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뒤, 총리보다 한뼘 앞… 역시 '王실장'
아침신문에 실린 한장의 사진에서 '권력의 역학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기춘 실장이 6일 국무회의에 첫 입장하면서 정홍원 총리보다 한뼘정도 미세하게 앞서 걷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된 것이다. 75세인 김 실장은 70세인 정 총리보다 나이로는 5년, 사시 합격은 12년 선배다.
게다가 정 총리는 김 실장의 검찰 후배인데다 각각 경남중과 경남고를 졸업해 동문회도 같이 한다. 전임 허태열 비서실장 때 정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나란히 입장했고, 허 실장은 항상 뒤처져 걸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신문에 실린 정총리의 표정에는 그가 총리에 취임한 이래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수심이 살짝 어려있다. 그동안 정총리는 70객 나이답지 않게 밝고 명랑한 청년 같은 표정을 선보여왔었다.
일설에 따르면 정홍원을 총리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김기춘이라고 한다. 그러니 정 총리로선 '상왕' 만난 셈이다. 이제까지는 내각과 청와대 통틀어 나이로나 서열로나 제일 '웃어른'으로 대통령 옆에 바싹 붙어서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젠 그 '고귀한 자리'를 '대선배'이자 '은인'인 김기춘 실장에게 양보해야할 입장이 된 거다.
김기춘 실장의 등장으로 정치권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는 듯하다. 이제까지 '실세'입네하고 폼재던 몇몇 인사들은 '죽상'을 짓고 있다. 김실장의 '화려한 귀환' 앞에 그 누구도 위세를 부리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황우여 새누리당대표도 여덟살 아래로 서울 법대와 고시 후배, '실세'로 통하던 최경환 원내대표도 박대통령과의 인연이나 정치경력 등에서 김실장 앞에선 한껏 몸을 낮출 수 밖에 없다. 엊그제 신임수석들 임명식장에 배석한 소위 '실세 수석' 몇 사람의 표정도 영 밝지 않았다. 그만큼 김실장의 존재감이 드세다는 얘기다.
강창희 국회의장도 마찬가지다. 김실장이 강의장을 찾아가자 "저보다 대선배이시고..."라고 '서열'을 확실히 했다는 거다. 두 사람은 친박 원로그룹이라는 '7인회' 멤버로 김실장이 7세 연상이다. 이렇게 '상하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김기춘 위의 인사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앞으로 '김기춘의 청와대비서실'의 '권세'는 거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어 보인다.
어찌보면 김실장은 '군기반장'으로 청와대 비서실은 물론 내각과 여의도 정치권에까지 명실상부한 막강 실세의 권좌에 앉은 셈이다.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세도가의 길을 걷게 된 거다. 역대 청와대 비서실장은 물론 총리 장관들 중 그 누구도 김실장의 '위세'를 능가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그런 김 실장이 6일 어린 기자들 앞에서 '여야 5자회담'을 제안하면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 발표 드립니다"라는'구시대적' 극도의 충정어린 표현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일인지하(一人之下)'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TV화면에 비친 약간 떨리는 비음섞인 노(老)신하의 발표문 낭독 모습과 그걸 받아 적는 어린 기자들 의 심드렁한 표정이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같았다. 75세 노가신(老家臣)의 '주군'에 대한 그런 충정과 애정어린 모습에서 박대통령은 드디어 '대통령아버지 시대'의 편안함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경질된 허태열 전임실장이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색채가 없는', 그야말로 한낱'비서에 불과한' 무기력한 비서실장의 위상을 고수해왔다면 신임 김기춘 실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2인자 파워맨'으로서 청와대는 물론 정치권 전반을 다잡아 나갈 것이라는 게 정가 안팎의 공통된 시선인 것 같다. 대통령은 그의 그런 '프로의 솜씨'를 믿고 그 자리에 앉혔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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