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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찍어내기’는 박정희 시절 김성곤 등 ‘4인방 축출’ 복사판

스카이뷰2 2015. 7. 1. 17:13


1971년 공화당 ‘10·2 항명 파동’ 4인방 김성곤, 길재호, 김진만, 백남억(왼쪽부터).

 

                                  한겨레그림판.                                                           

                                                                                                                                                                                                                                                                                                      

 

 

2015년 ‘유승민 찍어내기’는 박정희 시절 (1971년) ‘4인방 축출’ 복사판

 

 

 

현직 대통령이 집권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려한 이번 '유승민 사태'는 현재로선 일단 대통령에게 더 큰 내상을 입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늘 '내 편(my people)'으로 생각해왔을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한 것 하나만으로도  내심 놀랐을 것 같다. '충직한 신민'이 등을 돌렸다는 건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사건'이 터진지 무려 1주일이 돼가는데도 유승민이 여유부리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그녀의 화를 돋우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게 쌓이면 큰병이 나는 것인만큼 이래저래 '밑진 장사'를 한 셈이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런 식으로 진노를 쏟아낸 건 대통령 답지 못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래선지 '유승민 찍어내기'는 온당치 못하다는 여론이 60% 가깝게 나오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보면서 아마도 대통령은 무척 섭섭했을 것이다. 더구나 온갖 매스컴 특히 언제나 자신을 지지해준 보수 언론들마저도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걸 냉랭하게 직선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건 대통령으로선 참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지난 대선때 '박근혜대통령만들기'에 앞장섰던 이상돈 김광두 같은 '책사'들이 수시로 뼈아픈 지적을 해대고 있는 것과 친이계 핵심멤버였던 이재오나 정두언 같은 여당내 야당성 인사들이 "이번 사태는 군부독재시절에나 있던 이야기다. 만약 유승민이 사퇴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유승민 편을 들고 있는 건 그녀의 심기를 꽤나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문재인을 필두로한 새정련 의원들이 '박정희전대통령 시절' 일어났던 잊고 싶은 '독재정권 과거사'마저 마구 들춰내면서 공격의 고삐를 죄어오는 것도  '효녀 대통령'으로선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이런 배신자는 꼭 심판해달라'고 외쳤던 유승민이 별안간 '차기 대선후보군'의 상위그룹으로 뜨는 현실 앞에서 '여왕같은' 우리 여성 대통령은 아무래도 화병이 단단히 날 거 같다.  무엇보다도 이 시간 현재 '전혀 사퇴의사가 없어 보이는' 유승민이 너무 얄미울 것 같다.  

 

'최고존엄' 대통령이 체면불구하고 손보려했던 인사가 그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져 졸지에 대선후보 반열에 들어갔다는 현실은 블랙코미디다. 어떤 드라마도 이보다 더 재밌기 어려울 듯 싶다. 유승민에겐 전화위복이겠지만 대통령은 체면도 구기고 실리도 못 챙긴 이래저래 '엄청난 자책골'을 넣은 셈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아마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와중에 <2015년 ‘유승민 찍어내기’는 1971년 ‘4인방 축출’ 복사판>이라는 제목의 정치기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진보매체에 실린 이 기사를  읽다보면 '박정희독재정권 시절'이라는 수식어가 왜 나왔는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서워도 너무 무서운 독재정권 시절이었다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현직 국회의원들을 중앙정보부에 잡아다가 마구 고문해 반병신을 만들어 놨다는 믿어지지 않는 공포 스토리다.

 

'아버지 대통령'을 너무도 존경한다는 효녀 대통령으로선 감추고 싶은 '치부'일지도 모를 이런 류의 기사가 인터넷 뉴스에 하루종일 떠 있다는 건 대통령으로선 너무도 괴로운 일일 것 같다.  옛날 유신시절 같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일텐데 말이다. 어디 감히 '역린'을 건드리는가 말이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모든게 대통령 스스로가 쏟아낸 '진노' 탓인 것을...  

 

현역 국회의원 고문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 시도는 40여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위 ‘4인방 축출’과 닮은 점이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여당 통제·관리를 놓고 2인자들의 도전을 가차 없이 응징하며 ‘1인 권력 강화’에 몰두한 박 전 대통령의 ‘권력통치’와 닮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근거이기도 하다.> 

 

꼭 45년전인 1971년, 당시여당인 공화당의 ‘실세 4인방’으로 통하던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 의원이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을 주도한 ‘10·2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노발대발한 박정희전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시켜 4인방을 비롯해 해임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23명을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고가 초주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요즘 세상에선 도저히 상상이 안되지만 암튼 그때는 그랬었다. 너무 무서운 독재시절이었다. 

특히 '카이젤 수염'을 기르고 다녔던 김성곤 의원은 트레이드마크였던 그 콧수염까지 뽑히는 수모를 당했고, 길재호 의원은 고문 후유증으로 이후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는 것이다. 김성곤·길재호 두 사람은 결국 이후 정계를 떠나게 됐다는 아주 슬픈 이야기다.

 

사실 이 4인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실세로 떠올라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던 무렵에 그런 횡액을 당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절대권력'에 도전하는 ‘가신’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은 것은 물론 2인자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번 '유승민 사태'만 없었다면 이런 끔찍한 정치사건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재생'돼 21세기 네티즌들의 시야를 어지럽히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대통령에 의한 여당 원내대표 찍어내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매스컴에선 '역사는 되풀이 된다'며  '부녀 대통령'의 역사적 유사성을 꿰맞추려는 '짖꿎은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닌게아니라 2인자를 용납하지 않으려하는 '아버지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DNA의 결과물이 바로 '유승민 찍어내기'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사건을 두고 서울대 교수 조국은  “박근혜는 유승민의 ‘정치적·사회적 콧수염’을 뽑아버릴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박대통령으로선 이런 약올리는 멘트도 참아내기 어려운 비판일 것이다.

 

지금 전국적 지명도가 한껏 높아진 유승민은  한때 박근혜의원이 '삼고초려'로 데려와 비서실장까지 지낸  최측근이었다. 하지만 섬세한 주군에게 '바른소리'를 몇 차례  했다는 '괘씸죄'로 지금 유승민은 박대통령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용서받지 못할 대역죄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유승민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로 '버티기'에 들어섰고 그를 응원하는 세력도 점점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무래도 이번 사태는 '대통령의 백일몽'으로 끝날 공산도 있어 보인다. 그야말로 아무도 예측 못할 상황이  '운명의 장난'처럼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모양새다.

 

어쨌거나 끝이 나봐야 끝난 것이라고 벼랑끝에 밀린 유승민의 운명은 의외로 잘 풀려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어 이 '현대판 정치사극'은 점점 인기를 끌 것같다.  게다가  박정희정권 시절 부장판사를 지냈던  유승민의 부친이 박전대통령에게 밉보여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됐고, 변호사 개업도 못하게 했다는 등 '탄압'을 받았다는 '양념'같은 이야기는 '2대에 걸친 악연'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맛갈나게 엮여지면서 재미를 더해준다. 과연 이 '배신의 정치 대하 드라마'의 엔딩신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