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고 있는 김기춘 실장.(청와대사진)
<김기춘실장에대한 2개의 시각>"꺼진 불도 다시 보자"와 '저도의 추억과 유훈통치의 시동'
어제(8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4명의 수석 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는 '출세한 남편들'을 지켜보기 위한 부인들도 배석했다. 박대통령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그들에게 일일이 '임무부여'를 상세히 전달했고, 부인들에게도 '각별한 내조'를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임명장 수여식 후 환담에서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거듭 강조하며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 청와대 비서실이 모든 것을 풀어야 나라 전체도 조화롭게 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적극적인
역할이라는 특명을 내린 셈이다.
김기춘 실장도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내부에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부처를 섬기되’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방점은
“부처를 이끌어서 성과를 내라”는 데 찍혀 있었다.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이 커질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국정의 고삐를 확 죄는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오늘 아침 보수와 진보를 대표한 양대 일간지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와 한겨례신문에는 연배가 엇비슷해 보이는 그 신문사의 선임기자와 대기자 타이틀을 가진 논객들이 '김기춘 실장'에 대한 '고견'을 내놓았다. 역시 '노는 물'이 다른 탓인지 칼럼의 흐름은 다소 달랐지만 두 논객 모두 김실장 임명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에둘러 표현하거나 직설적인 지적을 쏟아내며 '비호감'을 나타냈다.
웬만한 신문기사는 거의 모두 훓어 본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두 칼럼을 봤더라면 '심기'가 영 불편했을 듯 싶다. 원래 매스컴의 제1기능은 '비판 정신'에 있기에 대통령은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 대한 국민여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박대통령은 이 두 논객이 쓴 칼럼을 곰곰 읽고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는 있다고 본다.
또한 대한민국의 '최대 주주'인 국민들도 청와대와 내각 인사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밥그릇'과 직결되는 현실적 정치이야기라는 점에서 바쁜 일상을 잠시 틈내서라도 논리정연하게 쓴 이 두 논객이 쓴 글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 같다. 나라가 잘 되려면 국민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고, 위정자들은 그런 국민을 '진정한 윗분'으로 모시고 섬김으로써 그들의 존재 이유가 성립된다는 걸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래 두 칼럼을 소개합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chosun.com)
청와대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임명 배경을 발표했을 때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3선 국회의원, 국회 법사위원장, 공익재단 이사장, KBO 총재를 역임하면서 입법·사법·행정에 걸쳐 탁월한 경륜과 역량을 갖췄다."
이날 그는 젊은 출입기자들에게 "여러분의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지도편달(鞭撻·회초리)', 이런 어휘 선택은 74세인 그의 입에 붙은 것이었다. "나이 먹은 사람 살살 다뤄주세요"라고 했으면 훨씬 알아듣기 쉬웠겠지만.
그는 업무 첫날에는 "윗분(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서 비서실장이 발표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0년대부터 공직에 몸담았던 그에게 '윗분의 뜻'은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그가 누군인지를 드러낸다.
그의 경력과 연륜 앞에서는 비서실은 물론이고 총리·장관도 감히 맞서기 어려울 것이다. '윗분'을 받드는 위계질서가 잘 세워질 게 틀림없다. 국무회의 석상에서는 그의 존재만으로 재킷을 벗을까 말까를 놓고 눈치 보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경륜을 다 발휘해도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은 이겨낼 수 없다. 지금은 그에게 익숙했던 '각하(閣下)의 시대'가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그가 감당해낼 몫이 아니다. 사람의 수명이 아무리 늘어났다고 해도,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어떤 사안을 판단하고 수행할 때 생물학적 나이의 한계란 늘 존재하는 것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 한참 '젊은(?)' 나는 복잡한 세상 흐름을 따라가고 판단하는 데 허덕거린다. 아집(我執)이 생기고, 유연하지 못하고, 듣는 쪽보다는 자기 말이 많아지고, 체력적으로도 부친다. 국정을 주관하게 되면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원로(元老)를 대접하고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을 시대의 주역으로 자꾸 내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무대 중앙으로 올릴 때는 그 얼굴이 갖는 '상징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현 정권을 쳐다보고 또 묻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후진하고 있는가.
최근 두 달 사이에 있었던 다른 상징적인 인사에서도 '70대 노인'들을 전면에 세웠다.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장은 만 71세, 문화융성위원장은 76세, 지역발전위원장은 71세, 국무총리 소속 새만금위원장은 77세였다. 이들은 장·차관이나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뒤로도 여기저기서 '장(長)' 자리를 맡아온 경륜의 인물임은 틀림없다. 해본 솜씨가 있으니 이들에게 맡기면 안심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임명을 통해 어떤 변화와 활력, 역동성을 느끼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분이 과연 들었을까. 세대교체의 측면에서도 이들을 무대 위에 계속 올리면, 후배 세대는 언제 어디서 그런 경륜을 쌓을 수 있겠는가. 온통 늙음이 사회를 지배해 전진하는 젊음에 길을 열어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비친다.
시대마다 시대적 과제가 있고 중심 세대가 있는 법이다. 노인들 자리는 '앞'이 아니라 '옆'에 있다. 사려 깊은 '원로'는 자문에 응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들은 설령 제안을 받더라도 '74세 비서실장'은 맡지 않을 것이다.
