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세월이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 소리치는 끝 없는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해마다 5월 광주를 뜨겁게 달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올해에도 '공식 제창'은 불가라고 한다. 노래 한곡을 두고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놓고 이렇게 세상이 시끄럽다는 게 좀 이상하다. 합창인들 어떻고 제창인들 어떻겠느냐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야당의 요청에 대통령의 '긍정 검토'의 화답까지 있었던 문제의 노래 '임을 향한 행진곡'이 올해 5,18 기념식에서도 결국 제창은 못하고 합창만 하게 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광주의 민심은 들끓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음악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면 합창 제창 구별도 잘 못할 텐데 굳이 '제창 금지'라는 정부 공식입장이 나오고나니 매스컴에선 생난리가 났다.
제창 금지에 대해 종편에 나온 거의 모든 패널들은 보훈처장을 당장 해임시켜야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대체로 종편 패널들은 친정부 경향이 대부분인데도 정부인사를 잘라야한다고 '제창'하는 모습이 좀 우습다. 그만큼 노래의 존재감이 대단하다고나 할까. 아닌게 아니라 이 '행진곡'은 언제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그러니 정부에선 제창금지를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육군 중장출신이라는 우락부락한 스타일의 보훈처장은 배짱좋게시리 '대통령 말씀'조차 가볍게 넘긴 채 광주에서 열리는 5.18 기념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제창'을 막는 '막강 권력'을 휘둘렀다. 그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헌법엔 분명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는데 말이다.
보훈처장의 귀엔 '강경 보수파'들의 주장만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론조사에서 '제창'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국론분열'을 우려해 제창을 금지하겠다고 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같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말이다. 행진곡을 제창해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허약한 대한민국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더구나 5.18 피해 당사자들인 광주시민들이 그토록 제창을 원한다는데 그걸 굳이 금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대통령의 레임덕인가보다는 주장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글쎄다. 어쩌면 마음약한 여성대통령은 야당 원내대표들의 간절한 요청에 차마 '거부'를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웃음으로 답했던 걸 눈치없는 혹은 눈치가 너무 많은 야당 인사들이 멋대로 희망까지 섞어 '제창 가능'으로 미리 언론에 흘렸다가 망신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취임 첫해 5,18 기념식에 참석했던 대통령은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보수성향이 강한 대통령으로선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야당정치인들은 웅얼웅얼 거리며 따라 불렀다. 작년엔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고 여야 당 대표와 국회의장은 행진곡을 불렀다. 심지어 문재인 같은 사람은 태극기마저 힘차게 흔들며 비장한 표정으로 노래부르는 모습이 화면에 비쳐지기도 했다.
아무튼 '임을 위한 행진곡'은 듣다보면 눈물이 난다. 물론 진보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닌 평범한 시민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사람의 심금을 뒤흔드는 마력이 숨어있는 곡조요 가사같다. 20대 피끓는 청춘들에겐 이 노래는 거의 '투쟁의 성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노래의 호소력이 높다는 얘기다. 언제 들어도 괜시리 울컥해지는 노래는 그리 흔치 않기에 이 '행진곡'은 범상치 않은 노래인 듯하다. 누군가는 이 노래에 대해 시대가 가사를 만들고 역사가 곡을 붙였다는 그럴 듯한 말까지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유튜브에 실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몇 곡 들어봤다. '화려한 휴일'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행진곡을 들으면서는 눈물마저 흘렸다. 그만큼 이 노래의 영향력은 강한 것 같다. 그러니 정부에선 한사코 제창반대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일부 보수단체들은 이 노래가 북한노래라는 믿거나말거나 주장으로 한사코 합창이고 제창이고 못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1세기 개명천지에 과민반응인 듯싶다. 이 노래는 엄연히 1980년 광주사람이 만들었고 북한에선 이 노래가 금지곡이라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의 어설픈 업무 진행도 도마위에 올랐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사람은 오늘 아침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제3당인 국민당 원내대표 박지원에게만 통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1야당인 더민주의 꼴만 우스워졌다.
그래선지 더민주 원내대표는 청와대측에 강력항의까지 하고 난리가 났다. 노래 한곡으로 그야말로 진짜 '국론 분열'이라도 일어날 태세다. 심지어 여당인 새누리 원내대표마저 아직 5,18까지는 이틀의 시간이 있으니 제창할 수 있도록 재고하라고 '읍소'할 정도다. 그러니까 여야가 한편이 되어 정부를 공격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셈이다. 아무래도 대통령만 더 난처해질 것 같다.
그런데도 보훈처장은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재차 밝히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관한한 보훈처장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같다.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녀의 '본심'은 어떤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도 '제창 불가'쪽에 한 표를 던졌을 거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막강보훈처장이라도 대통령을 넘어설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튼 노래 한곡으로 나라 전체가 이렇게 들썩거리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것 같다. 지금 경제가 엉망이어서 조선소가 몰려 있는 거제도와 울산에선 한달 안에 무려 3만여명의 근로자가 해고당할 위기라는데 한가하게시리 노래 한곡 두고 왈가왈부한다는 게 한심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합창을 허한다면 제창도 허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그에 앞서 합창 제창 구분해가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반대다. 정부 측이 영령들을 위로하는 노래 한곡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우습다.
*PS:이 자리를 빌어 36년전 5월 18일 계엄군에 의해 스러져간 광주영령들의 넋을 삼가 깊이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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