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나와 장로들’ - 1610년, 캔버스에 유채, 170×121cm, (독일 폼메르스펠덴 바이센슈타인성(城) 소장).
17세기 이태리 여성화가가 그린'性추행 고발' 그림 '수잔나와 장로들’
아침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시선을 끈다. '수잔나와 장로들'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1610년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巨匠)이자 여성으로 드물게 이름을 남긴 화가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의 첫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 그린 연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1610년이라니... 지금부터 400년 전 그림이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그림솜씨다. 더구나 열일곱살 아가씨가 그렸다니 더더욱 놀랍다. 하기야 그러니까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400년 전, 아직 스무살도 안된 ‘처녀’가 이렇게 ‘성숙한 사회적 인식’을 갖고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 '수잔나와 장로들'은 성경 중 다니엘서의 외경(外經)에 기록된 장면으로, 홀로 목욕을 하던 아름다운 부인 수잔나가 장로들에게 추행을 당하고 있는 것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수잔나가 목욕하는 걸 숨어서 지켜보던 ‘응큼한 장로들’은 순순히 자기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외간 남자와 놀아나는 것을 보았다고 고발하겠다며 겁준다. 그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았던 그녀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게 되지만 ‘의인’ 청년 다니엘의 기지로 사실이 밝혀진 후, 장로들은 처형당했다는 스토리다.
다니엘과 수잔나의 이 스토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수많은 미술품의 주제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성경’에 실린 이야기라는 걸 앞세워 ‘예술’의 당의정을 입힌 뒤 이를 감상할 수 있게 한다는 건 ‘이중의 쾌감’을 주려는 계산된 속셈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은밀한 누드화’와 그림 속 스토리가 주는 드라마틱한 분위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속물적인 ‘시각’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었을 법하다.
하지만 이 여성화가의 ‘수잔나 스토리’는 어디까지나 ‘여성학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피해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연민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듯하다. '위선적인 장로들'의 ‘음탕함’에 맞서는 수잔나의 공포와 혐오감, 수치심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했다. 그러니까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렇게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영원한 고전’의 반열에 든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운명의 장난’인지 젠틸레스키는 이 그림을 그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스승 타시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이런 성범죄에 대해선 ‘피해자’에게 오히려 가혹한 시선을 보내는 것과 꼭 같이 400년전에도 ‘당한 여성’을 오히려 ‘천대’했다고 한다.
젠틸레스키는 재판 과정에서 진실을 밝히려했지만 되레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가해자’인 스승이라는 뻔뻔한 남성은 유죄판결을 받았으면서도 징역은 살지 않았다. 아마 당시에도 ‘유전무죄’가 통했나보다. 더구나 ‘성경’에선 일어난 ‘수잔나의 기적’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나 현실은 이렇게 가혹한 법이다.
어쨌거나 400년 전 까마득한 옛날,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이 천재화가 아가씨의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않게 풀려나갔던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수백 년이 흐른 어느 오월 아침 동양의 한 블로거의 눈에 그녀의 ‘천재성’이 재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젠틸레스키라는 이 여류화가는 '역사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시대에 저렇게 대단한 그림을 남겼다는 자체가 그녀의 '위대함'을 웅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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