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귓속말을 나누는 김종인과 박근혜.(남소연 사진)
최근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힌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오래 전부터 (독일 총리인) 메르켈을 소개하고 벤치마킹하라고 이야기를 해왔는데, 지금 보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박대통령의 '통치 실력'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김종인옹의 그런 '기대'는 애초에 잘 못된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우선은 박대통령에게 메르켈을 벤치마킹하라는 이야기부터가 잘못이다. 52년생 박근혜대통령은 '대통령의 딸'로 최고권부인 청와대에서 인생의 가장 감수성 강한 시기인 10대에서 20대 후반까지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산 사람이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나이또래 여성중 그렇게 '최고 권력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박대통령이 유일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화법을 잠시 빌리자면 '이발사에게도 철학은 있다'는데 하물며 박대통령에겐 나름 확고한 '인생철학'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 '철학'이 과연 일반국민의 정서와 얼마나 부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뼛속부터 권력적'인 사람에게 나이도 어린 남의 나라 여성 총리를 본받으라는 말은 어찌 들으면 매우 불유쾌한 훈수일 수도 있다.
반면 54년생 메르켈은 독일의 청빈한 시골 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남성정치인 못지 않게 권력투쟁력이 강했고, 자기 나름의 철학이 분명한 스타일이다. 박근혜와는 비교불능의 인간형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주먹으로 살아온 사람과 공주대접받으며 살아온 사람을 어떻게 동일취급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20대 시절 독일 공산당원이기도 했던 메르켈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이라는 '인생 굴곡'을 겪으면서도 물리학 박사까지 따냈고 물리연구소 연구원에서 정당대표까지 됐고 급기야는 '유럽 최장수 총리'라는 막강파워를 자력으로 취득해온 여성이다. 박대통령이 주위사람들의 보살핌과 보필 속에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온 '고귀한 인생'이라면 메르켈은 맨손으로 '잡초'같이 살아오면서 최고 권력에까지 오른 매우 보기 드문 여성권력가이다. 두 사람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김종인이 박근혜대통령에게 '메르켈을 벤치마킹하시라'했다면 그건 박대통령을 잘못봐도 한참 잘 못봤다는 얘기다. 우리 블로그에서 늘 얘기해 왔지만 사람은 원래 잘 변하지 않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공주'로 살아온 사람에게 '민초'로 살아온 사람의 정치 스타일이나 정책 철학을 벤치마킹하라는 말은 영 씨알이 먹히지 않는 얘기라는 거다. 어찌보면 '불경죄'에 걸릴 만한 직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김종인은 지난해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을 지내며 ‘경제 민주화’ 등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의 장자방'으로서 한 몫을 톡톡히 해낸 1등 공신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간간히 '박근혜 후보'의 심기를 거스리는 발언을 아주 조금씩은 해왔고 그래서 비록 73세의 고령이긴 하지만 그나마 새누리당에선 제일 '남자'다운 기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정부 들어 김종인은 어떤 직책도 '하사'받지 못했고, 박근혜표 경제민주화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드디어 박근혜대통령을 향해 '쓴소리 포문'을 슬슬 열기 시작한 것 같다.
김종인은 대선당시 경제 민주화 논리에 대해 “우리나라가 일본을 본따서 지금까지 성장한 것인데, 일본처럼 계속 재벌이나 기업 논리대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게 되면 비슷하게 (장기침체로) 갈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내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를 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그 얘기는 거의 물거품처럼 돼버렸다는 아쉬움의 뉘앙스가 묻어나는 듯하다.
“우리 국민들이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것이 내 (경제 민주화) 이야기”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한 것도 그것이었고, 좀 더 다른 경제의 틀을 짜고, 여기에 효율을 높이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김종인은 박 대통령 당선 이후 특별한 직책을 맡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내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라며 “(선거) 캠프라는 것이 자리 사냥꾼들만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또 뭐 한자리 하려고 하는 것이다”라며 자신은 그런 자리에 대해선 비교적 초연한 입장이라는 걸 에둘러 말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서운한 건 분명해 보인다. '내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많은 걸 시사해주는 듯하다. 왜 이 정부에서 '출세'를 못했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들리는 소리로는 박대통령은 '내마음대로 하는' 즉 '자기 주관'이 분명한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말이다.
“내년 3월 독일로 연구하러 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답이 나와 있으며, 문제는 지도자의 의지”라는 게 한때 '박근혜의 장자방'이었던 노정객의 소견이다. 왠지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어투다. '아랫사람들'의 이런 세심한 심리 변화를 잘 캐치해내지 못하는 게 어쩌면 '공주출신' 박근혜대통령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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