 뭐래도 축구의 백미다.

 

사실 ‘골’만 밝히는 팬'이라면 축구를 잘 모르는 무지렁이거나 아니면 ‘승리지상주의’에 물든 속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 축구경기의 최고의 순간은 아무래도 ‘절묘한 골’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백, 수천, 수만 가지의 골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축구는 언제나 보는이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고결한 성품의 성인군자라면야 ‘골’과 상관 없이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강호 맨체스터시티를 격파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지동원의 ‘버저 비터’ 한 골은 시시콜콜한 뒷얘기들을 캐기 좋아하는 영국 매스컴을 가만 놔두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영국 매스컴은 지동원에게 ‘키스 공세’를 퍼부은 ‘키스남’ 찾기에 나섰다는 보도가 좀 전 온라인에 보도되었다.

 

영국 '스카이 스포츠'는 '키스 앤 더 시티'라는 제목과 함께 이 팬을 공개적으로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 극적인 순간에 벌어진 해프닝에 대한 소감을 ‘키스의 주인공’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다는 것이다. 꽤 재밌는 발상 같다. 아마도 곧 키스남의 ‘자수’가 있을 것 같다.

 

주요 언론의 지동원에 대한 찬사 역시 ‘버저 비터’만큼 화려하다.

'숨 막히는 마무리'(BBC) '어메이징 지(amazing Ji)!'(가디언) 등과 함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는 스포츠 섹션 1면 전면과 본지 1면 하단에 지동원의 골 세러모니 사진을 크게 게재하면서 "선덜랜드 지동원의 막판 한방이 선두 맨시티를 침몰시켰다"고 보도했다.

 

사실 축구만큼 ‘운명의 광풍’이 세게 몰아치는 스포츠도 드물다. 수 만명 관객의 두 눈이 시퍼렇게 레이저 광선을 쏘고, 주심 부심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운명의 힘’에는 대적 못하는 순간이 종종 벌어져 왔다.

 

이번에도 지동원의 버저 비터는 ‘명백한 오프사이드’라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운명의 여신은 지동원의 편을 들어줬다. 지동원이 골키퍼까지 완벽하게 제친 뒤 텅 빈 골문으로 공을 차 넣은 건 후반 47분56초 무렵. 3분간 주어진 인저리 타임이 겨우 4초가 남아 있는 순간이었다. 맨시티 선수들은 "오프사이드"라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로베르토 만치니 맨시티 감독은 "분명히 오프사이드"라며 "하지만 이렇게 지는 것도 축구"라고 했다. 언젠가 박지성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우리 국가대표팀이 상대팀의 ‘반칙’으로 억울하게 졌던 게임이었을 것이다.(기억이 가물가물^^)

 

“이렇게 지는 것도 축구다”라는 말이야 말로 인생에 대해, 축구에 대해 뭘 아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명언 중 명언이다. 어쩌겠는가. 운명 앞에서야 누구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게 축구고 인생인 것이다.

 

지동원의 이번 ‘신의 골’로 ‘맨유’는 어부지리의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꼴찌 블랙번에 덜미를 잡혔던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승점 45(골 득실 +32)로 선두 맨시티(승점 45, 골 득실 +37)와 승점에서 동률을 이루게 된 것이다. 지동원이 ‘지성이 형’에게  작은 ‘선물’을 했다고나 할까.

 

영국 선덜랜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어제 (2일)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 선덜랜드의 2011~201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9라운드 경기에서 지동원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빅 프레젠트’를 한 셈이다.

 

‘참치’라는 별명을 안고 있는 스물한 살 제주청년 지동원은 이번 결승골로 리그 최강 맨시티를 격침시킨 ‘최고의 전사(戰士)’로 잉글랜드 언론 메인화면을 싹쓸이하며 일약 스타덤에 날아올랐다. 아울러 지동원은 올 한해 대한민국 축구계에 ‘상서로운 조짐’을 선사한 ‘행운남(幸運男)’으로 대접받을 것 같다. 지동원 화이팅!

 

*지동원의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