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지녀할 가장 큰 덕목으론 무엇보다 천부적인 판단력과 '사심(私心) 없기'를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이 두 요소가 모두 말은 쉽지 겸비하기 매우 어려운 요소여서 '대망'을 품은 정치인들 특히 '대권'이나 뭐 그 비슷한 걸 꿈꾸는 정치인들에겐 자칫 사기를 꺾거나 '판단 미스'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배경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홍준표지사의 '돌출행보'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지난해 12월 19일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당선된 홍준표지사는 '서울 정치권'과 멀어져간다는 조바심이 내려가자마자 생겼는지 지사 취임 후 불과 한 두달 만에 '개원 역사 103년'이라는 진주의 '국립의료원'의 문을 단번에 폐쇄하는 '용단'을 내려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듯이 '진주'하면 엄청 먼 시골동네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기에 사실 서울쪽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에겐 '유서 깊은 시골병원'이 없어지든 말든 별 관심도 없는 일이지만 '차기 대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인사들 가운데는 홍준표식 돌출행보는 '차기'를 염두에 둔 '치밀한 포석'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문을 닫네 여네로 사생결단하듯 시끄럽던 진주의료원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는데 그 과정에서 보여준 홍준표지사의 이런저런 언행'은 정치인들을 불신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한표'를 던져준 듯하다. 얼마전 그는 종편 채널A에 출연해 매우 소상하게 '강성노조'의 '못된 행태'를 검사가 피고 고발하듯 조목조목 대가면서 목청을 높였다. 그 방송을 본 적잖은 '착한 시민'들은 "노조가 못됐다, 진주의료원 폐쇄는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홍준표의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홍지사는 그날 앞으로도 여러 방송국에 출연해 자신의 주장을 펼칠 계획이라며 호기있게 웃어제쳤다.
그러고나서 며칠 만에 경남도의회의원들끼리 극한의 몸싸움을 벌인 끝에 진주의료원 폐쇄가 법으로 확정됐다. 그 와중에 새누리당과 정부에선 홍준표지사의 그런 행동을 '제어'해보려는 '일련의 주의'를 그에게 보냈지만 강성의 '모래시계 검사출신'답게 홍준표는 '안하무인'으로 중앙정부의 '싸인'을 무시해버렸다. 보사부 장관이 진주로 내려가고 새누리당 최고지도부가 '자제와 심사숙고'를 요청했건만 '시골지사'의 배짱으로 버텨냈다.
헌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게 103년된 병원을 없애버린 홍지사는 '국회 국정감사'에 출두하라는 '명령'에 강한 거부와 함께 "내가 친박이면 이렇게 핍박하겠나, 도지사의 고유 권한이다, 위헌이 아니다, 절대 못간다"면서 '서울 나들이'를 단연코 거부해버리고 말았다. 종편 TV에 나와 그렇게나 강력하게 강성노조의 '악행'을 고발하며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던 그 '패기'는 다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느닷없이 자신이 '정치적 핍박'을 받는 순교자적 정치인이라는 이상한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를 보니 재작년인가 '어린애들 밥먹이는 일'로 서울시민에게 '투표'라는 귀찮은 일을 하게 만들었던 서울시장 오세훈이 떠올랐다. 결국 '패장'이되었지만 오세훈 역시 무슨 순교자처럼 돌연 '보수의 아이콘'으로 '차기 대권'을 열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걸 보고 참 염치도 없는게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쨌거나 우스운 건 요즘 여론조사를 해보면 그렇게 '개판'을 치고 서울시장직을 내동댕이 쳤던 오세훈이 적잖은 지지율을 받는다나 어쩐다나...이러니 대한민국 '민도'가 낮다는 얘기가 나오는 듯하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홍준표는 앙앙불락하면서 오세훈을 몹시도 나무랐었다. '같은 고대 출신'이지만 이미지의 세련도 면에서 천지차이였던 오세훈과 홍준표는 지금 '비슷한 부류'로 국민들 뇌리에 각인되고 있는듯하다. 아마 홍준표는 '세련미 있어 보이는' 오세훈의 '정치적 결단'을 보면서 '오세훈 따라하기식' 결단을 내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진주의료원'을 둘러싼 국정감사는 병원문을 닫은 장본인인 홍준표의 출석거부를 끝으로 아무 소득없이 막을 내렸고, 이에 분개한 국정조사위원장 정우택은 홍준표를 고발하네 어쩌네 지금 난리도 아닌 듯하다.
방송에 출연해 홍준표를 비난한 정우택의 얘기는 이렇다.
"홍 지사가 당선된 게 작년 12월 19일 아닙니까, 그런데 2월에, 불과 한두 달 만에 폐업결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과연 그 강성노조들이랑 만난 사례, 그건 별로 없어요. 그냥 보고만 받고 이 사람들 나쁜 사람들 아니냐, 이렇게 판단을 해서 폐업조치를 한 것인지. 저는 그렇게 추측이 됩니다마는. 지사가 된 후에 그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 하고, 같이 잘해 보자 하는 지사로서의 푸근함과 토닥거림이 없지 않았나,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지사로서는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고 저는 보고 있거든요."
도지사 출신이라는 정우택은 얼마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지사가 재선에 나설 경우, 지지할 것이냐.'는 답변을 한 사람이 35.4%고. '지지하지 않겠다.' 하는 사람이 53.6%가 나왔다면서 '홍준표의 불행할 미래'를 은근슬쩍 방송에 흘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불과 몇 달 뒤에 치러질 도지사 선거에 만약 홍준표가 나온다면 떨어진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홍준표의 그런 '점령군 스타일의 도립병원 폐쇄'는 현실화했지만 국회 국정조사 출석을 거부하면서 그게 바로 제 발등 스스로 찍는 '믿는 도끼'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듯하다. 홍준표 본인은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도립병원 폐쇄'라는 '쾌거'의 공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결국은 정치적으로 '불운'을 겪게 될 비극적 싸인이 될 것 같다. 그래도 홍지사 주변 '충신'들은 "차기는 지사님이 맡으셔야 합니다"라는 '간절한 충언'을 하고 있다나 어쩐다나...
대한민국에서 '차기'를 열망하는 '예비 대권주자'들에게 훈수하나 해주고 싶다. 대권을 얻으려면 우선 무엇보다 자기자신에게 천부적인 정치적 판단력과 '사심(私心) '이 없다는 걸 먼저 체크해보라고... 물론 인간은 주제파악하기 어려운 동물이기에 '대권'을 열망하는 '주제들'이라면 그 따위 판단력이나 사심따위는 아무 문제가 안된다고 박박 우기고 싶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