요즘 군과 행정부, 법조계에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물러난 지 오래된 '올드보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복귀하는 세상이 됐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현직에 대한 퇴직 관료들의 관여와 위세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가뜩이나 아버지의 유산(遺産)으로 '과거 이미지'가 강한 박 대통령이 왜 이런 인사 결정을 거듭하고 있는 걸까.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석에서는 "이분은 일찍이 '퍼스트레이디'를 하면서 자신의 나이를 실제보다 열 살 이상으로 생각했다. 지금의 노인들은 당시 30대 중반의 관료였다. 이들에게서 여전히 그때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농담도 나온다. 그러니 60대만 돼도 대통령의 눈에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
현 정권은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권의 청와대와 내각 담당자들과 비교하면 평균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정권의 키워드 중 하나로 '미래 창조'를 내세웠지만, 인사 때마다 '과거'와 '관치(官治)'로 더 깊숙이 돌아가는 것만 보일 뿐이다.
청와대 참모진 교체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11차례나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수첩에 '변화' '도전'을 받아 적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최보식 선임기자>
저도의 추억과 유훈통치의 시동(hank.co.kr)
양자, 3자 혹은 5자 회담이다, 민주당과 여권이 옥신각신한다. 국정원 공작 사태의 출구를 찾기 위한 협의의 틀을 둘러싼 기싸움이지만, 어떤 형식이 되든 부질없어 보인다. 설사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가 담판을 한다고 한들 들끓는 민심을 다독일 해법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민심을 이해하고 공감할 능력이 없다. 그를 움직여온 작동 원리는 아버지의 통치 방식이었고, 그 요체는 정보기관의 공작이었다. 그런 기억의 감옥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퇴행뿐이다. 그는 오히려 아버지의 뜻에 맹종하는, 유훈통치를 본격화하려 한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 이튿날 그는 전례 없이 강하게 정치권(야당)을 비난하고, 변화를 요구했다. “정치가 국민 위에 군림하지 말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과거의 정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저 자신은 새로운 도전에 맞서 변화를 위해 기를 쓰는데, 야당은 구태의연하게도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며 정쟁이나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과 그가 한 일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 망발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그의 행동 패턴을 결정짓는 원리를 따져보면, 성낼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를 걱정해야 할 일이었다.
북 체제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래 3대 세습이 이뤄진 지금까지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다. 수령의 유훈에서 수령과 (김정일) 장군의 유훈으로 확대됐을 뿐이다. 곳곳에 걸려 있는 ‘수령은 영원하시다’란 현수막은 그 한 표현이다. 평양 과학기술대학 구내에는 영생탑까지 세워져 있고, 거기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구호가 내리 걸려 있다. 1998년 말 방문한 평양에서 금수산 궁전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기이했다. 그곳에 안치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을 참배하는 과정은 주민들이 영적 세례를 통해 수령의 지체로 다시금 일체화되는 과정이었다. 움직이는 보도에 실려 들고 나는 이들은 한결같이 밀랍인형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영혼을 내맡긴 사람들 같았다.
물론 유훈이 명시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것을 창조하고 해석하는 건 후계자다. 성서와 신의 뜻에 대한 해석을 독점했던 중세 교황처럼 그는 유훈의 복원 창조 해석을 통해 전임자의 존엄과 권력을 획득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정은 최고사령관도 그런 방식으로나마 저의 체제를 안정시켰고 안정시키려 한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권력을 행사하는 남쪽에선 영도 원리로서 유훈이란 존재할 이유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금 그런 유훈의 복원에 전념한다. 김기춘 비서실장 기용은 그 결정판이었다.
김씨는 청년 검사 시절 일찍이 유신헌법을 기초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상적 비서 노릇을 한 것이다. 그는 1972년 겨울, 대검찰청 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유신헌법은 우리 현실에 가장 알맞은 민주주의 제도를 이 땅 위에 뿌리박아 토착화시키는 일대 유신적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유훈의 향도가 어디 있을까. 김 실장은 엊그제 5자회담을 역제의하는 첫 브리핑에서 서두를 ‘윗분의 뜻을 받들어…’로 시작했다. 말투부터 그 시절로의 퇴행을 시연했다. 휴가지 저도에서 박 대통령은 아버지를 못 견디게 그리워하며 이런 유물과 유훈을 발굴한 것이다.
신경과학자 대니얼 섁터 교수(하버드대)는 ‘기억의 7가지 죄’를 언급하며 ‘지속성의 죄’를 그중 하나로 꼽았다.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이 그 기억에 갇혀 평생 고통을 당하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그런 이를 두고 ‘기억의 감옥에 갇힌 비극적 죄수’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가 선장이나 기장 아니면 한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라면, 불쌍한 건 승객이고 국민이다. 언제 어떻게 좌초해 표류할지 모른다. 윤여준 전 장관은 하반기에 국정의 통제불능 상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론은 물론 야당도 여당 일각도 심각하다. 기억의 감옥을 기억의 궁전으로 착각한 박 대통령만 언더그라운드로 질주한다.<곽병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