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출연한 뒤 확 뜬 시 한편-정현종의 방문객

스카이뷰2 2017. 11. 24. 13:02




배우 정소민이 출연 중인 드라마‘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정현종 시인의 시집‘섬’을 읽는 장면.

드라마‘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정현종 시인의 시집‘섬’을 읽는 정소민. /tvN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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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이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확 떠버려 '가난한 시인'과 늘 불황에 시달린다는 출판사 업자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아침 신문에 실린 이야기다. 정현종이라는 팔순이 가까운 39년생 '노시인'의 시 '방문객'이 그 주인공 시다. 읽어보니 뭉클해진다.   


'방문객'은 정현종시인의 시집 '섬'에 실린 것이다. 이 시집은 2009년 초판 3000부를 찍고 2015년 2000부를 더 찍은 뒤 잠잠한 상태였다고 한다. 시집이 '잘 안나가는 건' 출판계 오랜 전설이어서 5천부나 찍은 것도 사실은 많이 팔린 시집에 속한다.


그런데 지난 주부터 갑자기 주문이 쏟아져 출판사측은 4천부를 찍고 그래도 '수요'가 밀려 3천부를 이번 주에 찍었는데 다음주엔 아예 5천부를 더 찍기로 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드라마에 시 한편이 우연히 출연한 덕분에 시집을 1만2천부나 더 찍게 된 것이다. TV드라마라는 '귀인'이 출현해 출판사와 노시인에게 '횡재수'를 안긴 셈이다. 어쩌면 노시인에겐 '생전 처음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로 시작하는 첫 구절부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느껴진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이라고 한 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라고 겸허하게 노래한다.  미약한 인간이 대자연의 바람을 흉내낸다는 건 '호연지기'를 품는 것이다. 그래서 '필경 환대'가 될 것이라며 시인은 슬며시 대자연의 품으로 회귀하려는 듯하다.


'부서지기 쉬운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시인의 그 마음에서 '마음'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인지를 가름할 수 있게한다. 하지만 '이론'은 잘 알아도 '실천'은 어려운 것이 사람이기에 팔순이 다가오는 이 노시인도  자신이 지난날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지도 모르는 '그 옛일'에 대한 회한에서 이런 '경구(驚句)' 같은 시를 썼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부서기지 쉬운 마음' '다치기 쉬운 마음'을 갖고 있는게 인생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미디어 시대'에 TV드라마의 힘을 새삼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