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일요드라마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
‘가정부 미타(家政婦のミタ)’
빅히트한 NHK 아침드라마 ‘아마짱(あまちゃん)’
몇 년전 쉰의 나이에 간암으로 '요절'한 드라마작가 조소혜는 "시청률이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는 유언아닌 유언을 남겼다. 오직 '지지율'이라는 결과물로 평가받는 TV드라마 세계가 얼마나 비정한지를 대변하는 '명언'으로 지금도 그쪽 동네에선 '금언'처럼 통하는 말이다.
요즘 '볼만한 드라마'가 없다는 '까다로운 시청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TV드라마들이 50% 안팎을 넘나드는 '대박'을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은 한국의 시청자들이나 방송드라마로 먹고사는 사람들 사이에선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자와 나오키, 가정부 미타, 아마짱 등이 일본에서 시청률50%를 넘나든 대박드라마들이다. 한국에서도 이들 드라마의 열혈팬들이 꽤 많다.
최지우의 '컴백 작'으로 SBS가 방영하고 있는 '수상한 가정부'가 바로 '일본 대박드라마' '가정부 미타'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싱크로율 100%'라는 말이 나돌정도로 일본 드라마를 세밀하게 베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수상한 가정부'는 원작의 빅히트까지 물려받을 지는 지켜볼 일이다.
‘가정부 미타’가 빅히트한 건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옛날' 일본이 아닌 나약해진 일본 사회 전체가 어떤 어려움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주인공 미타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이상(理想)적인 인간형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대지진·쓰나미로 인한 재난 대처에 무력한 정부와는 달리 강한 근성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정부 미타야말로 '일본이 필요'로하는 롤모델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이 열광했다는 것이다.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확산이 드라마 히트의 배경이라는 해석도 있다. 배려심 많은 친절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오히려 귀찮아진 일본 사회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세세한 배려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확실히 해내는 미타 같은 사람이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수상한 가정부'도 요리면 요리 농구면 농구 심지어 이웃에 대한 복수까지 모든 걸 '주인의 명령'만 내려지면 돌직구로 수행해 나가고 있는 가정부 '박복녀님'이라는 모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인 집 어린이의 숙제물 준비는 물론 왕따 당하는 주인집 초등생을 위해 온몸을 던져 '해결사'로 나서는 가정부야말로 '소통부재'의 우리 사회에서 절실히 필요로하는 롤모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을 극도로 경계하는 일본사회에서도 이런 류의 인간형이 새로운 이상형으로 공감을 자아냈을 것이다.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라는 주인공을 통해 일본사회와 기업의 '비리'를 파헤친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도 시청률 50%를 육박하며 종영했다.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가만 보면 이 '단순함'이야말로 히트의 기본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도쿄중앙은행 차장(방영 중 과장에서 승진)인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불법 대출 등 불의를 저지르는 은행 상사에 항거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대출 손실 잘못을 자신에게 덮어씌우려던 지점장을 낙마시키고, 과거 대출 장난을 해 아버지를 자살하게 한 은행 상무에게 복수한다는 게 주요 줄거리다. 새로울 게 하나 없는 내용이지만 대사 하나하나가 시청자의 스트레스를 휙휙 날려준다는 점이 히트 요인으로 꼽힌다.
잘생긴 주인공의 입에서 “야라레타라 야리카에스(당하면 되갚아준다). 바이가에시(倍返し·배로 갚음)”가 튀어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는 거다. 이 말들은 올해 일본 최대 유행어가 됐다고 한다. 주인공 한자와는 회를 거듭하면서 “주바이가에시(10배로 갚아준다)” “햐쿠바이가에시(100배로 갚아준다)”라며 복수의 강도를 높인다. 힘없는 일반인들은 이런 단순한 '말의 잔치'에서나마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드라마를 히트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나는 더 위로 갈거야(출세할거야). 위에 가서 할 일이 있어”, “부하의 공적은 상사의 것, 상사의 실패는 부하의 책임”이라는 대사도 ‘히트’를 쳤다. '신분상승'의 노골적인 주문이나 대기업 아니 사회 일반에까지 넘쳐나고 있는 '약육강식'의 분위기를 대사 한 마디에서 적나라하게 꼬집음으로써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는새에 종횡무진 활약하는 주인공과 '동일시'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이런 류의 드라마가 히트칠 수 있는 기본 요소라고 본다.
'사무라이 문화'에서 파생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상명하복의 대기업 문화와 타인에 대해 폐끼치지 않는 걸 생활의 미덕으로 꼽던 일본 사회가 장기 경기 침체와 대지진 등 환경 재난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상대에게 바로바로 분노를 터뜨리는 방향으로 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4월부터 방영해 9월 28일 156회로 막을 내린 NHK 아침드라마 ‘아마짱(あまちゃん)’도 '신인류'를 등장시킴으로써 대박을 터뜨렸다. 아침드라마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전일본이 들썩거릴 정도로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역시 줄거리는 평범하고 단순하다. 도쿄의 평범한 여고생이 고향에 돌아가 해녀(아마)가 되어 마을 경제를 되살리고, 그 기세를 몰아 도쿄에서 ‘아이돌 스타’가 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이 드라마 역시 '환란의 일본'을 구해낸다는 공통적인 요소가 핵심 줄거리라는 점에서 요즘 일본 국민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갈증'과 그 해법의 구도를 느낄 수 있다. 철부지 ‘아마짱’ 은 일본 대지진 때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이와테현 출신이다. 이 어린 여고생이 지진으로 망가진 고향 마을에 꿈과 희망을 준다는 설정은 ‘다시 일어서자’는 일본 국민의 열망에 불을 댕겼다는 얘기다. 그만큼 지금 일본인들은 '힐링'과 '희망'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라면 한국도 다를 게 별반 없다고 본다.
일본의 3대 메이저 신문 중 하나인 아사히신문은 최근 이 '아마짱 드라마 열풍’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일본 시청자의 ‘동조(同調) 현상’을 꼽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을 자신도 보고 싶다는 집단 심리가 깊어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사히는 이런 현상이 점점 강화하는 추세여서 앞으로도 일부 드라마가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일본을 보면 한국을 알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TV드라마가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방송드라마 관계자들은 '타산지석'으로 이 빅히트한 일본드라마들을 벤치마킹한다면 '대박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재미난 드라마를 보고 싶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을 배우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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