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

김지미 인터뷰-팔순이 됐지만 여전한 자부심,역시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 존재

스카이뷰2 2019. 10. 7. 15:07

지난 5일 오후 부산에서 열린 ‘김지미를 아시나요’ 토크쇼에서 배우 전도연(오른쪽)과 이야기 나누는 김지미. 아래는 1965년 작 ‘불나비’의 한 장면.

지난 5일 오후 부산에서 열린 ‘김지미를 아시나요’ 토크쇼에서 배우 전도연(오른쪽)과 이야기 나누는 김지미.

아래는 1965년 작 ‘불나비’의 한 장면. /김동환 기자·한국영상자료원


"누구도 날 능가하지 못해" 이 오기가 60년 영화인생의 힘!


오늘 아침 신문 문화면에 이런 오만함 넘치는 제목으로 팔순 여배우 김지미 인터뷰가 실렸다.

꽤 호의적으로 써준 이 인터뷰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미련은 없다. 허투루 명예를 팔지 않고 63년 건너왔다고 자부한다. "우리가 해방되고 6·25사변 겪고 얼마나 고생했어요. 그래도 정신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성장한 것이거든. 명예 를, 인기를 헛되이 팔지 말라, 그 얘기는 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할까. 김지미가 웃었다. "안 해.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어. 내 성격에 그게 될까 모르겠지만." 훗날 묘비명으로 새기고 싶은 문구가 혹시 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거침없이 답했다. "한 배우로서, 한 여자로서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왔다!">


 1940년 무진생 김지미 하면 지금 60대 이상 세대의 남성들에겐 '로망'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 말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여러 여건이 좋지 않았던  1957년 17세 나이로 데뷔해 팔순이 된 오늘 저렇게 유수의 일간신문에 '누구도 날 능가하지 못한다'며 큰 소리 칠 수 있는 원로배우는 김지미가 거의 유일무이할 것 같다. 이 ‘김지미 인터뷰' 를 보면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존재다’라는 옛말도 떠올랐다.

 

 

공식 결혼을 네 차례 한 '기록'을 갖고 있어선지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도 불렸지만 한 세상 잘 살아온 인물이다.  어쨌든 한국영화 100년을 맞이한 올해, 지금 열리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매스컴의 '최고의 각광'을 받고 있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겨왔기에 '대접'받을만하다.  



문득 오래전 우리 블로그에 실었던 '김지미 인터뷰 뒷 이야기'가 떠올라 다시 이 자리에 소개한다. 




원로 여배우 김지미 인터뷰 뒷 이야기 

    

 

                                                                                  고희 넘긴 71세 김지미(조선일보사진)           

                                                                         30대 초반의 김지미.

 

 

<스카이뷰 2010.09.11 17:36>

 

아침신문을 펼치자 왕년의 여배우 김지미 ‘할머니’가 여전히 ‘여색(女色)’을 날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미 고희(古稀-70세)를 넘겼는데도 득의양양(得意揚揚)한 저 표정! ‘나 김지미야!’하는 듯한 은근한 저 표정은 어쩌면 ‘50여년 배우인생’에 후회는 없다는 당당한 자존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인터뷰 도중 후배나 딸에게 여배우를 권할만하냐는 질문에 “권하지 않겠다. 나 같이 그악스럽다거나 절대적으로 남에게 지지 않겠다는 성격을 가졌다거나 하지 않으면 힘들다. 난 자만심으로 꽉 차있다. 자만심으로. 하지만 이건 나니까 가능하지, 너희가 젊을 적 나만큼 할 수 있겠느냐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일흔한 살의 나이에 저 정도로 기고만장하다니.

 주말 판 섹션 두 면을 몽땅 할애한 ‘김지미 인터뷰’는 인터뷰하러간 기자가 ‘카리스마’ 넘치는 노여배우에게 ‘졌다’는 식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 신문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했다.

   

김지미. 60년대 최고 흥행 배우이자, ‘미인’의 대명사이다. 가십을 좋아한다면, 그 이름은 감독(홍성기), 배우(최무룡), 가수(나훈아), 의사(이종구)와 살다 헤어진 여자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또 '치마 두른 남자'로 통하는 통 큰 제작자의 이름이며, 동시에 영화운동가들에겐 '타도되어야 할 충무로 구세대'의 한 명의 이름이기도 했다.”

