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한겨레닷컴 만평.
20대 총선 결과도. 더민주 123, 새누리 122라는 의석수가 코믹하게 보인다. 청와대 전경 (다음뉴스사진)
심은하 박근혜 유승민의 20대 총선 나비효과와 정치교과서 종편TV의 존재감
‘잔치는 끝났다’. 어제 막을 내린 20대 총선은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대참패로 끝났다. 그 누구도 새누리당이 이처럼 ‘폭망’하고 곧 망할 것 같던 더민주가 여봐란듯 그것도 단 한 석 차이로 제1당으로 등극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마 누구보다도 더민주 관계자들이 놀랐을 것 같다. 절묘한 '신의 한 수'였다.
아마 이런 ‘깜놀할’ 선거결과는 건국이래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총선을 ‘복기’해보면 마치 개그 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재밌다. 그만큼 웃기는 사건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었다. 이렇게 해도 안 돌아설래 할 정도로 집권여당 지도부 인사들의 오만한 ‘국민 우롱’처사는 그 도를 넘었었다.
공천파동쯤이야 선거 때면 늘 있어왔다지만 여당대표가 ‘옥새들고 튀어라’의 주인공으로 온국민을 웃겼고 공천심사위원장이라는 사람은 그런 여당대표를 ‘돌쇠’나 ‘마당쇠’ 취급을 하기도 했다. 그래선지 여당대표는 “내가 지금 입 열면 난 망한데이”라는 전대미문의 비루한 말까지 해가면서 온갖 수모를 감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누가 여성대통령과 더 친하냐 안 친하냐를 잣대삼아 그들은 칼춤추는 망나니들처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온갖 해프닝을 벌였다. 진박이네 진진박이네 박타령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순하고 착한’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된 기표소에 들어가 결국 그런 안하무인의 여당에게 ‘개참패’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것이다.
한때 ‘못난 야당’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갈라서자 '순진한' 여당 대표는 180석도 얻을 수 있다는 무지막지한 낙관론자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과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122석으로 123석을 얻은 더민주에게 제 1당 자리를 넘겨줘야했다. 이렇게 ‘한 석’ 차이로 졌다는 건 그 상징성이 꽤나 있어 보인다.
총선 최종결과가 나온 이후 지금 이 시각까지 종편 전문 정치평론가들의 각양각색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종편TV출범이후 ‘새로운 직업군’으로 떠오른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총선에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종편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총선 분석에 대한 고견을 늘어놓고 있다. 총선 당일 자정 넘어서까지 해설하고는 오늘 새벽 6시부터 또 종편에 출연해 저마다 ‘승인’이나 ‘패인’을 열렬히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집권여당이 참담히 깨진 적이 별로 없기에 이런저런 패인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여당패배의 가장 큰 요인은 ‘유승민 축출의 나비효과’와 ‘정치교과서’ 종편TV의 존재감을 꼽고 싶다.
여기에 20세기 유신시대 마인드를 여전히 갖고 있는 듯한 여성대통령의 취임이후 시종일관 보여줘 왔던 안하무인의 태도도 선거패배의 원인이었다고 본다. 그녀는 입만 열면 ‘국회 심판론’을 잊지 않고 발언해왔는데 그런 국회무시태도는 부메랑으로 그녀에게 되돌아가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저렇게 가혹할 정도로 ‘대통령 심판’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대통령은 작년 6월 25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절규했지만 그 발언 이후 유승민은 고분고분 물러나지 않고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사임하는 순간에도 굳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1항과 2항’을 환기시키면서 ‘저항’했는데 이게 바로 ‘나비효과’로 오늘날 집권여당의 대참패를 불러 일으켰다고 본다. 만약 ‘유승민 강제 축출’이라는 극적 드라마가 없었더라면 이번 총선 판도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에 지상파를 위협하고 있다는 종편이라는 ‘괴물 미디어’의 출현이야말로 이번 총선에서 야당 승리의 가장 강력한 파워를 발휘했다고 본다. 종편이 생길때만해도 야당은 여당이 영구집권을 위해 종편을 만든다고 결사반대했었다. 하지만 종편이 생긴 이래 지난 4년 동안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엄청 높아졌다.
종편 4사와 뉴스전문채널들이 시간대마다 정치 뒷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전하면서 우리 국민은 몰라도 될 정가의 추한 뒷면을 속속 들이 알게 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상파만 있었다면 이번처럼 기상천외한 선거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만큼 다채로운 정가뒷얘기들이 종편에서 쏟아져 나왔다.
