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김무성
이회창, 추억의 이름이다. 어제(2일) 밤, TV 뉴스시간에 화면 하단 자막뉴스로 <이회창 "박근혜, 자신만이 정의라고 독단하고 수직적 통치로 회귀하려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는 문장이 떴을 때 비로소 아 오랜만에 나오는 이름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팔순(八旬)의 노정객은 그만큼 일반인들의 뇌리에선 거의 사라졌다봐도 무방하다. 본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야말로 '흘러간 인물'이다.
두번의 아슬아슬한 패배로 대통령이 되지 못한 '엘리트 후보'출신 이회창은 '대쪽총리'라는 닉네임탓에 대권을 놓쳤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된 대통령'이라는 비아냥 섞인 호칭까지 들어야했던 이회창전한나라당대표로선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정치행태'가 꽤나 못마땅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중국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이 서울공항을 이륙하던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가서 그런 가시 돋친 발언을 서슴없이 했을 것이다. 여전히 대쪽 이미지를 풍기는 그 모습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맥아더의 명언이 연상됐지만 왠지 씁쓸한 이미지를 풍겼다. 팔순인데...
이회창 전 대표는 2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국가리더십포럼에서 느닷없이 이젠 거의 잊혀진 유승민이라는 이름 석자를 거명하면서 박대통령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한 것을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수직적 통치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은 중국에 가는 길이어서 이런 소리를 바로 전해 듣진 못했겠지만 수일 내로 보고서는 올라갈 것이고 그걸 보면 대통령으로선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닐 듯 싶다.
이 전 대표는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대해) 배신자 발언을 했다. 유 의원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배신자라는 욕이 쏟아져 나오고 ‘왕따’시키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팔순 노정객의 눈에도 대통령에의한 유승민 제거작전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벌써 두달이나 지난 지금 그런 지적을 새삼스럽게 했다는 건 노정객의 가슴속에 그 '사건'이 여전히 남아있었다는 얘기다. 사실 그 유승민사건은 웬만한 상식의 잣대로 따져보면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던 건 분명하다. '대통령의 절대권력'이 막무가내로 그런 비상식을 밀어붙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었던 대통령으로선 해선 안 될 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대중 앞에서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탓인지 이회창 옹은 작심하고 나선 듯 날카로운 비판을 계속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독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옛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수직적 통치 형태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돌직구성 비판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예민한 A형 기질은 팔순이 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또 “정의의 리더십이 없으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아부사회, 비협사회가 된다. 정의의 기준이 없으면서 사회 분위기가 수직화되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아부하는 분위기가 되면 그 사회는 가라앉은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공자님 말씀같은 지적도 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우울한 건 사실이다. 경제문제 특히나 청년실업문제로 나라의 분위기, 취준생들을 둔 집집마다 그 분위기는 말할수 없이 침울하다. 게다가 노인문제에 중년은퇴 세대들의 한숨소리까지 합치면 대한민국은 경제대국 12위권 안팎이라는 멋진 지표가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 와중에 정치라도 좀 똑바로 돌아가야하는데 왠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게 지금 국민 여론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노정객은 이런 쓴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도 의견이 갈라졌다. '화려한 중국나들이'를 막 떠난 여성 대통령의 뒤통수에다 대고 이런 '독설'을 쏟아부었다는 건 어찌보면 어른스럽지 못한 모양새라는 지적성 댓글들도 많았지만 팔순 노인의 '충정'을 이해해줘야한다는 응원성 댓글도 많았다. 전자는 '열렬한 박팬'들일 것이고 후자는 왕년에 이회창대통령만들기에 향수를 갖고 있는 실버세대들로 보인다.
이회창 옹이 박대통령을 비판만 한건 아니다. 최근 남북 협상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에 대해선 '덕담'도 했다. 하지만 “이럴 때 스스로 많이 경계하고 자중해야한다”며 “대통령 스스로가 확고한 정의관을 가지고, 신념을 가진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는 말로 소금같은 칭찬을 대신 했다.