   

신문 두 면을 꽉 채운 인터뷰는 ‘원로 여배우’에 대한 파격적 대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 기억으로 국내 수많은 여배우 중 여성잡지가 아닌 메이저 신문에서 이렇게 와이드 인터뷰를 실어준 것은 김지미가 처음인 것 같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낱낱이 ‘고백’하는 형식이긴 한데 보기에 민망한 제목이 어른 엄지손톱 보다 조금 큰 활자로 신문의 머리를 이렇게 장식하고 있었다.


“살아보니 대단한 남자 없더라”

 

이 제목을 보고 독자에 따라 느낌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김지미라는 여배우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말하자면 그의 ‘바닥’을 훤히 보여주는 말처럼 들린다고나 할까. 

뭐랄까. 조금은 천박한 느낌이 적잖게 든다. 어찌 보면 ‘인간적’이라고도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고희’가 되도록 쌓아왔을 그녀의 ‘인격’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런 사생활부분을 거리낌없이 '말해버린다'는 건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맞지 않는 것같다.  

 

언젠가, 아직 의사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지속 중이던 시점에 그는 메이저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남편에게 만족한다’는 말끝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걸 잘 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듣기에 따라 꽤나 민망한 소리였지만 ‘여장부’소리를 들어온 그에게서 나올 법한 ‘화통한’ 발언이었던 것 같다. 김지미니까 할 수 있는 소리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저런 질문 끝에 기자는 노여배우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남편들한테 사업자금도, 돈도 정말 많이 쏟아 부었다. 간통죄로 구속되며 험한 꼴도 당했다. 남자가 그



게 소중한 존재인가.”막내딸벌일 듯한 기자의 이런 무례한(?) 질문에 노여배우는 ‘김지미다운’대답을 내


다.

 

 

 

“그런 생각은 안 들지.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나보다 잘난 게 없었으니까. 나는 과감하고,


대담하고, 용기 있고, 옳다 믿으면 양보를 절대 안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더라. 나이 많은 사람과도, 어린 남자랑도 살아보니,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김지미의 '남성론'이 담겨있는 듯한 이 말에 나는 이렇게 보태주고 싶다. ‘항상 부족하고 불


안한 존재는 비단 남자뿐이 아니다. 여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무릇 인간은 깨어지기 쉬운 유


리병 같은 존재인데 뭐’라고 말이다.

 

 

 

 

어쨌거나 ‘방대한 인터뷰’를 찬찬히 다 읽고 나니까 문득 옛날 ‘김지미의  두 모습'이  떠올랐다.

 

 

20년 전쯤 일 관계로 그를 만났었다. ‘천하절색’으로 알고 갔는데 의외로 까무잡잡하고 크지 않은 키에

 

평범해 보이는 외모였다. 어릴 적 ‘마마’를 앓아선지 오른 쪽 뺨에는 살짝 얽은 자욱이 선명하게 남아있었

 

 

다. 그래서 그는 옆얼굴 사진을 찍을 때는 가능하면 그쪽은 피한다는 말도 했었다.

 

 

 

 

물론 쉰을 갓 넘긴 ‘중년여성’이란 걸 감안하면 젊었을 때의 ‘미모’가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섣불리 ‘

 

김지미는 미인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요즘엔 보기 힘든 ‘체인 스모커’답게 연신 담배를 피던 여배우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회장님을 ‘오빠’로 호

 

 

칭했다.  “그 오빠는 얼굴 미운 여자는 꼴을 못 봐주셔. 하하하”라며 호탕한 웃음을 웃었다. 그러고는 ‘오

 

 

빠’를 우연히 홍콩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났는데 “200불이나 주셨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당시 2백달러


면 아주 큰 돈이다.

