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지 60일만에 다시 복귀한 71세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자'에 대한 대통령의'일방적 결정'을 놓고 지금 난리가 났다. 왜 아니겠는가. 세월호 대참사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겠노라했던 그를 '인정많은' 여성대통령은 다시 붙잡아 앉혔으니 '잡음'이 안 날 수가 없다. 정총리 입장에서야 관운이 뻗쳤다고나 해야할까.
물론 새로운 인물들을 앉히려 안대희 문창극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두 사람 모두 '관운'과는 거리가 멀었던지 모두 약속이나 한듯 청문회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고 자진사퇴 형식으로 사라져가야 했다. 그리곤 그 자리를 관운 좋은 정홍원이 다시 들어간 것이다. 어찌 보면 코미디 같은 풍경이다.
그렇게 난리 법석을 치른 뒤 이번엔 '정치인 총리' 가 좋겠다는 둥 '김칫국 하마평'이 떠돌았지만 '마이 페이스'가 강한 B형 대통령은 역시 자신의 성정을 숨기지 않고 여봐란 듯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정홍원 유임카드'를 국민 앞에 내던졌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번에 '오버'한 것 같다. 대통령의 골수 지지자들마저도 총리를 유임시킨 것에 경악하며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보수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난리도 아니다.
야당에선 기다렸다는 듯 온갖 수사를 동원해 '대통령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총리 한 명 임명하지 못하는 무능정권'이라는 표현은 점잖은 축에 속한다. 희극적 비극의 극치라는 둥 통치인지 허무개그인지 모르겠다는 둥 신랄한 비난어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독설가로 잘 알려진 정의당 노회찬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킨 것에 대해 ‘국민 여론에 대한 보복 인사’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아마 박대통령은 이런 비난이 날아올지 예상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국민에 대한 보복 인사'라니... 대통령 입장에선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잖은 네티즌들은 노회찬의 이 말에 지지의 댓글들을 달고 있다.
노회찬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홍원 총리 유임은 국무총리 내정자들을 잇따라 자진사퇴하게 한 국민여론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보복인사다. 음식 상한 것 같다며 다시 해오라니까 먹다 남은 음식 내오는 꼴”이라며 대통령을 대놓고 비난하고 있다.
야당에선 또 이런 지적도 하고 있다. "이 같은 ‘인사 참사’는 박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보다는 자신의 기준에만 맞춘 좁은 인사스타일을 고집한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보수진영에는 그렇게 쓸 사람이 없냐. ‘재활용 총리’ ‘박 대통령 인사수첩 분실’ 했나 보다."
진보쪽 인사 진중권은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결정에 대해 “통치인지 개그인지 어처구니가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로써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가 지난 4월27일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던 점을 꼬집은 것이다.
보수 쪽 인사들은 그래도 조금은 대통령을 편들어 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데서 '박대통령의 레임덕'이
벌써 찾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새누리당 지도부에선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두둔의 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오히려 보수쪽 인사들의 대통령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강한듯하다.
새누리당 이재오의원은 “망하는 길…인물이 그리 없나”며 한탄의 트윗을 올렸다. 그는 또 기자들에게 “세월호 때 말한 게 뭐가 되느냐”면서 한숨을 토했다. 인터넷 상에 도배되고 있는 '정홍원 유임'에 관련한 여론을 살펴보면 거의 95% 이상이 '격렬한 반대의사'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발'이 더 이상 당에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7·14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영우 의원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둘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현실이 돼버렸다"며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 가족과 국민에게 이런 결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여당 국회의원으로서도 난감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어 "정 총리의 유임 결정과 이유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며 "김기춘 비서실장은 총리 인사와 관련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사실상 문책을 요구했다.
한 초선 의원은 "만나는 의원들마다 '어이없다'는 분위기고, 아예 허탈하게 웃고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어쩔 수 없다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답답해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통령 앞에선 한없이 작아진다는 새누리의원들이라해도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건 아나보다.
오죽하면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해왔다는 원로 보수계 언론인들도 하나같이 '국무총리 유임'은 잘못된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나 말이다. 총리 지명자 연속 낙마라는 ‘인사 참사’에 당장 적임자를 찾을 수 없다는 무능함을 공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로 요구받은 인적쇄신은 물 건너간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부턴 말할 나위가 없질 않게는가...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이번 '국무총리 유임'사태는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겠다. '최고 권력자'로서 못할 일이 없다는 '오기 인사'라는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최고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것 같은 야당과 일부 보수 그리고 '반박(反朴) 네티즌'들에게 보란듯이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도 보여진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 인사 쇄신을 통해 국정을 혁신하겠다던 대통령은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듯 싶다. 문창극 사퇴이후 새로운 총리를 물색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다가 불과 하루만에 사표낸 총리를 주저앉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통령이 국민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애초부터 새로운 총리를 찾으려 하지도 않은채 눈가리고 아옹식으로 '유임카드'를 내놓은 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위험이 크다고 본다. 국민여론과 지지율에 그토록 신경쓴다는 박 대통령이라면 이번만큼은 직접 국민에게 정 총리를 유임시킬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겸손히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그리 순탄하게 지나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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