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의 눈물
평소 야구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덕분에 우리 대표팀 선수들 이름을 알게 되었다.
박찬호나 이승엽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주장 이종범 선수를 비롯해 오승환 구대성 박진만 이진영 등등의 선수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각종 매스컴에 조명을 받고 있는 김인식 감독에 대해서도 그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러니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덕분에 미국이 ‘재미 좀 봤다’는 말이 실감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몰랐다는 것은 한국의 야구를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그의 존재는 대단했다.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어떻게 해서 붙여졌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제 텔레비전에 나온 이종범 선수 자신이 ‘100미터를 11초에 달린다’ 고 말하는 것을 보고 과연 ‘바람의 아들’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말이 쉬워 11초지 예전엔 올림픽 육상경기에서 ‘마의 10초 벽’을 깨야한다는 소리가 자주 나왔던 걸 보면 엄청 빠른 속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어제(25일)밤 텔레비전에서 이종범이라는 선수를 처음으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연한 회색 스트라이프 무늬의 양복을 입고 나온 이 선수는 아주 잘생긴 미남자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 그 또래로 지금 활약하고 있는 어떤 남자 탤런트나 배우보다 잘 생긴 이목구비였다.
36세의 훤칠한 미남 야구 선수, 게다가 ‘바람의 아들’이라니. 젊은 팬들이 환호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패널들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해 나갔다. 선수생활 13년째라는 이 선수의 지나온 발자취를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과연 ‘바람의 아들’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구나 이번 대회에서 그가 보여준 주장으로서의 리더십은 각종 매스컴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그는 ‘맏형’ 혹은 ‘맏아들’의 듬직한 이미지가 강해 보였다.
요즘 ‘아저씨’들 사이에 대유행이라는 장발의 헤어스타일에 대해 사회자가 질문을 하니까 다소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아내가 좋아해 그냥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주로 이번 WBC 대회에서 한국팀이 이뤄낸 ‘3월의 전설’을 반추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전문적인 야구이야기는 여전히 내가 알아듣기엔 다소 어려웠다. 아무튼 우리가 6전 전승을 거두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인터뷰는 지켜볼만 했다.
사회자가 그동안의 선수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이 언제였냐고 물으면서 이 텔레비전 인터뷰는 그동안 다른 인터뷰에서는 별로 볼 수 없었던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선수는 잠시 침묵하는 모습이었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클로스 업 하 는 순간 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설마? 하는 생각이 스치자마자 ‘바람의 아들’의 눈가가 젖어들고 있었다.
훤칠한 대장부의 모습이었던 그가 뜻밖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목이 메는지 그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기를 몇 초,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훤칠한 대장부인 ‘바람의 아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눈시울이 더워졌다.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눈물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던 한 ‘젊은 남자’의 우는 모습을 보며 그냥 같이 울 수 있었던 것은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다. 더구나 공중파 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규 인터뷰 방송 시간에 나온 인물이 말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바람의 아들’이 드디어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갔다. 1998년 화려했던 국내선수 생활을 접고 일본 주니치 팀에 영입되어간 그는 그곳에서 겪어야 했던 ‘신산의 계절’을 선수생활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들로 꼽았다.
팔꿈치 뼈가 부러지고, 벤치 신세를 지고, 아무튼 예상 밖의 시련으로 그는 원형탈모증까지 앓았다고 한다.
그런 시련을 겪고 다시 선수로 거듭 날 수 있었고, 2군 선수들의 아픔을 절실하게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득 이 블로그의 간판 메시지로 올려놓고 있는 ‘인생은 땀과 눈물을 필요로 합니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저 선수도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저런 눈물을 흘린다는 것에 인간으로서 ‘동지의식’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곱 살짜리 아들에겐 ‘너무 힘든’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철부지 꼬마는 “아빠가 어려움을 겪었던 주니치시절을 복수해주기 위해 야구선수가 되어서 주니치에서 뛰고 싶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또 눈물이 나왔다.
‘바람의 아들’ 인터뷰는 그렇게 사람을 울렸다. ‘감동과 연민의 눈물’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튼튼한 다리라는 걸 모처럼 느낄 수 있었다.
이종범선수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알고 있는 ‘눈물의 힘’이 튼실한 밑바탕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텔레비전 인터뷰에 나와 ‘눈물’을 흘리는 ‘바람의 아들’이 다른 어떤 배우보다 멋있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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