 

 

 

 

 한 세 시간 가량 ‘자부심 넘치는’ 중년 여배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 재밌는 일이었다. 그때는 독신이

 

 

었던 그에게 ‘재혼의사’를 넌지시 묻자 당찬 표정으로 “내게는 지금 마누라가 필요하다”고 말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 후 1년쯤 후인가 재미교포 출신의 심장내과의사 이종구박사와 재혼하는 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역


마누라보다는 아직은 남편이 더 필요했었나 보다. 


오늘 아침,  고희를 넘긴 김지미는 여전히 ‘마누라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어서 나를 또 웃게 만들었다.

 

재혼과 함께 ‘은막’뒤로 사라진 그를 우연히 만난 건 김포공항에서였다. 나중에 보니 그 의사남편과 함께


본행 비행기를 탔고, 바로 그 비행기에 나도 탔었다. ‘사건’은 김포공항과 나리타공항에서 일어났다.

 

  

연보라색 투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배우는 의사남편에게 한 면세점에서 ‘명품 백’을 가리키며 사고 싶다


는 투로 말했고, 남편은 사지 말라고하는 듯했다. 그러자 여배우는 몹시 화가난 듯 홱 토라지는 표정이었


다. 결국 명품을 구입못해서 일어난 '사단'은 일본 입국 심사장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두 시간 쯤 흐른 뒤, 나리타공항의 입국 심사대는 몹시 붐볐다. 당연히 입국자의 줄은 지루하게 길어졌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 여배우’였던 김지미는 그 긴 줄이 영 못마땅했었나 보다. 다 들 ‘조용히’ 기다리고 있


는 데 느닷없이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게 하냐고! 물론 한국말로.

 

 

 

그러자 입국 심사원으로 보이는 듯한 나이 든 사람이 그에게 뛰어와 일본인 특유의 제스처로 허리를 새우

 

등처럼 숙이며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했다. 물론 일본말로.

 

 

 

그날따라 입국 심사대에 늘어서 있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여서 그가 ‘왕년의 대

 

여배우’인지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래선지 내 뒤에 서있던 젊은 남녀는 작은 소리로 “저 아줌마 뭐야,


피하게시리, 나라 망신이라니까”라며 수근댔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왔다는 의사남편은 몹시 민망한  


표정으로 부인을 달래려고 애썼다. 

 

 

 

그런 해프닝이 있은 지 몇 달 뒤 ‘김지미 이혼’이라는 활자가 온갖 스포츠신문과 여성지를 장식했다. 그렇


게 세월이 지난 오늘 아침, 이제 고희를 넘긴 원로여배우는 또 다시 ‘독신’으로 한껏 고양된 자존심을 부끄


없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4번 째 이혼’에 대해 “외국생활 오래한 남자, 맞추기 힘들더라”고 털어놓았다.

 

세상에 맞추기 '쉬운'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결혼의 고수'치곤 좀 어울리지 않는 발언으로 들렸다. 

 

어떤 여성지에서는 그 의사남편과는 결혼 사흘 째 되던 날부터 ‘이혼’하고 싶었다는 ‘놀라운’ 고백을 한 적

 

도 있다. 이래저래 평범한 여성은 아닌 것 같았다. 당대 최고 스타였으니 오죽하랴...

 

 

 

 

이밖에도 아침신문 인터뷰에는 한 달에 개인 돈 1000만원씩 써가면서 영화인협회 이사장직을 지내다가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문성근이니 명계남이니 이런 젊은 애들”탓에 그 자리를 물러난 ‘비화’도 말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정권 뒷얘기랑 관련 있어서 수십년 후에나 가능한 얘기다”라는

 


여운을 슬쩍 남기기도 했다.

 

 

 

이 ‘김지미 와이드 인터뷰’를 보면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존재다’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20여 년 전 내가 만났던 쉰 살의 김지미나 이제 고희를 넘긴 일흔 한 살의 김지미는 그냥 물리적 시간만 흘

 

러갔지 ‘톱스타의 자존심, 자만감’은 전혀 늙지 않았고 오히려 서슬이 더 시퍼래진 것 같았다.

 

 

 

‘남자를 우습게 여기면서도 그래도 ’ 여성적 매력은 잃고 싶어 하지 않는 노여배우의 안쓰런 모습도 여전


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이 무정하다는 소리를 하나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 않은가!^^*