또 “역대 정권이 경제성장, 민주화를 이뤘다고 좋은 평가를 받지만 결국 선진국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사드 배치 문제 같은 것은 대북 정책과 관련해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해야 하고 중국이 뭐라고 한다고 눈치볼 것은 아니다”는 말도 했다. 좀 코믹하게 해석한다면 노정객은 정치후배인 여성대통령에게 '고급진 훈수'를 둔 셈이라고나 할까. 정계 선배인 노정객의 이런 정치적 훈수에 박대통령도 그리 기분나빠할 건 없다고 본다. 하지만 대통령은 휭하니 찬바람을 날릴 것 같다.
좀 뜬금스럽다. 왜 이제와서 그런 사과를 했을까. 아무래도 김무성의 마음에도 이회창의 마음처럼 '유승민 축출의 부당함'이 앙금처럼 남아있었나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전대미문의 이런 사건에 대해 유승민을 동정하는 '인지상정'이 정치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아마 말들을 안할 뿐이지 여전히 대다수 정치인들은 '이건 아닌데'라는 심정일 게다.
중국 시진핑과의 '오랜 우정'덕분에 우리 여성대통령이 시진핑과의 단독오찬 등 화려한 대접을 받고 있는 동안 여의도 정가에선 '대통령 몰래' 이런 불평들이 떠돌아 다녔다는 사실이 꽤나 흥미롭다.
내일 귀국하는 대통령에게 청와대 정치특보들은 이 '불온정치인들'에 대한 보고서들을 올릴 것이다. '중국 외교'를 끝내고 돌아온 대통령에게 이런 보고서는 하찮게 보이겠지만 그래도 유념해둘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회담으로 지지율이 치솟고 이젠 회복기에 접어들었다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소통부족'을 지적받고 있다. 그런 대통령으로선 이회창 옹이나 축출당한 유승민 그리고 교류가 끊어진 것으로 소문났지만 스스로는 '대통령 언니'를 위해 일본에까지 가서 정치적 발언을 한 거라고 주장하는 친여동생내외그리고 이제는 국민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듯한 한맺힌 세월호 유족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용서와 화해'의 만찬이라도 베푼다면 진정한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이런 소소한 인간적소통이야말로 대통령의 진정성을 높여주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본다. 물론 대통령으로선 제일 하기 싫은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큰 일을 하려면 작은 일부터 잘해야한다는 격언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대통령의 자리는 참으로 높고 거창하지만 때론 사소함을 놓치기 쉬운 자리다. 더구나 그런 사소한 일이란 그야말로 사소하게 사람의 마음을 다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게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선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종편TV에선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를 넘길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이지만 지지율은 언제 또 떨어질 지 모른다. 그만큼 지금 대한민국엔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 많다. 임기는 이제 2년 남짓 남았지만 대통령은 이렇다할 '업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남북회담 주도권'을 잡았다는 건 대통령으로선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인 '소통결핍'을 우선 해결하지 않는다면 남은 임기 역시 물처럼 흘러가버리고 말 것이다.
대통령에게 하루에 48차례나 전화를 받았노라 자랑하며 '대통령의 소통'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언론에 대고 떠드는 이정현같은 부류의 사람들과의 헛된 소통보다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만날 때 '진짜 소통'은 이뤄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른 정치'의 시작이다. 국민들은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다 알고 있다는 걸 대통령은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 이야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문수 전 지사, 독일 드레스덴 인권평화상 수상 (0) | 2015.10.08 |
---|---|
박근혜 반기문 김무성 문재인 공동주연 추석연휴 정치극장 (0) | 2015.09.30 |
국무총리출신 중 최초로 감방 가는 한명숙을 감싸는 문재인의 어이없는 변명 (0) | 2015.08.21 |
손석희 소환, 박원순 수사 -박근혜 정부가 배출한 ‘반정부 인사들’ (0) | 2015.06.16 |
오드리헵번 "아들아! 넌 이렇게 살아다오!" (0) | 2015.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