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친아버지의 나라' 케냐에 금의환향해 환대받은 오바마대통령

스카이뷰2 2015. 7. 27. 13:02

 

7월 25일 아버지의 나라 케냐에서 청중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연합다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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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복 여동생인 아우마 오바마 /AP뉴시스

 

 

7월 24일 '친아버지의 나라'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2박3일간 케냐인들에게 '케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흠뻑 심어줬다. 오바마는 자신의 연설을 듣기위해 몰려든 케냐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정서적 연설'을 선사해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케냐의 국민들로선  '케냐계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보면서 한없는 자긍심을 가졌을 법하다.    

 

달변가 오바마는 이런 말로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영국 군대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우리 할아버지는 어른이 됐음에도 '보이'로 불렸다. 오늘날 젊고 야망 있는 케냐의 젊은이들은 더는 우리 할아버지처럼 외국의 주인을 모시는 일이 없어야 한다"  "여러분은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좋은 교육을 받고 기회를 찾기위해 케냐를 떠날 필요가 없다. 케냐의 발전, 여러분의 잠재력으로 바로 이곳에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오바마는 그 자리에서도 또 대한민국과 관련된 말을 해 주목을 끌었다. '친한파'로도 불리는 오바마는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오바마는 케냐 청년들에게 한국의 경제 성장 성공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케냐가 점차 한국과의 '경제적 차이'를 좁혀나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사파리콤 실내체육관에서 '케냐의 자랑' 오바마는  4500여 명 케냐 국민들이 열렬히 환영하는 가운데 행한 연설에서 케냐 청년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1961년 자신이 태어날 때만해도 케냐의 국민총생산(GDP)이 한국보다 높았지만 현재는 그 반대가 됐다며 한국이 성공한 일을 케냐도 할 수 있다는 말로 케냐인들의 자긍심을 부추겼다.  

 

아닌게아니라 196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최빈국 5위안에 드는 엄청 가난한 나라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그리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최빈국가에서 경제규모 세계13위권 안팎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일단 대단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오바마의 '극찬'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의식수준'이 과연 '경제 성장수준'과 엇비슷하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높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식수준은 곧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국민적 수준을 의미한다는 걸 감안한다면 현 대한민국의 '수준'은 오바마가 칭찬할 정도로 그리 높은 건 아닌 듯하다. 부끄러운 일들이 아직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선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오바마는 '친아버지의 나라'케냐를 26세때인 1988년 처음 방문했다. 하버드대 로스쿨에 재학중이던 이 명민한 법학도는 두살도 되기 전 '이별'해야했던 친아버지의 나라 케냐가 무척이나 궁금했을 것이다.말하자면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청년 오바마로 하여금 '머나먼 케냐에로의 여정'을 시작하게 한 것이다.  청바지에 배낭을 맨 미국 청년 오바마는 아버지의 고향인 케냐 서부 시골 마을을 방문해 의붓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통역을 맡은 이복 여동생 아우마가 올때까지 '토종' 케냐 할머니와 백인의 피가 섞인 혼혈 청년 미국 손자는 서로 어색한 웃음만 지은 채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바마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 나오는 '조손(祖孫) 상봉기'다. 

 

 

그로부터 27년 후 어느덧 반백의 중년 신사가 된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타고 케냐 나이로비에 금의환향했다. 그 옛날 할머니와의 통역을 맡았던 이복 여동생 아우마는 '미국 대통령 오빠'와 함께 방탄 리무진을 타고 나이로비 시내 최고급 호텔로 직행했다. 이복여동생은 20여년후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 오빠 를 만나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이런 '초현실같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것같다.  

 

 

특급호텔에는 이미 오바마의 친척 30여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에게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야말로 오바마 가문을 빛낸 '영광의 순간'이었다.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이런 '극적 장면'은 오직 신만이 연출가능한 '신의 한수'같은 작품이다. '인간의 힘'으론 이렇게 멋진 설정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누구를 만나든 5분 안에 '뜨거운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소통의 달인' 오바마는 케냐 친척들 앞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국 내 '反오바마 세력'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오바마 케냐 출생설'을 겨냥한듯 "미국에선 내가 출생증명서를 떼기 위해 케냐에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는 여유있는 농담까지 던져 좌중을 웃겼다.

 

'운명의 장난'인지 오바마 대통령과 우후르 케냐 대통령과는 '선대(先代)의 악연'이 있다. 케냐타 대통령의 아버지는 초대 케냐 대통령으로 당시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케냐 관광부에서 근무하던 하버드 경제학 박사출신인 오바마의 친아버지를 해고해버렸다. 문득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이 고 박정희전대통령시절 대통령에게 밉보여 판사재임용에서 탈락했었다는 '옛이야기'가 오버랩됐다.

 

다 알다시피 박근혜대통령은 자신이 픽업한 유승민을 '정치적 배신자'로 낙인찍어 하루아침에 내쫓아버렸지만 오바마대통령과 현 케냐대통령은 '아버지시대의 악연'은 전혀 개의치 않고 反동성애법 폐지, 경제 지원등 케냐에 산적해 있는 여러 문제들을 논의했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말이다. 

 

케냐에서 2박3일 일정을 마친 오바마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떠나면서 이런 말을 해 케냐인들에게 또 한번 웃음과 기대를 선사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질투할 수도 있으니 이른 시일내에 다시 오기는 힘들겠지만 조만간 반드시 다시 케냐로 돌아올 것입니다. 케냐와 아프리카 청년들을 돕기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오바마는 27일 에디오피아를 방문해 우간다,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의 정상, 아프리카연합(AU) 의장과 회담을 열기로 했다. 어쩌면 그들도 케냐인들 못지 않게 오바마에게서 '뜨거운 형제애'를 느낄지 모르겠다.  

'케냐의 아들'로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인'으로서, 금세기 최고 정치지도자로 대접받을만한 귀한 인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