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귀태' 논란으로 본 일본 고단샤 발행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ㆍ현무암 지음
박근혜대통령과 홍익표의원.
요즘 정치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말싸움이 '금도'를 넘어섰다. 아슬아슬하다. 여야 정치인들이 아찔한 곡예사들 같아 보인다. 상대를 향한 '저격수' 노릇을 누가누가 더 잘하나 내기라도 하는 것같다. 드디어 새누리당 입장에서 볼때 '진짜 최고 존엄'이랄 수 있는 박정희 전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듣도보도 못한 '귀태(鬼胎)'니 그 후손이니 하는 막말이 튀어나왔다.
홍익표라는 야당 원내대변인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귀태라는 말은 어제 처음 들었지만 그 뜻이 너무 섬뜩하고 끔찍하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 어제 그 말 듣고 넘넘 화가나서 '청와대의 잠못이루는 밤'을 보냈을 법하다. 아무 이해관계 없는 내가 들어도 화가 나는데 말이다.
홍익표의 말에 따르자면 '귀태'는 지난해 발간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을 인용한 것이며 "그 책에 나온 표현 중에 하나로 귀신 귀(鬼)자에 태아 태(胎)자를 써서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라는 얘기다.
국회의원이 하도 많아 홍익표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 그래도 민주당 원내대변인이라니 당내에선 어느 정도 인정받는 축에 속하는 듯하다.
인물란을 검색해보니 67년생으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부터 석사, 박사까지 '배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현 대통령의 아버지와 현 대통령을 싸잡아 '귀태'라는 '몹쓸 표현'을 썼으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물론 그 지지자들에겐 엄청 모욕감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지지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이라도 그런 '수준이하'의 괴이한 용어로 상대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는 건 상식인으로서나 지식인으로서나 평범한 국민들로서나 그 누구에게라도 못할 말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주변에서 보면 '박사학위'까지 딴 사람들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을 종종 보긴 했지만 이번 '홍익표 발언'은 해도 좀 너무 했다.
어쨌든 지금 이 시각 현재 대한민국 정국은 초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청와대 홍보수석이 매우 화난 표정으로 홍익표와 민주당을 향해 한 차례 퍼부었고, 오전 10시 반 쯤엔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긴급히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엄청 격앙된 어조로 역시 홍과 민주당을 세게 몰아부쳤다.
민주당도 좀 당황했는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인데 그게 또 코믹스럽다. 민주당 사람들 그러니까 '집권'을 못한 거다. 바보들 아니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막말'을 해대고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사건의 장본인 홍익표의원은 변명아닌 변명을 이렇게 하고 있다.구두논평에서 "귀태 표현과 관련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확대 해석돼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비쳤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는 거다.
그는 오늘 (12일) 연합뉴스를 통해 “문제의 귀태 발언은 ‘사람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의 운영시스템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책을 다 읽어보면 맥락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책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국가주의 운영시스템이 한국에 자리잡았다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 시스템을 비판한 것”이라고 한다.
글쎄 그게 박근혜대통령의 '분노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옛말에도 '엎지러진 물은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는 '변명'이 좀 미진했다고 생각했는지 이어서 “최근 이 책을 다 읽고나서 한국 상황과 닮았다고 생각해 브리핑에 인용했다”면서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책에 있는 내용만 소개하다보니 확대 해석이 된 것 같다”는 궁색한 해명도 덧붙였다.
홍 대변인은 어제(11일)도 '귀태' 발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책의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번 일은 어물쩍 넘어가 줄 일이 절대 아니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익표는 2013년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 국회 으뜸언어상'을 받기도 했다니 상의 '뜻'치곤 참 기구한듯하다.
가뜩이나 NLL대화록을 둘러싼 국정조사가 삐그덕거리고 있고, 골치 아픈 나랏일이 산처럼 쌓여있는 이 시점에 민주당 원내대변인이라는 사람의'가벼운 입'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정은 한치 앞으로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이 아수라장 와중에 '사건의 원인제공자'인 문제의 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 대한 문의가 서점의 전화통을 불나게 하고 있다는 희극스런 소식이 들려와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그럴 줄 알았다. 워낙 '냄비 민심'이란 건 알지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그에 관련된 책은 어려운 거든 쉬운 거든 '구매자'가 줄을 선다니 출판사측으로선 입이 귀에 걸리게 생겼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과문한 탓에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던 '귀태'라는 말이 적힌 문제의 그 책은 공교롭게도 웬만큼 서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겐 낯이 익은 재일동포 출신 전 도쿄대학 교수 강상중과 몇몇 사람이 함께 쓴 책이라고 한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본래 제목은 '대일본 만주제국의 유산'이다.일본 고단샤(講談社) 의 역사 시리즈물 '흥망의 세계사' 18권으로 2010년에 출간됐다. 책에 나오는 만주제국은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어린 왕 푸이가 일본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황제노릇을 했던 바로 그 만주국이다.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호언했던 기시 노부스케는 그때 만주국 총무청 차장이었다. 총무청 장관은 최고위직인 국무원 총리 바로 아랫자리지만 만주인들 몫으로 총리는 실권이 없는 자리여서 차장이 사실상 최고실세였다. 그러니까 지금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는 어쩌면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책에 따르면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이 자기 작품이라고 큰소리친 건 허언이 아닌 듯하다. 기시는 그때 만주국을 군부 엘리트와 관료, 닛산과 같은 일본 재벌이 지배하는 철저한 중앙통제형 개발독재체제의 실험실로 만들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식의 계획경제, 수출 주도, 농촌진흥, 중화학공업 육성 등 전후 일본과 한국의 압축적 정치·관료 주도 성장전략과 한국의 새마을운동,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조회, 군사교육, 충효교육, 국민교육 헌장, 퇴폐풍조 단속, 반상회, 고도국방 체제를 위한 총력안보체제 따위의 통제장치들이 모두 만주국 실험을 거친 것들이라는 게 이 책의 저자들의 주장이다.
'수준 있는' 재일 학자들의 '지적 재산'을 바탕으로 쓴 것이니까 그에 대해 시비 걸 생각은 없지만 어쩐지 바로 그 저자들마저 '군국주의적 정서'에 은연중 물들어 그런 시각에서 보려했던 건 아닌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그런 만주국의 등장 과정과 실체, 그것이 전후 일본과 한국 국가전략에 끼친 영향, 그리고 그 중심에 섰던 한·일간 주요 인맥들을 분석하고 있다.
거기서 포착해낸 핵심적인 특징은 연속성이라고 한다. 연속성은 한국과 일본의 체제와 사람(인맥) 사이, 그리고 각각의 전전·전후 사이에 시공간 종횡으로 관철된다.
말하자면 전쟁 전 일제와 전후 일본이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고, 그 지배세력이 다르지 않으며, 한국 또한 그것과 닮은꼴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양자관계 역시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우리나라의 '운동권 세력'들에겐 그냥 먹혀들어갈 수 있는 '힘의 논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한권의 책이 어제부터 대한민국을 요란스럽게 뒤흔들고 있다는 건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아무래도 그 파장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 이제 좀 자숙해야한다.
국민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정치인 덕목의 1호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PS-12일 오후 홍익표의원은 원내 대변인에서 사퇴했고, 김한길 민주당대표는 대변인을 시켜 유감을 표함으로써 이 요상한 '귀태논란'은 일단락 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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