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는 오랜 '연구 대상'이다.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것 중 하나가 안철수의 새 정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다.
19일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주최한 창립 기념 세미나는 이 같은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안 의원도 "'새 정치'의 정책 비전과 노선을 밝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이 정치적 멘토로 영입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내일' 이사장)의 '새 정치' 강연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는 더욱 컸다. 그러나 기대는 곧바로 실망과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최 교수는 이 자리에서 "국가주의적 단원주의 대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며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정치적 공간을 탐색하고자 한다"고 했다. 또 "진보적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와 결사의 자유에 바탕을 둔 시민사회"라고 했다. 다른 발제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진보적 경제 질서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fairness)의 원리와 연대(solidarity)의 원리를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철수의 새 정치가 무엇인지 오늘은 알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갖고 온 많은 참석자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안 의원의 '새 정치'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라는 말도 나왔다. 중진 의원들과 베테랑 정치부 기자들조차 "거의 암호문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새 정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는커녕 도리어 의문만 키웠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안 의원의 발언도 새로운 게 없었다. "주거·보육·교육·노후·일자리 등 전반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복원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과 개헌 문제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은 없었다.
이날은 안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정확히 9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안 의원은 작년 9월 19일 '새 정치' 깃발을 들면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과 빈부격차·일자리를 해결 못하는 경제 시스템, 기득권 과보호 구조를 바꾸겠다"고 했고, "정책 비전과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내놓겠다"고도 했다.
국민들은 지난 9개월간 안 의원이 '새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길 기다려 왔다. 그런데 이날 '새 정치' 세미나에서 구체적 정책 비전과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추상적이고 사변(思辨)적인 용어로 가득찬 '학술연구회'로 끝났다. 전문가적 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새 정치'라면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다 안 의원의 '새 정치'가 진짜 아무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판이다. 늘상 '정치 개혁'과 '통합의 정치'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정쟁과 기득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야의 '구(舊)정치'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의 인내심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