종편이 전수해주는 ‘정치학습’으로 우리 국민들은 거의 정치평론가들처럼 정치의식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시골 경로당의 노인들이나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들까지도 정치이야기를 단골 소재로 삼을 정도로 종편은 한국인의 정치교과서 노릇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그렇다고 종편이 잘했다는 얘긴 아니다.
야당인사들은 종편이 편파 보도한다고 난리쳤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그런 편파 보도마저 나름대로 소화시키면서 ‘정치학습’을 많이 해온 것이다. 그 ‘내공’이 오늘 저런 ‘깜놀할’ 선거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쨌거나 하루종일 ‘정치평론가’들이 메뚜기 떼들처럼 종편TV방송에 이리저리 출몰하면서 정계 비하인드 스토리를 늘어놓은 덕분에 우리 국민의 ‘정치적 판단력’은 한껏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은 이런저런 ‘사연’도 참 많다. 그 중에 눈길을 끄는 건 아무래도 정치인의 연예인 가족 이야기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왕년의 인기탤런트 심은하는 전성기시절 못지않게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다. 심은하가 언제 유세에 나오냐가 화제거리가 될 정도였다.
'엄숙한 스타일'의 심은하 남편 지상욱은 새누리당이 참패한 서울에서 어렵사리 당선됨으로써 ‘연예인 아내 내조 덕’ 을 톡톡히 봤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주몽 엄마’ 김을동은 탤런트 아들 송일국의 헌신적인 선거운동에도 고배를 마셨다. 72세 고령의 그녀가 패배한 건 서울 시민들의 ‘정치의식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낙선자들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몇몇 낙선자들의 면면을 보면 '떨어질 사람들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언행을 심심찮게 했고 그런 뉴스는 고스란히 매스컴에 보도됐다. 어떤 장관 출신 후보자는 장관 퇴임전 기자들에게 오찬을 대접하면서 건배사로 '삼선(三選)'을 외쳤다는데 부산지역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낙선해 삼선의 샴페인은 터뜨리지 못했다.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은 종편에서 아주 크게 보도되기도 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더민주 소속으로 부산에서 친노계열 인사가 5명이나 당선됐고 새누리의 텃밭인 경남과 대구에서도 5명의 더민주 소속 후보들이 당선된 것도 좀 놀라운 일이다. 서울 강남을에서 더민주 소속 전현희가 야당후보이자 여성으론 최초로 당선된것도 기록할만하다. 재작년에 홀로된 그녀는 '하늘나라에 간 남편도 좋아할 거'라는 소감으로 감동을 더했다. 송파을에서도 여권 후보를 가볍게 제치고 MBC기자출신인 더민주 소속 후보가 된 것도 눈여겨볼만한 이변이다. 어쨌든 이번 총선에선 더민주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더민주 전 대표인 문재인도 화제였다. 그는 유세기간 중 광주에 내려가 무릎꿇고 큰절까지 해가면서 호남이 문재인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으면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는 읍소전략을 폈지만 호남인들은 안철수 국민당을 ‘적자’로 생각했는지 더민주를 끝내 외면했다. 국민당이 광주시 8개 의석을 모두 차지할 정도였는데 이건 오히려 안철수에겐 앞으로 '덫'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오늘 하루 종일 ‘문재인의 은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런 논쟁은 공허하게 끝날 것 같다. 어쨌거나 더민주는 새누리를 제치고 제1당에 올랐기에 문재인의 그런 발언은 그냥 지나가는 ‘허언’으로 치부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재인은 안 해도 될 말을 내뱉은 바람에 앞으로 ‘정적들’로부터 좀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여론이 높은 것 같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자업자득’이었다는 걸 대통령은 잘 알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잘 모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제 ‘똑똑해진 국민들’은 더 이상 유신시대처럼 ‘지도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벌어졌던 많은 사건사고들이 모여서 오늘 같은 선거결과를 빚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총선결과는 이 정권의 중간평가라는 얘기다. 취임 초부터 보여준 한심했던 인사실패,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무능함과 야박함, 거부감만 불러일으킨 정적(政敵) 찍어내기, 부실하고 황당했던 메르스 대처, 강압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위안부 문제 졸렬 협상 등등이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마저 집권여당에게 등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질 수 없는 선거’를 진 여당으로선 이번 총선의 참패를 보면서 제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통감하기를 바란다. 이건 야당에게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여당이 못해서 ‘운 좋게’ 이겼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2016년 20대 총선 결과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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