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92세 노시인 김남조의 시 '노병'에서 위로받는 아침

스카이뷰2 2018. 1. 10. 10:24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일러스트 김남조
김남조(1927~ )    
               


노병(老兵)




나는 노병입니다
태어나면서 입대하여
최고령 병사 되었습니다
이젠 허리 굽어지고
머릿결 하얗게 세었으나
퇴역 명단에 이름 나붙지 않았으니

여전히 현역 병사입니다



나의 병무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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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아침 신문에 실린 92세 노시인 김남조 선생의 시 '노병'을 읽고 뭉클했습니다. '태어나면서 입대하여' 이제는 '최고령 병사가 되어' '허리 굽어지고 머릿결 하얗게 세었으나' '여전히 현역 병사'인  노시인이 '나의 병무는 삶!!!'이라고 외치는 순간, '늙어가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받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요즘처럼 '늙음'이 허투루 취급받는 시절이 또 있었는지요. 자식들도 '늙어가는 부모'는 '부담스런 존재'로 느낀다고 하지요. 평생 열심히 살아온 '댓가'가 '늙음'이라는 달갑지 않은 훈장으로 수여되면서 '노병'의 마음은 한없이 외로워집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한국에선 '늙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한 것 같습니다. '100세시대'라지만 누구도 그걸 선뜻 반기진 않는 것 같습니다.


 '젊음'만이 대접받고 조금이라도 나이들면 밀려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퇴역명단에 이름이 붙지 않아

여전히 현역 병사'로서의 위풍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는 것같은 노시인의 삶은 엄숙하기만 합니다. '삶이라는 병무'에 대한 노시인의 경건한 자세가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여전히 현역'이잖아! 비록 머리 하얗게 센 '늙어가고 있는 삶'이지만 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축복아니겠습니까. '퇴역 명단'에 이름이 나붙는다는 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몇 달전부터 일본인 여성 만화가 마쓰다 미리(50)의 수필집을 '원어'로 읽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50~60대 회원 7명이 어제 처음으로 차담회를 가졌습니다. 이런 모임에 처음인 저로서는 회원들이 서로 '몇 년생'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왠지 '심장이 덜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자기소개'에는

익숙지 않았기에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돌아가면서  58년생,60년생 61년생 62년생 63년생 이라고 말하는데 그 자리의 '최고령'이었던 저는 몇년생이라고 밝히는게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사교성이 부족한 저는 결국 저의 '생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당황하는 게 모르는 한국인으로부터 '몇년생이냐'는 질문을 받는것이라고 말한 걸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나이'를 따지는 것 같다는 일본인 여기자의 얘기도 떠오릅니다. 일본에선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집에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제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이먹는게 '죄'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름 그런대로 살아오다보니 김남조 시인처럼 그 모임에선 '어느새 머리 하얗게 센 최고령 현역 병사'가 되어버린 것인데요... 나이 먹었다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는 게

더 우스운 거겠지요.   


뭐 어쩌겠습니까. 예전에 서유석이라는 가수가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라는 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못말리는 게 '가는 세월'이겠지요. 그러니까 노시인처럼 비록 나이들어가지만 '현역 병사'로 '삶'이라는 병무를 수행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마음의 훈장'을

달아줘야할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는 아침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제가 좋아하는 김남조 시인의 '겨울바다'를 소개해드립니다. 김시인이 무려 50년전에 쓴 시입니다. 


「겨울 바다」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 미지(未知)의 새 /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 매운 해풍(海風)에 / 그 진실마저 눈물마저 얼어버리고 // 허무(虛無)의 / 불 /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 나를 가르치는 건 / 언제나 / 시간(時間)······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 남은 날은 / 적지만 // 기도(祈禱)를 끝낸 다음 / 더욱 뜨거운 영혼(靈魂)을 갖게 하소서 / 남은 날은 적지만······ // 겨울 바다에 갔었지 / 인고(忍苦)의 물이 /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 바다』(상아출판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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